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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Jan 27. 2024

30. 한 번이라도 녹록한 적이 있었던가

당신과 나의 고통





광주, 기억의 조각


시내 곳곳에서 포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여기저기에서 무언가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 사람들의 뜀박질 소리, 악쓰는 소리, 비명소리,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최루탄 가스를 피해 뛰었다. 그러나 시내 곳곳을 뒤덮은 최루가스를 피할 수 없었고 눈과 코가 너무 따가워 엉엉 울었다. 아버지의 손은 다른 때보다 더 단호했다. 그 악력으로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다섯 살 때인지 여섯 살 때인지 모른다. 내 기억의 한 조각, 광주에서의 기억은, 그 가스의 체험은 아주 선명하게 느낌으로 남아있다. 그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런 고통스러운 냄새는 어디에서도 맡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화려함의 그늘


98년도에 IMF가 터지면서 고등학교 취업반이던 내게도 한파가 몰아닥쳤다. 열 곳이 넘는 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고 그건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여서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하루라도 빨리 취업을 해야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누구 하나 나 너무 어렵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도 무거운 분위기만으로 서로의 상황을 감지할 수 있었다. 졸업여행을 제주도로 가자는 학교의 건의가 있었지만 90% 이상의 학생들이 비싼 비용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에 취소되었다.


어찌어찌 일을 하게 된 곳에서의 근로조건 역시 녹록지 않았고, 초과근무 급여라든지 직원 복지에 있어 어려운 점이 많았다. 어느 날 뉴스에서는 내가 일하던 대형 백화점에 대한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직원 휴게실이 인원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아, 비상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쉬어야 하는 것을 고발하는 뉴스의 내용이 파란 자막의 하얀 글씨로 흘러나왔다. 어, 저기 내가 다니는 회산데... 어, 나도 저렇게 쉬는데... 나는 매일, 쓰레기처리장 옆에  있는 직원 탈의실에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화려한 도심의 화려한 대형 백화점이 모든 사람에게 화려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찍부터 화려함의 그늘을 경험했다.


가난은 선택하지 않았지만 태어나 보니 쥐어져 있었고

남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졸업해 취직을 했는데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열심히 일하면 좀 나아져야 하련만 계속 가난했다. 계속 추운 집에 살아야 했고, 계속 아껴야 했고 그런데도 나아진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희망이 없는 것이었다. 나아질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이었다. 냉골에 누워 할머니 대에서부터 내려오던 무거운 목화솜이불을 덮고 누워, 죽었으면 좋겠다, 딱,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는 새에도 눈물보다는 콧물이 먼저 흘러나왔다. 추워서.










웃기는 소리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한다. 인생을 즐기라고, 기쁘고 행복하게 살라고. 그러나 나는 나 혼자만 치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범해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침략과 지배를 겪었고, 전쟁을 겪었고, 독재를 겪었고, 부당한 은폐를 겪었고, 시린 가난을 지금도 겪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행복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통받은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하므로.


삶은, 단 한 번도 녹록하지 않았다. 사람은 망각하기 때문에 살아가지만 기억하기 때문에 살아가기도 한다. 소소한 행복, 허무와 공허,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들이대며 잊으라 하지 말라. 나는 잊을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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