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작품을 읽고
The Elegy of Whiteness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하여 그녀의 책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현재 예스 24 1~10위를 모두 차지하고 있는 그녀의 작품을 보며 그간 구독한 밀리의 서재에 그녀의 책이 한 권도 없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그러고 보니 더 두꺼운 소설들도 오디오북이나 전자책으로 다 나와 있는데 말이다. 우리나라 문학계의 블랙리스트였던 그녀가 외국에 인정받는 모습을 보며 한없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내 일처럼 기뻤다'는 표현이 가장 그날의 기쁨을 대변해 줬다. 노벨문학상을 취소하라는 시위를 하고 있는 단체를 보면서 그들이 같은 한국인임이 수치스러웠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와 같은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건 원서로 그녀의 책을 마구마구 읽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황홀한 장점이다. 아무리 좋은 소설도 번역투의 문체에선 작가가 전하고자 한 숨은 뜻과 미묘한 어조까지 다 파악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한글의 말 맛! 그중에서 사투리의 말 맛을 살리기 힘든데 번역은 어떻게 한 건지도 궁금해졌다. 그런데 그녀의 작품들은 흡인력이 너무 세서 읽은 작품마다 며칠을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고 감정소모가 심하기에 읽기를 주저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처음 읽은 책은 [채식주의자]로 유명 작품인데 사전 정보 없이 읽었다가 파격적인 내용에 한번 더 놀란 기억이 있다. 3개의 단편이 하나의 내용으로 이어지는데 3명의 화자의 입장에서 씌어 독특했는데 2007년 작품이라 더 놀랐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 주인공 영혜의 폭력에 대한 저항과 몸부림이 처절하고 난해했지만 참으로 오랫동안 여운을 준 작품이다. 채식주의자 역시 주인공인 영혜의 시각이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이 지어준 이름으로 사회적 관습과 편견이 가진 폭력성을 그녀만의 문체로 고발한 소설이다.
작가가 마음에 들면 그의 책을 파서 보는 스타일이라 또 뭘 읽을까 찾다가 광주에서 초, 중, 고, 대학까지를 나온 나는 5.18을 다룬 [소년이 온다]를 찾아들게 되었다. 읽는 내내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먹먹했으며 손을 뗄 수 없었던 작품이다. 단숨에 읽어 버리기에는 너무나 절절해서 또 내가 아는 광주의 이야기여서 읽고 나서 한참을 잠을 못 이루게 되었다. 한강 작품 중 가장 보석 같은 걸작이라 시간이 지나고 또 한 번 읽고 싶다. 어린 시절 터미널에서 봤던 5.18 희생자들의 사진과 시내 양영학원, 전대병원 근처의 잦은 데모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더 아렸다. 대학 신입생 시절 5월이 되어 5.18 묘역을 참배하고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에 대해 리포트를 쓴 기억이 났다. 1,2,3인칭의 시점 변화 덕분에 바로 옆에서 장면을 들여다보는 느낌으로 한 장 한 장 조심스레 읽었고, 잊을 수 없는 문체와 표현력에 소름이 끼치고 감내하기 힘들게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컨디션이 좋을 때 읽어야 이겨낼 수 있는 소설이기에 차마 추천하기도 마음이 아픈 작품이었다. 감내하기 힘든 분노, 슬픔, 가슴미어짐... 엄마가 아들을 생각하며 쓴 장면에서 찐 감자가 나왔는데 읽고 나서 저녁에 감자를 쪄 먹으려다 울컥 눈물이 났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이후 [여수의 사랑]에 도전했다가 우울하고 어려워서 일부러 멀리 놓아 버렸다가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하고 더 유명해진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어 들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바로 제주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여객선 터미널 근처에 있는 4.3 사건을 조명한 전시관을 찾아가면서 해설사의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역사적 사건을 들을 수 있어 기억이 오래 남는다. 역사 속에서 잊힐 수 있는 제주 4.3 사건, 피해자의 딸이 전하는 과거사 이야기를 너무나 몽환적인 분위기로 따라가게 만드는 한강만의 필체가 눈을 뗄 수 없게 독특했다. 주인공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이 모든 이야기가 꿈에서 하는 이야기인 건가 끝이 너무 궁금해서 단숨에 읽게 되었다. 한 공간에 있지 않아도 함께 있는 듯한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사랑이야기, 고통스럽지만 그 사랑을 외면하지 못하기에 폭력 앞에서도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순간에도 기억은 영원하기에 죽음을 계속 살아있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목이 붙여진 것 같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이후 한강 작가의 책 중에 뭘 읽을 까 고민하다가 얇고 여백이 많아 [흰]을 집어 들게 되었는데 얇은 시집 같은 이 책 역시 쉽게 읽어지지 않았다. 무참히도 흰 것들에 대한 총 65편의 이야기가 각각인 듯 묘하게 연결되어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하게 했다. 소설이지만 독백 같은 에세이에 작가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고 사실감 넘치는 이야기 중에서 태어난 지 2시간 만에 죽은 언니의 이야기는 작가의 이야기가 맞다고 한다. 가난하고 어렸던 스물셋의 엄마는 갑작스러운 산통에 아버지가 오시기를 기다릴 새도 없이 혼자서 아이를 낳았고 '죽지 마라, 제발'하며 아이의 삶을 기도했지만 아이의 배내옷은 수의가 되었다. 죽은 언니를 대신해 그 자리에 태어나 삶을 이어가고 죽은 언니에게 빌려 준 작가의 삶과 다시 나로 돌아와 그녀와 작별해야 하는 순간을 그리면서 인간은 흰 강보에 싸여 삶을 시작해 흰 수의에 싸여 생을 마감하는구나를 새삼 느꼈다. 사는 내내 언니의 죽음 뒤에 태어나 아마도 느끼지 않아도 될 책임감과 죄책감, 부담감 등의 절대 가볍지만은 않은 감정들을 품고 평생을 살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에 흰 것이 이렇게 많았구나. 절대 더럽혀지지 않고, 더럽힐 수도 없는 흰 것은 작가의 시선에서 차갑고 죽음에 가까운 이미지가 가득해 읽는 내내 연민이 느껴지고 우울했다. 그렇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딛고 삶이 시작되고 죽음의 끝에서 삶이 열리는 것이 생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느낌을 받았다. 죽은 자를 향해 성큼 다가가 먼저 손을 내미는 행위는 죽은 자가 잊히지 않게 하는 진정한 위로이자 애도이지 않을까. 그리고 죽음이 슬프기만 한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태어난 모든 자는 죽는다는 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와 남겨진 사람과 떠나간 사람의 경계에 대하여 '흰' 성질을 가진 많은 것들을 엮어 기억 속 모습을 천천히 풀어내고 있다. 모든 흰 것을 떠올릴 때마다 작가의 글이 먼저 생각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