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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Sep 28. 2024

아이디어 1

  나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혼자가 된 지 약 반 년 만에 다시 군중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 곳 고차원 학원에서 사소한 갈등을 꽤 겪었다. 집단 안에 속해 있을 때 나는 생각보다 성실하지 않았다. '호진이'의 매질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과제를 제 시간에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고차원 학원에서 과제를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가끔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호진이에게 사정을 말해야 할 정도의 일이 아니라면  중퇴생들이 모인 클래스에서는 호진이의 매질이 더욱 가차 없었다. 따라서 과제를 안해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문제는 모의고사를 풀고 미달된 점수만큼 매를 맞는 일이었다. 나는 매일 정해지는 커트라인 점수를 훌쩍 넘거나 가까스로 넘을 때도 있었다. 모의고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과제를 해오는 것 이상의 예습과 복습이 거의 필수였다. 하지만 나는 복습을 거의 하지 않는다. 내가 원래 타고난 지능이 좋은 덕분도 있겠지만, 어릴 때부터 과학, 인문 분야의 독서량을 점점 늘려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경지식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국어와 과학탐구 과목에 많이 있었다. 국어와 과학탐구에서 점수를 높게 받는 일에 익숙해지다보니, 예습은 했지만 복습은 점점 손을 놓게 되었다. 영어나 수학 과목만 바짝 공부해서 기본을 쌓아놓는 일은 이미 중학교를 다니던 무렵에 해놓았다. 따라서 나는 자습실이나 강의실에서 복습 한다기보다는 나만의 특이한 생각을 하며 잠을 쫓고, 스스로 흥미를 돋구기 위해 골몰한다.


  오늘은 강의실에서 수학 수업을 듣고있는데 호진이가 말하기 시작했다.


  "가끔씩 삼차 함수 그래프나 미적분같은 거 공부하면서 이런 게 뭐가 쓸모있을까 싶지? 하지만 살면서 이런 것도 꽤 도움이 될 때가 있어. 예를 들면 수학 자체가 뇌를 단련시키는 일이거든. 사칙연산만 하더라도 우리의 뇌는 수식의 논리에 시선을 따라가면서 분주히 계산을 하기 시작하지"


  나는 호진이가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우리가 닭장 속의 닭처럼 공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호진이가 말하고 있는 수업 내용 이외의 이야기들은, 마치 우리라는 닭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계란을 낳기 위한 클래식 음악같은 무형의 서비스가 아닐까 싶은 공상을 한다.


  "우리 뇌에는 전두엽과 후두정엽 이라는 부위가 있어. 특히 후두정엽이라는 부위가 우리가 덧셈이나 뺄셈을 할 때 큰 역할을 하지. 우리가 덧셈과 뺄셈을 할 때, 우리의 뇌는 1부터 9까지 가상의 선을 그리게 되어 있어. 3더하기 5는 뭐지? 그렇지 8"


  호진이는 칠판에 8을 적어보인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정확히 초등학교 4학년에 청소년들을 위한 과학 잡지에서 봤다. 후두정엽이라는 익숙한 용어가 나와서 잠시 반가웠지만, 길게 이어지는 부가 설명에 나는 지루해졌다. 다시 나만의 공상에 빠져든다. 그렇다면 닭도 정신이 있고,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닭과 같은 가축을 스트레스 없이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호진이는 내가 공상하는 동안 칠판에 수평선 하나를 그리고, 왼쪽에서부터 1부터 9의 숫자를 적어 놓았다. 그럼 우리와 같은 처지인 닭이 행복하기 위해서 대체 뭐가 필요하지?


  "그러면 3더하기 5라는 아주 간단한 수식을 보면, 뇌는 자동적으로 3이라는 위치에서 5를 더한 위치인 8로 활성화가 된다고 생각하면 돼. 간단하지? 수학 문제들은 기본적으로 그런 과정을 거의 모두 거친다고 볼 수 있어. 수학의 기본은 사칙연산이니까. 방정식도 마찬가지지. 혹시 지루하니?"


  학생들은 네, 라고 답한다. 나는 아이들이 합창하는 사이에 잠시 공상에서 빠져나온다. 그러나 그 짧은 사이,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우리가 짧지만 정확히 네라는 대답을 할 수 있듯이 닭의 언어를 단순하지만 정확히 해석하는 것이다. 나는 그 생각을 붙잡아 놓기 위해 공책에 짧게 메모해두었다. 언젠가 인공지능과 생명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닭의 뇌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마련된다면, 닭 뿐만 아니라 반려견, 반려묘, 소나 돼지 까지 전부 그들의 언어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구강 구조로 발음하는 것 뿐만 아니라, 바디 랭귀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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