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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Jul 13. 2024

52. 놀랍도록 공평한 분야, 마음

당신과 나의 고통



열등감


유서 깊은 열등감


내게는 열등감이 있다. 내가 자란 가정에는 <사랑받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는 가훈이 있었다. 한 가정의 가훈은 부모의 가치관을 대변한다.


자라면서 다양한 집단에 소속이 되었고 크고 작은 집단 안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참 애쓰면서 살았다. 모든 집단과 관계 안에서 늘 좋은 평가만 받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도 나는 그것을 내 노력 부족이라고 생각했었고 그런 노력 부족의 상황을 경험할 때마다 나는 노력해도 안 되는 존재라는 열등감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명절의 재판 날이 오면 온 친척들의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어야 했다. 나는 짐덩이로 정의되었고 그 기준이 내 또래의 사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을 보며 역시 깊은 열등감을 느꼈다. 그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있었지만 나에게는 보호해 줄 부모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냐하면 내 부모는 내게 <사랑받으려면 노력해야 한다>는 매우 조건적인 사랑을 주었기 때문이며 그 결과 내 안에는 유기 불안의 싹이 움트게 되었다.


가난한 유년 시절의 학창 시절 또한 그랬다.

잦은 이사와 학급 안의 공공연한 편애를 경험하면서 물론 그것이 선생님의 편애가 아닐 수 있음에도 이미 내 안에 심어진 부모의 가치관은 그것을 그렇게 보게 만들었고 세상과 삶과 타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정의를 내리게 했다.







불공평하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살아보니 맞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그러나 내가 열등해서 나에게만 불공평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나는 뛰어난 사람은 아니다. 도리어 빈구석이 더 많은 사람이다. 실수도 잦고 미숙하기도 하고 어느 부분은 미성숙하다. 그러나 그런 내 모습의 원인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열등해서는 아니다.


내가 심리를 공부하고 이 학문을 사랑하는 이유는

이 분야가 다른 분야에 비해 놀랍도록 공평하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마음이 더 행복하지 않을 수 있고 적게 가졌다고 덜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좌절이나 고통을 경험하지 않았다고 더 좋은 자기 가치감을 갖는 것도 아니고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절대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도 아닌, 반전의 학문이기 때문이다.






반전의 세계, 마음


반전의 세계, 마음



내가 공부하고 경험한 마음의 세계에서는 살아오며 부모에게 물려받고 세상으로부터 경험한 모든 것이 전복되었다. 심리에 대해 공부하면서 내 우주는 완전히 뒤집혔다. 굳건히 믿어왔던 이 세계는 단편에 불과했으며 더 장대하고 장엄한 세계가 있었다.


누군가는 규정지음을 좋아하지만 나는 규정짓지 않음이 더 좋다. 나무와 오솔길도 아름답지만 숲을 보는 게 더 좋다. 규정 너머의 무엇을 찾고 싶다.

신을 만나면 신을 죽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세계 너머, 규정 너머를 탐구하라는 의미 말이다.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더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이 누리며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마음의 세계에서는 더 많이 가졌다고 더 많이 누리지 않으며 반전이 있다. 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바로 그 지점이 내가 계속해서 배우는 이유이다. 물론 언젠가 이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공평하지 않은 세계의 가장 공평한 마음, 이런 마음의 세계에서 내가 정말로 찾고 싶었던 것은 공정함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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