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는 온전한 사생활의 공간을 마련하는 일을 의미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간섭받지 않는 곳에서 자신이 가치있다고 여기는 일들(공부, 문화생활, 요리, 식사, 악기 연습, 집 꾸미기)을 맘껏 하기를 누구나 한번쯤은 꿈꾼다. 외향적이거나 활동적인 성향이라도, 이상적인 실내 공간에서 머무르고자 하는 욕구는 사람이라면 다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자신이 특히 자주 가고 좋아하는 카페 한 두 군데 정도는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선호하는 공간의 특성도 제각각이다. 자취를 계획하고 실행하다 보면, 본인의 공간에 대한 취향을 알아갈 수 있다. 그것은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당연한 순서이다. '공간 취향'이라는 것은 꽤나 범위가 방대해서 다소 뜬금없이 나 자신이 시골보다는 도시를 좋아한다는 걸 갑자기 알게 될 수도 있다. 채광을 생각보다 많이 신경쓴다거나, 순간적으로 반려동물이 기르고 싶어질 수도 있다. 공부 혹은 작업 공간이 여러 곳으로 세분화되는 경향성을 스스로 인지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동절기에는 오히려 기온이 찬 상태로 유지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될 수도 있다.
자신만의 공간을 가진다는 것은, 그 공간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도 온전히 자신이 결정하고 향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하든지 간섭할 사람이 없다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공간에 정기적으로 머무는 사람이 혼자라는 것은, 공간 자체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주도권을 온전히 쥐는 것을 의미한다. 내 눈 앞에 신경쓰고, 배려하고, 눈치보고, 협력할 사람이 없다. 행동과 생각에 제한이 없고 지극히 자유롭다. 또한 나를 규정하는 가족, 친척, 친구, 룸메이트 등이라는 정체성이 없기에 나는 그야말로 온전한 자아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누군가의 가족이자 친구이자 룸메이트이기 전에, 나는 내가 속한 공간과 시간을 완전히 통제하는 주체로써 행동할 수 있다.
자취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나와의 대화를 많이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스스로와의 대화를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둘러싸이게 된다고 바꿔 말하고 싶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생활의 많은 부분에 대하여 결정할 때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과정이 바로 대화를 수반한다. 집안일은 의사 결정 과정의 총집합이다. 분리수거통을 비울 때, 설거지를 할 때, 빨래를 할 때, 반려동물의 밥을 줄 때, 모든 과정은 누가, 언제, 어떤 순서로 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자취를 하지 않을 때 우리는 부모님이 그 의사 결정을 대신 해주거나, 대화를 통해 합의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런데, 자취를 하면 그 의사 결정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고민하는 과정은 자신만의 대화라고 볼 수 있다. "내가 1시간 뒤에 외출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조금 있다가 세탁기를 돌리고, 돌아오면 건조기에 넣자"라는 간단한 생각의 과정도 자신과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사소한 의사 결정 과정도 자신과의 대화이고, 자취를 통해 얻게 되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방대한 자유 역시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실현해야 한다. 혼자 시간을 보내다 보니 철학적인 사유를 많이 하고, 좀 더 감성적인 성향이 되는 것도 있겠지만, 자신과의 대화를 해야지만 생활이 가능한 환경에 억지로 처하게 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 같다. 자취를 하면 당장 많아진 시간 공백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집안일을 언제 할지 결정하는 것도 꽤 중요한 의사 결정이다. (외출을 앞두고 시간이 뜰 때, 혹은 무기력해서 무언가를 시작하기 힘들 때도 간단한 집안일은 도움이 된다) 본인이 주도적으로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나, 자신과의 대화가 부족하여 나의 취향을 잘 모르겠다 싶은 사람은 자취를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야생에서 사자가 자신의 새끼를 낭떠러지로 밀어뜨려서 살아남는 훈련을 하듯이, 다소 극단적인 방법일 수 있겠지만, 효과는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