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에게 나타난 귀인, 그 아이
이 글에서 사용하는 '영어유치원', ‘영유’라는 표현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편의적 명칭입니다. 실제로는 교육부 인가를 받은 정식 유치원이 아닌, 영어교육을 중심으로 한 사설 유아교육기관을 지칭합니다.
키즈노트에 나타난 H
첫 등원을 앞두고 키즈노트로 아이 친구들 명단을 훑어보던 중 익숙한 이름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가정어린이집을 다니던, 꼬물이 시절 함께 했던 H였다. 그 아이가 같은 반이었다.
같은 어린이집에 다녔어도 나와 그 엄마 모두 워킹맘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엇갈렸는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등원 첫날, 나는 단번에 H를 알아보았고, 용기를 내어 H의 엄마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은 2년의 공백 기간 때문에 서로를 뚜렷이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같은 어린이집' 출신이라는 사실 하나가 친밀감을 만들어내는 듯했다. 결국 H 덕분에, H도 우리 아이 덕분에, 낯선 영유 생활을 순조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인생 첫 단짝 친구
아이들은 웃음 코드도, 관심사도 비슷해서 하루아침에 단짝이 되었다. 마음에 맞는 친한 친구가 없었던 우리 아이에게는 처음으로 마음을 준 친구였다. 엄마들끼리도 나이가 비슷하고 둘째를 키우고 있는 상황도 같아 금세 가까워질 수 있었다.
하원만 하면 신나게 놀이터로 달려갔다. 놀이터에선 집에 가려고 하질 않으니, 어느 정도 놀다가 "집에 갈래, 도서관 갈래?"를 시전 하면 아이들은 헤어지기 싫어 당연히 도서관에 간다고 했다. 그렇게 도서관으로 유인(?)해 책을 보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겨우 작별을 하곤 했다. 아쉬운 마음이 너무 커서 인사하고 헤어지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다른 학원 스케줄이 없었기에 가능한 루틴이었다. 하원 후 놀이터 -> 도서관에서 해 질 녘 헤어짐. 지금 돌이켜보니 그 시간들이 참 좋았구나 싶다.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영어책이 있으면 H 엄마에게 공유했다. 그럼 그 아이도 그 책을 읽게 되고, 두 아이는 자연스럽게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밌게 보는 영어 영상 정보도 공유했다. 아이들은 공통의 관심사와 연결된 책이나 영상으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다. 7살 부터는 그 대화들이 모두 영어로 이루어졌다. 아이들에 영어는 공부의 대상이 아니라, 놀이의 도구였다.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영어에 스며들게 하고 싶었던 내 교육 방향과 같은 생각을 지닌 H 엄마 덕분에, 내가 추구하는 교육방식대로 아이를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뒷부분에도 나오겠지만 영어학습이라는 면에서 이 아이들이 만드는 시너지는 아주 대단했다. 성적도 비슷해서 엄마들끼리 고민을 나누기에도 편했고 많은 부분을 서로 의지했다(아이들은 자신의 성적을 몰랐지만).
H도, 그 엄마도, 나에겐 귀인 같은 존재였다. 참 고맙고, 소중한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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