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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제남 Jul 18. 2024

장맛비로 인한 피난길

피난 갔다 돌아온 집안에는 메기가 퍼덕거렸다.

장맛비가 많이 오니 어릴 때 해마다 장마를 피해 피난 갔던 생각이 난다.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 오기 전까지는 시골에서 자랐다.

화천과 춘천(춘성군)의 경계지역이라 앞산은 화천이고 집은 춘성군으로 북한강 상류지역이다. 

내가 태어난 집은 작은 초가집으로 집 바로 앞에는 산이 있고 그 아래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부모님은 원래 살던 아래 마을에서 둘째 언니까지 낳고 춘천댐공사로 살던 마을이 수몰되면서 지금의 마을로 이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셋째인 나부터는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여름 장마철이 되어 요즘처럼 비가 많이 오면 어김없이 개울은 범람했다. 

개울가에 있는 집들은 물론이고 마을 가운데에 있는 모든 논까지 범람한 누런 강물에 잠기곤 했다. 

장마철이면 반복되는 일이었다. 

장맛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이면 마을사람들은 개울가 강둑에 서서 시시각각 눈에 보이게 불어나며 우르릉 쿠르릉 무서운 굉음을 내며 흘러가는 누렇고 사나운 강물을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어린 나도 같이 따라가서 세차게 우르릉 소리를 내며 내달리는 누런 강물을 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아득하고 어지러워지면서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같이 느껴졌다. 

저 물살에 휩쓸려가면 어떻게 될까 하는 마음이 들었던 걸까 싶기도 하고, 물흐름 자체가 너무 장엄해서 인 거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물이 점점 불어나면 집집마다 피난보따리를 싸야 했다.

그리고 논 건너편에 있는 마을주민의 집들로 피난을 가야 했다. 어떤 짐이 보따리에 들어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어린아이까지 다들 덩치에 맞는 짐보따리를 하나씩 들어야 했다. 나도 작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물에 잠겨 잘 보이지도 않던 논두렁길을 따라 1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한 발 한 발 옮기며 건너가야 했다. 


장맛비가 잦아지고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물 수위는 빠르게 낮아졌다. 

그러면 다시 피난짐을 챙겨서 물에 잠겼던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온 집에는 물이 빠진 헛간이나 방에 진흙이 잔뜩 쌓여있었고 그 위에 메기를 비롯하여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퍼덕거리며 뛰고 있었다. 

그 장면이 지금도 너무나 선명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부모님은 엉망이 된 집안꼴을 수습할 일이 큰 걱정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어린 우리들은 퍼덕거리며 널려있는! 물고기가 너무나 신기했던 기억이 더 많다.  


해마다 반복되는 물난리를 피하기 위해 아버지는 내가 7살이 되던 겨울에 건너편 마을에 새로 집을 지으셨고 우리는 그 집으로 이사를 했다. 여름마다 머리에 작은 보따리를 이고 물이 가득한 논 사이로 더듬더듬 겨우 논두렁길을 따라 장마 피난을 가야 했던 고난은 그제야 끝이 났다. 

그 뒤로 새마을 운동을 하네 어쩌네 하면서 강둑공사를 하면서 개울물이 범람한 적은 없었던 거 같다. 그런데 최근의 폭우상황은 다시 어린 시절의 공포를 떠올리게 만든다. 세상은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 최소한 기후문제는 전혀 아니라고 다들 답할 수밖에 없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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