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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현정 Oct 08. 2024

6. 쿠스코 > 라파즈 (볼리비아) _ 고산병의 연속

23년 7/8일

밤 12시.

쿠스코에서 리마 공항에 도착했다.

라파즈 행 비행기를 3시간 정도 또 기다려야 했다.

(엄마 정말 미안해)


이때 처음으로 가방 세 개를 다 수화물로 넣었다.

너무 홀가분한 기분이었는데, 이것이 라파즈 공항에 도착했을 때 재미있는 사연을 만들어 냈다.


리마 공항에서는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지 않았고,

3시간의 비행도 간식 시간 한 번,

입국 신고서 서작성, 코로나 확인서 등을 작성하니 금방 끝이 났다.


볼리비아 비자까지 완벽하게 준비한 나로서는 걱정이 없었다.


** 볼리비아 비자를 받기 위해 서울에 있는 볼리비아 대사관까지 방문했었다.

본인만 된다고 하여 (대리인이 갈 경우 위임장 등이 필요했다.) 엄마, 아빠까지 서울로 출동하셨었다.

조금 번거롭고 돈이 들었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받기 전, 코로나 백신 접종서를 보여달라는 것이다.

아...? 아니.... 그 접종서는... 물론 당연히 준비했지만!!! 배낭에 있다.

배낭은 수하물로 나올 것이고, 맙소사.


접종서 제출은 입국심사 직전에 한 아주머니께서 방호복을 입고 확인하고 계셨다.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눈치 봐서 그냥 들어가는 외국인도 보았다.


나는 이미 잘못 걸렸다.

수하물에 있다고 말을 하니 이쪽에서 기다리라는 것이다.


인터넷 연결도 되지 않고, 찍어 둔 사진도 없었다.

오로지 배낭 파일에 있을 뿐.


잠시 기다리니 라탐 항공 승무원이 왔다.

열심히 설명을 하고 내 수화물 (주황 배낭) 스티커를 건네주었다. 

이 파일이 필요했다 ㅠㅠ

승무원이 내 수화물 스티커를 들고 가방을 찾으러 갔다.

그렇게 30분?? 정도 기다렸다.


코로나 백신 확인서를 제출하지 못한 우리 가족과 서양 할머니 한 분, 여자 한 명만 서있었다.

'그래 너희 일단 입국 심사하는 곳 가서 줄 서'

'가방이 곧 올 거예요. 감사해요 아주머니.'


입국 심사 줄을 서게 해 주셔서 일단 한숨은 돌렸었다.

그리 철저하지도, 융통성이 없는 곳도 아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승무원이 내 가방을 찾아들고 왔다.

아주머니가 옆에서 기다리고 계셨기 때문에 얼른 가방 커버를 벗기고 가방을 딱 여는데!


하... 그제야 생각났다.

참 빨리도 생각난다.

가방 지퍼를 열면서... '아 엄마 캐리어에 파일 있어' 맙소사.  


다행히도 가방을 가져다준 승무원 자리를 떠난 상태였다.

승무원이 옆에 있었다면 민망함에 몸 둘 바를 몰랐을 것이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는 '없어?'

'다른 가방에... ' 나는 살짝 웃었다.

하하 맙소사.

아주머니가 '주사 맞았냐. 몇 번 맞았냐' 물어봤다.

엄마 아빠는 세 번, 나는 네 번.

그렇게 그냥 넘어가 줬다.

감사해요.

그냥 웃었다. 허탈함에. 엄마, 아빠도 웃었다.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이게 바로 자유여행이야, 패키지였어 봐 가이드가 다 챙겨 줬다니까? 이야 재밌는데~ 우리 엄마, 아빠 별 경험을 다 해보네'라고 했다. 하하

(엄청난 것은... 그 아주머니와의 모든 대화를 3살 같은 스페인어와 몸짓으로 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걱정했던 볼리비아 비자는 아무 문제 없이 나올 수 있었다.

이후 나의 파일은 절대 배낭 or 캐리어로 들어가지 않았다.


시간은 오전 7시.

환전을 조금 하고, 추워진 날씨에 옷을 갈아입었다.

유심을 사야 하는데 문을 8시에 연다고 했다.

(시내에서 사는 방법을 찾아보지 않아서 공항에서 사고 싶었다.)


도착 직후 작은 이슈가 있었기에 겸사겸사 조금 쉬려고 공항 이층에 있는 음식점으로 향했다.

정신없는 상황에 엄마도 고산병을 살짝 잊고 있었던 듯했다.


안정을 되찾고 나니 엄마는 컨디션이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고도 4000m에서도 멀쩡하구나.


얼른 아침을 먹고 약을 드셔야 했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 엄마를 위해 메뉴를 고르다 보니 결국 샌드위치를 먹기로 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안 먹던 서브웨이!!!

아.. 한국에서 좀 먹어볼걸.... 어떤 것이 맛있는지 모르겠다.


