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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Jul 10. 2024

51. 본다는 불안정한 행위

당신과 나의 고통



완벽하지 않은 존재



완벽하지 않은 존재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무수하게 넘어지고, 좋은 길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하기도 하고 좋은 길인 줄 알고 가지만 아니었음을 깨닫고 후회하기도 한다.



인간은 무수한 시행착오 속에 산다. 그런 시행착오들을 바라보며 후회하고 슬퍼하거나 분노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시행착오였는 줄 알면서도 같은 시행착오를 또 만들어내기도 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완전하지도 완벽하지도 않다. 오감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독수리처럼 먼 곳에서 아주 작은 사냥감을 볼 수도 없을뿐더러 고양이처럼 어두운 곳에서 우아하게 걸어갈 수도 없다.  








불안정한 행위



본다는 불안정한 행위



독수리나 고양이처럼은 아니지만 우리는 두 눈으로 타인을 본다. 보는 행위는 의도적으로 숨기지 않는 한 대체적으로 드러난다. 본다는 그 행위는 공적임과 동시에 아주 사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나에게서 뿐만 아니라 타인의 내부에서도 일어나는 과정이다. 봄과 보여짐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우리는 타인을 보는 걸까, 타인이 우리에게 보여지는 걸까? 시각의 출발은 어디일까? 봄일까 보여짐일까? 보이니까 보는 것일까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일까? 우리의 봄, 혹은 보여짐은 시각일까 주관일까.


그렇다면 타인에 대한 판단은 어떤 과정에서 일어나는 걸까? 보여짐에서 일어날까 보임에서 일어나는 걸까? 인간이라는 존재가 완전하지 않은 것처럼 시각 역시 완전하지 않아 왜곡이나 착시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자동차에는 시각의 왜곡이나 착시를 줄여 사고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여러 개의 거울이 있다.








관점은 필요이다



관점은 필요이다.



누군가를 보면 너무 밉거나, 자꾸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속상하거나, 기쁘거나 행복하거나, 설레거나 기대감이 들거나 할 때, 그 사람을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를 보는 것이다. 본다는 행위에는 반드시 나의 관점이 포함되고 그래서 그것은 아주 사적인 과정이다. 보는 일은 객관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타인의 나에 대한 관점은 대부분 그 자신을 위한 필요이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관점이 아닌 것이다.


타인의 평가와 판단에 지나치게 무게를 둘 필요가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래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다. 타인을 통해 나의 필요를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시시때때로 타인을 없애고야 마니까 외롭고 고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을 없애려는 도저히 다듬어지지 않는 그 본능 앞에서 어떤 날은 깊은 혐오감이 들어 몸이 떨린다. 그 본능을 내 안에서도 발견하게 되면 타인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분노나 원망, 그리움이나 슬픔 같은 것들이 다 내 것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흘러가버린다. 모든 것은 풍화되며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가져왔던 신념들이 해체되어 버린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고개를 들어 세상을 둘러보면 자기만의 신념에 몰두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보편적인 진리같은 건  없었다. 세상은 하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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