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씨가 귀한 요즘,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쓰다 보면의미와 감동이 더 콱 마음에 와서 박히는 듯하다.
그리고 정성 들여 적은 내 글씨의 글을 소리 내어 읽어 보며 또 한 번 위로를 받는다.
[어른의 어휘력]으로 유명한 유선경 작가의 책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를 쓰는 동안 그녀가 추천한 도서 목록도 눈길을 끌었다.
그중에 좋았던 글귀는 책을 찾아서 다 읽고 싶어졌다. 시, 소설, 산문 등으로 다양하다.
오늘 필사한 내용은 윤동주의 시이다.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섭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씃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少年)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골―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골은 어린다.
- 윤동주, 「소년(少年)」 -
뛰어난 비유로 다시 한번 곱씹어 보게 되는
시 분야는 필사의 꽃인 듯하다.
말 맛이 살아나는 문장에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나 역시 살기 위해 책을 읽고 있는데 어휘력이나 문해력의 목적이 단순히 잘 읽고 잘 말하며 잘 쓰는데만 있지 않고 궁극적인 목적이 '살기 위해서'라는 말에격하게 공감했다.
어휘력과, 문해력, 문장력은 '독서'와 '필사', '글쓰기'를 함께 실행할 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그나마 짧은 기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성장한다고 한다.
전작 [어른의 어휘력]에서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 게 건망증이 아니라 어휘력 부족일 수
있다는 말에 뜨끔했다. 요즘 나 역시 단어가 특히 외래어의 경우 잘 떠오르지 않는날이 많아지고 있어서 어휘력 부족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EBS에서 나온 문해력 테스트를 보고 솔직히 점수가 궁금해서 도전해 보고 점수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나를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다.
어휘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힘이자 대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라 어휘력을
늘리고 싶어 시작한 필사가 쓰는 내내 나를 들여다보는 고요함을 선물해 주어서
편안했다. 다만, 하루 한 장 이상 필사는 손가락이 아프기에 추천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평일 낮시간 5분의 짬을 내기가 어려울 만큼 업무에 치이고 바쁜 것은 사실이지만
앞만 보고 달리느라 분을 다투고 하나라도 더 일하느라 걸린 몸과 마음의 병은 누가 치유해 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혹의 나이에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부서질 것 같은 위태로운 마음까지 생기니,
짧은 글귀를 따라 쓰며 인생의 숨을 고르는 하루 5분의 시간이 은근 힐링이 된다.
뭔가를 안 하고 있으면 불편하고 생각이 많은 내가 살기 위해 뭘 할 때 마음이 편안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