대충 샌드위치 한 개와 샐러드 한 개를 시켰다.

커피가 없어서 고산병에 도움이 된다는 코카차 한 잔과.

생각보다 엄마 아빠가 맛있게 드셨다.

어쩔 수 없어서 드신 거지만... 그러다 보니 8시가 되었다.

그냥 먹었던 볼리비아 서브웨이!


통신사 매장으로 향했다.

어?? 가드가 있다.

한 명만 들어오라고 하고, 직원의 데스크도 플라스틱 가림막이 있었다.


라파즈가 전체적으로 치안이 좋지 않다고 들었지만 환전소도 아닌 통신사 매장에서 이렇게 나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을 줄이야.

우유니에서도 잘 터진다고 하는 그 통신사에서 유심 구매를 완료했다.

(40볼리비아노 (7천원 정도) 저렴했다. 며칠 짜리였더라... 무제한!)


택시를 타고 호스텔로 이동했다.

TV에서 봤던 교통체증을 예상했지만, 공항에서 도심 이동은 고속도로가 잘 되어 있었다.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절벽? 언덕? 위에 있는 라파즈 도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똑같은 색의 무수한 건물들이 빼곡하게 있었다.

땅의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과연 저 아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집은 어디일까?

컨디션이 좋지 않은 엄마, 아빠도 감탄을 했다.

고속도로를 나와서, 시내로 들어섰다.

이곳도 리마와 마찬가지로 운전의 달인들이다.

매연과 노후된 차들, 클락션 소리, 옆차와의 거리 5cm.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 호스텔에 도착했다.


오전 9시. 체크인은 되지 않는다.

결국 짐만 맡기고 라파즈 교통수단인 텔레페리코(곤돌라)를 타보기 위해 나왔다.

(쿠스코에서도 보았지만) 아주머니들이 머리를 양 갈래로 따고 펑퍼짐한 치마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전통 복장을 하신 분들이 도시의 분위기를 색다르게 만들어 주었다.

고산병과 장시간의 비행으로 너무 지쳐 El alto 전망대만 다녀오기로 왕복행 티켓만 끊었다.

** 1인 왕복 6볼리비아노


우리나라에서는 관광지에서 타는 곤돌라를 이곳은 대중교통으로 시민들이 자유롭게 타고 있었다.

8명이 탔는데 우리 가족 말고 모두 현지인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우리를 세상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우리 가족은 창밖을 세상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언덕 위 빼곡한 집들 위로 곤돌라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언덕의 앞, 뒤로 장관이 펼쳐졌다.

같은 색의 건물들 틈 사이로 길이 있었다.

어떻게 그곳을 운전해서 다니는 것인지 너무 신기했다.


우리나라에서 같은 풍경을 봤다면 좁다, 답답하다, 위험하다 등등의 부정적인 모습만 보였을 듯한데,

역시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너그럽게 해 주고 어떤 상황도 아름답게 보여주는 힘이 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타고 El alto 전망대 도착했다.

사실 크게 볼 건 없었다.

하지만 이곳을 안 오면 라파즈 인증샷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밥을 먹을 생각도, 피곤해서 돌아다닐 생각도 들지 않았다.

벤치에 앉아서 가방에 있던 과자를 (비행기에서 준 간식) 먹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있었을까. 내려가는 텔레페리코를 탔다.

내려가는 길에는 또 다른 풍경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너무 신기했던 운동장!!

사람들의 주거 생활 사이에 있다는 공동묘지도 하늘에서 구경하기!

(아빠가 미리 알고 계셨던 정보가 있어서 아빠에게 공동묘지 설명을 들었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빼곡한 집들 사이에 넓은 운동장(스탠드 석도 있는!)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우리 가족... 적당한 따뜻함과 햇살, 조용한 텔레페리코 안에서... 셋 다 졸았다.

꽤 오랜 시간 내려가는데 엄마, 아빠가 조는 것을 보고 나도 졸았다.


숙소에서 12시 체크인을 해줬다!

너무 고마웠다. 기뻤다.

엄마, 아빠가 피곤해하셨는데 겨우 한시름 덜었다.

(일정을 무리하게 짠 내 탓이다.)

숙소 근처에서 바라본 라파즈의 모습

숙소를 예약할 때, 경치 하나만 보고 저렴한 곳을 예약했었다.

그래서 난 숙소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없었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간 숙소는 생각보다 좋았다.

두 개의 넓은 침대, 큰 테이블, 볼일은 없지만 TV, 여분의 담요까지.


최고는 경치! 역시 경치 하나는 끝내줬다.

라파즈 언덕의 빼곡한 집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방에서 보이던 라파즈 언덕의 모습

고산병으로 힘든 엄마는 숙소에서 쉬고, 아빠와 둘이서 점심을 사러 나갔다.

나와 아빠의 유일하게 사이좋은 시간. 술 살 때, 마실 때.


