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교실을 훔쳐보았다.

초등학교 1학년 쉬는 시간

by 필로니


1학기 때 첫째 채니의 학교에 도서관 봉사를 다녔었다. 봉사활동 첫 번째 날, 너무 설레서 창문으로 채니를 훔쳐보려다가 선생님이랑 눈이 마주쳐 급 쭈구리가 된 전력이 있어 한동안 교실 근처에도 안 갔었다.



그러다 어느 날 학교에서의 채니가 너무 보고 싶어져 봉사활동 가기 전에 용기를 내어 채니의 교실로 가서 창가에 붙어있는 아이를 훔쳐봤는데.. 충격이었다.




아침 독서시간에 읽으려고 가져간 책을 ‘쉬는 시간에’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사진을 몰래 샤샤샥 찍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생각을 안 해서 혼났다.



책 읽는 걸로 잔소리하는 걸 싫어해서 웬만하면 안 하려고 노력하는데, 4-5살 때부터 하루에 평균 세 시간씩 책 읽던 아이라 매일 10분 찔끔 책 겨우 읽는 게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아 나도 모르게 잔소리가 튀어나가곤 한다.



그러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내가 읽으려고 빨강머리 앤을 빌려왔는데 채니에게 이런 책이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 책상에 두었었다. 같이 빌려온 저학년 문고판 책들이랑 나란히.



그리고 엄마가 빌려온 책들을 보여주다가 ‘조금 찔러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얇은 게 네 거야. 이 두꺼운 빨강머리 앤은 엄마 꺼야. 네가 읽기엔 너무 두꺼워. 읽기 힘들거야. 빨강머리 앤 어른버전이야.”

하고 아주 살짝 자극을 줘봤다.



그랬더니, “왜?? 나 이거 읽을래!! “



후후훗. 걸려들어쒀.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채니가 그 책을 학교에 가지고 가서, 쉬는 시간에 친구들 다 노는데 혼자 앉아서 책 읽고 있는 걸 우연히 내가 딱 본 거다. 복도에서 춤 안 춘 게 다행이었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사립초에서 오래 근무하신 김선호 선생님이 방송에서 말씀하셨다. 고학년 아이들 중 쉬는 시간에 책 읽는 아이들이 있다고. 그 아이들이 정말 신기했다. 쉬는 시간에 책을 읽는다고? 저런 별에서 온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했었다. 그런데 1학년인 내 아이가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닌가.

그날 이후 정신 차리고 채니한테 책 읽으란 말을 쏙 집어넣었다. 책에 대한 좋은 기억을 심어줘야지 책 읽기가 잔소리로 기억되면 안 되니까.



박혜란 님의 책 <믿는 만큼 자란다>가 생각났다.

다시 읽어야겠다. 초심을 잃어도 너무 잃었다.



안 믿으면 안 자란다.

믿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자란다.



우리 아이들은 더 잘하고 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요.



정 안 믿기면 저처럼 훔쳐보시든가요.

훔쳐보다 선생님과 눈 마주치면 매우 초라함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