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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Jan 03. 2024

26. 의지하지 못하는 게 꼭 나쁜 건 아니다.

당신과 나의 고통





의지할 곳 없는


고민이 많았다. 내가 적절한 양육환경에서 자라지 못했으므로 무척 애를 썼다. 아이가 조금만 대응하기 어려운 반응만 보여도 불안했다. 아주 어릴 때는 예측불허이기 때문에 긴장 속에서 살았던 것 같다.

삐뽀 삐뽀 책을 끼고 살았다. 또 주변 엄마들을 관찰하며 공부했다. 그러는 새에 한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고 또 한 아이는 1년 후면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큰아이가 어릴 때만 해도 유튜브 같은 것을 하지 않아서 블로그나 인터넷 육아 관련 정보에 촉을 세우고 공부했다.


항상 열심히 살았다. 그 배경은 일찍부터 많은 것들을 혼자서 해온 데 있다. 스스로 어떤 것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굶어 죽기 십상인 환경에서 자라왔기에 살기 위해서 열심히 살았다. 치열하고 절박하게 사는 사람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의지해 본 적도 의지할 곳도 없었다. 부모가 있었지만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였고, 집이 있었지만 내가 머물 수 있을 만큼 편하지 않았다. 객지가 훨씬 편하게 느껴지는 환경이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단 한차례도 누구에게 맡겨본 적이 없다. 부모님 찬스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몸살이 나거나 병이 나도 온전히 다 내가 했다. 누가 해주나. 아무도 없다. 목구멍에 약을 털어 넣고 눈물 콧물 짜면서도 무조건 혼자서 했다.










적극적인 태도, 만들어가는 삶


급기야 얼마 전에는 김장까지 혼자서 해내버렸다. 그것도 코로나에 걸린 남편과. 매년 김장을 시댁에 가서 하는데 남편이 코로나에 걸려서 못 가게 되었다.

시댁에 전화를 걸어 절인 배추를 주시면 저희가 하겠다고 했더니 정말 주셨다. "아픈데 너희가 뭘 하니, 이번에는 담가 보내줄 테니 너흰 쉬어라"고는 절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아주 꼼꼼하게 밭에서 방금 딴 갓과 쪽파와 직접 구입하신 생강, 마늘, 고춧가루까지 알뜰살뜰 친절히 챙겨 보내주셨다.

(어찌나 감사한지 눈물이 다 날 지경)


어쨌든 김치를 담갔다. 어깨너머로 십여 년간 봐왔던 양념 배합을 정확한 계랑 같은 것도 없이 이것저것 넣고 만들었더니 그냥 완성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대기업 김치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엄청 맛있게. 덕분에 몸살을 앓게 되었지만 또 한 가지의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년 김장부터는 시댁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장을 해낸 것과 같은 적극적이고도 열심인 태도로 아이 둘을 완모 했고, 완모 끝에 모유를 말릴 때도 직접 식혜를 만들어 먹어가며 가슴을 동여매면서 말렸다. 친구들 중에 식혜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그것도 간단한 방식이 아닌 전통 방식으로.







캐스트 어웨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랜 고열로 아이가 입원한 큰 병원에서 악성종양의 가능성에 대해 들었을 때, 나는 열흘간 하루 두세 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하루 이틀만 밤을 새워도 구내염이 다섯 개씩 나곤 하던 내가 피곤함을 못 느꼈다. 위기의 상황에서 사람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살면서 온전히 쉴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나는 언제나 무언가를 해야만 했고, 그래서 하고 있었고, 그래서 힘들고 고단했다. 그러나 그랬기 때문에 적극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섬에 조난된 사람은 땅을 파서라도 어떻게든 살아가게 된다. 그것이 치열하고 외로울지라도 결과적으로는 생존하기 위해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땅이라도 파고, 죽을 위기에 처하면 무엇이라도 잡으려고 뛰게 된다.

그게 사람이다.


의지하지 못해서 마음의 병을 얻었었다. 그러나 의지하지 못해서 할 줄 아는 게 많이 생겼다. 식혜도 담글 줄 알고, 김치도 담글 줄 안다. 드라마 극본을 쓰는 공부도 해봤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형편없었지만 단편 두 편도 써봤다. 책도 만들어봤다. 편집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 섭외도 해봤고, 독립서점도 직접 찾아다녀 보았다. 어떤 곳은 간판하나 덩그러니 걸려있고 너무 허름해서 들어가기조차 두려웠지만 그래도 문을 열었다. 내 책을 입고하고 싶은 지방의 한 대형 독립서점에서 거절을 당하고도 포기하지 않고 라이브 방송 때 접속하여 다시 제안했다. 물론, 나름의 타당한 이유로 또다시 거절을 당했지만 괜찮다. 출판사에 투고 포함 제안 메일을 몇 통이나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는 의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철저히 혼자였기 때문에 더 적극적인 태도로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 그것이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내게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술 하나가 생긴 셈과 같았다. 모든 것들이 풍족했다면 내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좌절을 지나며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을까? 무수한 거절을 당하면서도 자존심 다 제쳐두고 제안을 반복할 수 있었을까?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망설일 여유 따위 없다. 내 손끝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러므로 혹독한 고독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혹독한 고독과 시련은 당신을 치열히 살게 할 것이므로. 의지하지 못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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