숙소 근처에 포장마차처럼 보이는 허름한 곳에서 음식 포장을 했다.

아빠가 그림을 보고 메뉴를 골랐고, 나는 열심히 설명을 했다.

거의 9개월의 기간 동안 틈틈이 배워간 스페인어는 식당에서 가장 유용하게 써먹었다.


음식 포장 주문을 해 두고, 옆에 구멍가게 느낌의 슈퍼로 갔다.

아빠와 나의 평화로운 술 고르기 시간이다.

'저거, 저기 있다.'

아빠는 위스키를 기어코 찾는다.

나는 열심히 설명해 얻어냈다.

맥주 두 캔, 물까지 구매 성공.


다시 음식점으로 가서 포장한 음식을 들고 호스텔로 들어갔다.

아빠가 방에서 먹으면 안 될 것 같다고 하는데 테이블이 떡하니 있는데 안될 이유가 있을까?

모르겠다. 일단 사 온 음식을 펼치고 시원한 맥주를 깠다.

그냥 빨리 먹자!

건조하고 추운 날씨로 편도가 계속 불편했다.

이렇게 목이 답답할 때는 아이스크림이 최고지만, 시원한 맥주도 잠시 목의 답답함을 해소시켜 준다.


크~ 비위생적이고 제대로 된 주방도 없는 곳에서 산 음식들이 다 너무 맛있었다.

사실 비위가 약한 편이신 엄마는 가게 상태를 못 보셔서 다행이었다.


고기도 부드러웠고, 엄마, 아빠는 국물이 생각보다 맛있어서 만족하셨다.

따로 챙겨준 소스도 매콤 새콤하니 맛있었다.

맛있는 찐 현지 음식과 맥주까지 완벽했다.

(심지어 메뉴 세 개 가격이 45볼리비아노 8000원 정도였다.)


간단하게 배만 채우신 엄마는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드셨다.

나는 아빠와 평화의 시간을 조금 더 가졌다.


어느 정도로 평화롭냐 하면, 창문으로 보이는 숙소 경치가 너무 좋아서 맥주를 들고 사진을 찍으니, 아빠가 얼른 맥주 옆에 위스키를 가져다 들었다.

재밌어 정말.

그렇게 둘이 한참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왜 기억이 나지 않을까?)

'La Paz'는 스페인어로 '평화'라는 뜻이다.

그래서 도시가 주는 느낌 때문일까?

아니면 술 한 잔에 평화로워진 것인데 의미를 부여하는 걸까?

정 없이 쉴 수 있다는 마음 때문일까?

나도 편안하고 걱정 없이 낮잠에 들었다.


오후 4시. 두 시간 정도 잤으려나.

깨고 나니 세상에 방이 너무 추웠다.

엄마는 옷을 껴입고 자고 있었고, 나는 팔짱을 끼고 꼼짝 않고 잠을 잔 것이었다.

방에 여분으로 있던 담요로도 부족했다.


아빠가 너무 춥다며 저녁도 먹을 겸 나가서 해지기 전에 걷고 오자고 했다.

일어나 옷을 입고 간신히 거리로 나갔다.

그냥 뭐.. 아까와 똑같은 거리였다.

많은 차와 매연, 엄청난 운전 스킬과 눈치로 길 건너기.

일단 대책 없이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웨딩 카도 보고 축하한다고 박수도 쳐줬다.

그렇게 한 바퀴 도는데 30분도 안 걸린듯하다.

다시 숙소 근처 길로 왔을 때, 저녁 먹을 곳을 찾아 헤맸다.

숙소 위치가 정말... 별로였다.

(다시 한번 더 _ 경치 하나 보고 예약한 곳)


마땅한 식당이 없었고, 혹시나 하고 터미널 안까지 가봤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결국 오믈렛을 파는 것으로 추정되는 가게로 들어갔다.

그런데 오믈렛이 안된 단다.


현지 음식 두 개를 시켰다.

소지 감자튀김과 밥, 고기, 계란이 있는 음식이었다.

배가 고프지 않아 다행이지 정말 맛없었다.

(여행 기간 통틀어 가장 맛없는 음식! – 싸다 35볼리비아노 6500원)

술도 시키지 않고 정말 대~충 먹고 나왔다.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아빠가 방이 너무 춥다며 데스크에 얘기해 보라고 했다.

엄마, 아빠는 먼저 방으로 가고 나는 데스크로 갔다.


데스크에는 체크인할 때와 다른 직원이 있었다.

직원에게 히터를 요청하자 잠시 알아보겠다고 한 뒤, 방으로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돈을 더 내라는 것이다.

음.. 저렴한 호스텔, 역시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구나

30볼리비아노 5500원? 정도로 비싸진 않았다.


겨울이라고 하는 7월의 볼리비아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도

고산병까지 있는 엄마에게

라파즈의 첫날은 너무나도 추웠다.

(미안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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