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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차원 학원

by 쿼카의 하루

혁준은 나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이 다니는 학원을 소개해 주었다. 목소리를 들뜬 걸 보니, 꽤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입시를 준비하는 평범한 학원 같았다. 우리가 다니는 중학 근처에 있었고, 정원 외 관리 대상자나 자퇴한 고등학생 따로 관리한다는 것 정도만 조금 달랐다. 혁준은 나에게 어떤 과정으로 학교에 중퇴했는지도 알려주었다.


"원래 학교에 계속 다닐 생각이었는데, 그 학원에 다니는 애가 우리 반에 한 명 있었거든"


혁준은 성호라는 친구를 이상하게 여겼다. 수업 시간엔 엎드려 자는데, 시험만 보면 전교 3등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묻자, 성호는 잠시 시선을 피하고 짧게 말했다. "학원" 혁준은 그래서 도대체 어떤 학원에 다니냐고 다시 물어봤다. 그러더니 툭 던지듯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편의점이 있는 사거리 근처에 고차원 학원이라는 데를 다닌다고.


"나는 얼른 수소문해서 고차원 학원이라는 곳을 알아봤어. 그런데 걔 말고는 아무도 그런 학원에 다니는 사람은 없더라고. 그래서 아예 나는 직접 찾아가볼 생각을 했지"


혁준은 자신의 부모님을 불러서 학원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다. 몇 번의 설득 끝에 수학 정도는 학원에서 보충을 받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합의를 보았다. 혁준의 어머니는 학원에서 성적이 오르면 혁준에게 다른 과목도 꼭 강습 받아보라고 말했다. 혁준과 혁준의 어머니는 하교하는 길에서 만나 바로 학원으로 찾아갔다. 학원에서 원장님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고, 웬 젊은 남자 선생님이 한 명 있었다. 자신을 수학 강사로 소개하면서, 친절한 말투로 둘을 사무실의 상담용 테이블로 안내해주었다.


"그 선생님은 우리 사이에서 '호진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데, 그 사람 본명이야. 호진이는 첫인상은 무척 깔끔하고 위트있어 보여. 우리들 사이에서도 그건 다들 동의하는데, 문제는 모든 사람이 호진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 오히려 혐오하는 사람도 있어. 수업 방식이 특이해서 그래"


어찌 되었든 원장님 대신 호진이가 학원의 시스템과 커리큘럼 그리고 수강료까지 상담을 받으면서 혁준의 어머니는 꽤 만족스러워 보였던 것 같다. 원장님도 아닌데, 이렇게 능력있고 말재주있는 강사를 둘 수 있는 학원이라면 다른 과목도 맡겨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더랬다. 그래서 종합 과정을 등록하고 나서 혁준에게 다음날부터 출석하기로 정하고 상담을 마무리지었다.


다음날 학교가 끝나고 고차원 학원에 처음으로 출석한 혁준은 깜짝 놀란다. 호진이는 빠른 걸음으로 강의실에 들어왔다. 한 손에는 교재뭉치를 다른 한 손에는 야구배트만 길고 단단보이는 나무 막대기를 쥐고 있었다. 아무도 그걸 묻지 않았지만, 교실 공기가 단번에 얼어붙었다. 혁준은 별 생각없이 책을 펼쳐 예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호진의 목소리는 겉으로는 정이 묻어나지만, 그 안엔 살기가 있었다.


"어제 과제 안 해온 사람들 남녀 불문하고 앞으로 나온다 실시"


그의 말투는 친절했지만, 그 친절 속에는 무언가 차가운 질서가 숨어 있었다. 혁준에 의하면 호진이는 벌을 줄 때 남자에게는 체벌을, 여자에게는 언어 폭력을 주로 사용한다고 했다. 그런데 첫 날에 남녀 둘다 체벌을 이용한 걸 보니 아마 처음 온 사람이 있어서 기강을 잡으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혁준은 그렇게 말한다. 혁준의 말로는 차라리 맞는 게 나을 때도 있었다. 여학생들에게는 살벌하고 포악하게 욕지거리를 던졌다고 했다. 성적인 뉘앙스는 기본이고, 성추행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수치심을 주는 말들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직접 경험해본 입장으로 그가 때린 사랑의 매는 잊기 힘들 정도로 큰 고통을 주었다고 했다.


"호진이가 때리면 여운이 진짜 강하게 남아. 마지막에 문지르는 것도 아닌데 살 안으로 스며드는 느낌이 들어. 정말이야"


그리고 호진이가 체벌을 할 때의 특징은 처음에 몇 대를 맞고 싶냐고 묻는다고 했다. 만약 3대를 맞고 싶다고 하면 그냥 3대를 맞는 것이 아니라 호진이가 생각해보기에 3대를 맞는 것이 합당하고 생각했을 때 3대를 맞는다. 호진이의 무서운 점은 매질의 수에 대한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1대부터 10대, 최대치로는 32대까지 자신이 생각해 놓은 몽둥이 대수가 아니면 숫자를 고쳐서 때렸다.


"호진이가 몇대 맞고 싶냐고 물어보는 이유에 대해서 애들이랑 한번 모여서 토론해본 적이 있는데. 아마 호진이가 생각하는 대수보다 적게 말하면 달라지는 것이 없어. 아마 그때는 호진이가 생각한 대수대로 맞을 거야. 그런데 만약 호진이가 생각한 대수보다 많게 부르면, 그 사람 표정이나 말투 이런 걸 유심히 본다. 그리고 자기 마음에 들면 한 대에서 두세 대 정도 그 숫자에서 차감하는 것 같아. 몇 대 차감인지는 다들 말이 다르더라"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세상에는 수학보다 복잡한 규칙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고통마저도 규칙으로 다뤄지는 세계라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통제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이상한 시스템에 이상한 선생님이 다니기는 했지만, 혁준이 다닌다는 학원이니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도 내심 들었다. 나는 과제를 안하거나, 모의고사에서 평균보다 더 적은 점수를 맞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혁준이 학원에 한번 가보자고 하자, 나는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혁준에게 그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중퇴를 한 거냐고 물었다. 혁준은 맞다고 했다. 당장 정원 외 관리 대상자로 퇴학당한 사람들을 위한 특별반이 있는데 생각보다 그들이 모의고사를 보면 성적이 높다고 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지 않고 그 학원에만 집중하다보니 더 결속도 좋고, 서로 재밌게 노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혁준은 그곳에서 고등학교 과정까지 공부를 마치고, 빠르게 검정고시를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명석아 고민해보고 연락 다시 줘라"


"알았어"


전화를 끊자, 한동안 신호음이 귓속에 남았다. 마치 어디론가 연결된 줄이 끊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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