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보다 수업 태도
얼마 전 평화롭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정리하던 중 갑자기 다음 날이 아이의 먼슬리 테스트 날이라는 게 떠올랐다. 주말 내내 외출하고 놀기만 해서 공부는 하나도 안 한 상태.
너무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어머! 너 내일 먼슬리 테스트 아니야?!"
아이는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응 엄마. 내일 먼슬리 맞아. 근데, 왜? 나 수업 시간에 집중해서 잘 듣는데?"
...아차 싶었다.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여섯 살 유치부 시절부터 시험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그토록 애써왔는데, 그래서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않는 아이로 키워왔는데, 갑자기 2학년 첫 시험을 앞두고 이렇게 호들갑을 떨고 있는 이 한심한 모습은, 뭐지?
앞서 말했듯 아이는 2학년이 되면서 탑반 중에서도 상위 반, 즉 탑 오브 더 탑반에 들어갔다. 늘 상 받던 아이들이 모인 반. 그런 반에서 보는 첫 시험이라 나도 모르게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혹시 우리 아이만 와장창 틀리면 어쩌지?' 그 불안감이 튀어나온 순간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늘 말한다. 학원이든 학교든 수업 태도가 제일 중요하다고. 선생님과 눈을 맞추고, 귀 기울여 듣는 성실한 태도만 몸에 배어 있다면 시험 점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나중엔 점수도 중요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러니 아이는, 그 난리를 피우는 엄마에게, 시험인데 뭐? 왜 그렇게 난리야 엄마. 나 엄마가 강조하는 그 수업 태도 매우 좋은데 뭐가 문제야? 하는 표정을 지었던 거다.
미안하다 딸아. 엄마 사실 매일 누르고 있단다. 탐욕을, 점수 욕심을, 엄마는 점수와 등수만이 중요한 학창 시절을 살았고, (너의 외할머니가 늘 결과를 중시했거든) 그게 습관이 되어 엄마는 네 점수에 항상 일희일비해. 너에게만은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야. 물론, 엄마의 마음가짐 자체를 바로 잡으려고 늘 수양하며 노력하기도 해.
얼마 전 김주환 교수의 <GRIT>이라는 책에서 '긍정적 정서와 문제 풀이 능력'에 대해 읽었다. 시험 보기 전에는 공부를 더 하는 것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고 한다.
이런 문장을 만난 김에 그날은 시험공부 대신 갓 구운 따끈한 스콘만 먹이고 학원에 보내려고 마음먹었다. 엄마의 스콘 계획을 들은 아이는 말했다.
"엄마 그래도 지문 한 번은 읽고 갈래.“
역시, 자율성을 존중해줘야 한다. 놔두면 아이는 스스로 공부한다. 박혜란 작가의 말처럼 아이는 믿는 만큼 자란다. 시험을 못 보고 싶은 아이는 없다. 공부가 잘 안될 뿐이지, 안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래서 부모는 잘 이끌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이의 공부 정서를 지켜줘야 한다. 나는 아이가 ‘공부’보다는 ‘배움’을 즐겨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모르는 것을 만나면 호기심에 눈이 반짝거리고, 그걸 알게 되었을 때 희열을 느끼고, 그렇게 배움의 기쁨을 아는 아이의 모습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으면 한다.
아직 초2인 우리 아이. 영어학원에서 보는 시험 따위, 우리 아이의 큰 인생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티끌이다. 다 맞으려고, 친구들보다 잘하려고, 1등 하려고 하기보다 영어를 알아가며 자신의 세계가 넓어짐을 느꼈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시험 결과가 나오면 초연해질 수 없다. 점수를 보고 순간적으로 기뻐하기도,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아이에게 말한다. “수업 시간에 열심히 듣는구나? 수업 태도가 좋은가 보구나? 그러니까 이렇게 결과가 좋지.”
결과만 보는 아이로 자라지 않게,
그 과정 속에서 성실함이라는 보석을 발견하고
그걸 지닌 채 배움에 임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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