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준은 나와 나란히 걸으며 창호의 소식에 대하여 알렸다. 혁준은 중학생이 되어서도 창호와 같은 학교에 진학하여 둘도 없는 친구였다고 했다. 같은 무리에 어울려 다녔고, 으슥한 뒷골목에서 담배를 배웠다. 심심하면 함께 멀리 나가서 여자아이들과 어울리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 처음에 담배를 피기 시작할 때는 누군가가 훈장질이나 꼰대짓을 할까봐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정해진 구역에서 피우고 있으면 아무도 귀찮게 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자 창호는 점점 대범해졌고, 점점 정해진 구역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보란듯이 담배를 피웠다. 어떨 때는 점심시간에 학교 옥상에 올라가서 혁준과 함께 담배를 꼬나물고 서로 불을 붙여주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누군가가 봤다면 정말 큰일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다 결국에는 걸린다는 게 담탱이한테 걸려가지고"
혁준은 아쉬운 듯한 탄식을 뱉으며 이야기하다가 나를 본다. 혁준은 무언가 중요한 것을 말하고 싶다는 눈치였다.
"근데 담탱이하고 원래 창호가 사이가 별로 좋지가 않았거든"
혁준은 담임선생님과 창호가 사이가 어떻게 안 좋았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혁준에 의하면 담배를 피다가 걸린 이후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담임선생님은 창호가 어떤 일을 하든 안 좋은 방향으로 보기 일쑤였다고 한다. 국사를 가르치던 담임선생님은 어느날 수업시간에 창호에게 무엇인가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의외로 혁준이 보기에는 창호가 대답한 것이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고 했다.
"아니 광개토대왕 아들이 장수왕이라고 말한 건데 그게 뭐가 잘못된거야?"
혁준은 창호가 대답했던 것은 심지어 맞는 답이였다고 했다. 그런데 창호가 조금 짧게 대답했다는 이유로 담임선생님은 왜 이렇게 버릇없이 말하냐고 하면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 끝나고 교무실로 오라는 말까지 남겼다. 나도 그 말을 들으니 어이가 없었다. 혁준은 아예 담임선생님이 정말 한 마디도 안통하는 꼰대에 인간미 없는 냉혈안이라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다음이 궁금해져서 그래서 혁준에게 어떻게 됐는지 캐물었다. 혁준은 대답했다.
"창호가 그 이후로 교실에 안들어왔는데, 내가 나중에 창호 얘기 들어보니까 그때 창호가 교무실에서 난리치고 장난 아니었다는데? 창호가 담탱이 멱살만 안잡았지, 다른 여자 선생님들 다 듣게 소리 엄청 지르고 물건 막 던졌대"
와, 나는 반사적으로 그 말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덩치 큰 애가 그러니까 통제가 안됐나봐. 한참 그러다가, 학생주임 선생님이 문 열고 들어와서, 그제야 멈췄대"
나는 아예 입을 벌리며 놀란 채로 듣고 있었다. 창호라는 친구가 초등학생 때는 잘 몰랐는데 그렇게 큰 일을 꾸몄다니 일단 유감스럽기도 했고, 원래 그런 애였나 싶을 정도로 무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머리 한쪽만 밀고 오고, 그 다음 날에는 아예 삭발하더니 조금 조용해지는가 싶더라"
나는 삭발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나왔다. 어짜피 몇 년 후면 경험해볼거라서 그런가? 나는 삭발까지 한 창호가 이해가 안갔지만, 얼마나 담임에게 얼마나 화가 났을 지 아주 조금은 짐작이 갔다.
"창호가 그러다가 언젠가 자주 가는 좁은 골목쪽으로 불렀거든"
혁준은 창호와 골목 쪽에서 담배를 피려는 줄 알고 미리 하던 대로 담배 한갑과 라이터를 준비해서 왔다.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재떨이용으로 검정 비닐 봉투까지 챙겨온 혁준이었다.
"그런데 그 애가 보여준 게 그 폰으로 하는 도박 사이트였어"
혁준은 그때 어떻게든 까까머리가 된 창호를 말렸어야 했다고 말했다. 혁준은 아직도 자신이 친구를 거기에서 빠져나오게 하지 못한 것 같아서 자책하고 있는 듯했다. 혁준은 그 이후로 창호를 학교에서도 잘 보지 못했다. 혁준은 자신이 도박같은 것에 그렇게 빠지는 성향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창호는 달랐다. 창호는 예전부터 화투나 판치기(책을 이용해서 돈을 따먹는 게임)같은 돈을 걸고 하는 사행성 게임을 즐겼다. 혁준은 창호가 그런 게임들을 즐기는 걸 보면서 왜 그러는지 잘 이해가 안 갔지만, 옆에서 지켜보기를 정말 행복해보였다고 했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좋아보여서 자신도 한번 두번씩 쉬는 시간마다 창호와 판치기를 하기도 했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뭐해. 난 걔 포기했다"
나는 혁준의 말에 공감이 가는 한편으로 혁준이 참 냉정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그렇지 가장 절친한 친구를 포기했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려서부터 친한 친구가 별로 없었지만, 혁준같은 사람도 절친한 사람을 만들 수 있다니 나도 충분히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와 혁준은 그렇게 초등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다시 한 쪽에서 테두리를 빙 돌기도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를 마쳤을 무렵 시간은 벌써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 이제 학원 가봐야 될 것 같다. 명석아 난 간다"
혁준은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혁준에게 무언가 물어볼 여지도 남기지 않은채 그렇게 헤어졌다. 멍하니 듣고만 있다가 정신을 차린 나는 방금 내 안에 생각보다 큰 깨달음이 찾아왔음을 상기했다. 도박이란 것이 이렇게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하고, 망칠 수 있구나. 세상은 무언가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도 안전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혁준을 보면서 깨달은 것도 있다. 혁준과 창호처럼 친구라는 이름으로 뭉쳤다가 다시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피해만 끼친다면 서로를 버릴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본래부터 고독하고 유별난 사람이라 친구를 아직 만들지 못했지만, 마음 한켠이 쓸쓸해졌다. 추운 바람이 부는 계절이어서 그런지 마음도 추워지는 하루다. 주머니에 들어 있는 손을 더 깊숙이 집어넣고 옷을 안쪽으로 여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