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 쟁탈전
누구에게나 기억에 남는 나만의 애장품같은 게 있을 것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우리는 휴대하고 다니는 물건에 특히 애착이 많았다. 잠 잘때마다 껴안고 잤던 인형, 누군가가 물려준 소중한 만년필, 강가에서 주워서 주머니에 넣고 다닌 반들반들한 조약돌, 좋아하는 사람이 선물해줬던 값싼 반지나 목걸이, 등산하다가 우연히 주운 모양새가 그럼직한 나뭇가지같은 것들까지. 그 중에는 쓸모가 있다거나, 교환가치라도 있었던 것들은 거의 없지만 그 자체로 항시 휴대하면서 만지고, 보고, 끼고, 휘두르는데 만족감을 주기도 했었다. 그것은 내 몸의 일부이자, 내 몸으로부터 한 마디 뻗어나간 연장으로써 생각하는 게 무척 즐겁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아날로그한 감성과 물성을 간직한 옛것의 애장품보다도 더욱 대단한 물건이 언젠가부터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니, 때는 약 2000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삐삐나 시티폰 등을 사용한 세대는 아니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핸드폰의 최초 형태였던 폴더폰이 가가호호 보급되기 시작했던 이른바 MZ세대이다. 새천년이 지나 핸드폰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어 심지어 초등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 자녀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혹은 유행 따라가기 바쁜 자녀들의 등쌀에 못이겨서 그들에게 핸드폰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킥보드나 인라인스케이트, 그리고 힐리스(바퀴 달린 신발)보다 훨씬 합법적이고 안전하며 심지어 통신비를 아끼기에 합리적으로 여겨졌던 핸드폰은 아이들 사이에서도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가장 먼저 나의 친형제 중 핸드폰을 선물받아 나 그리고 여동생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 사람은 나의 친형이었다. 나와 동생은 시시때때로 부모님이 형에게 준 핸드폰을 잠깐 빌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접혀진 한 면을 펼쳐 열었다. 그리고 메뉴를 눌러 지금보면 몇 안되는 프로그램들을 들락날락했다. 그리고 생각날때마다 또 빌려서 단순한 형태의 게임(아군 탱크를 움직여 적 탱크를 부수는)을 발견하여 지겨울 때까지 줄곧 했다. 때로는 너무 자주 빌린 나머지, 책상 위에 두고 자거나 공부를 하고 있는 형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고 가져가서 게임을 즐겼다. 나중엔 형의 핸드폰이 지나친 선망의 대상이었던 까닭에 삼남매 사이에 공유재와 같은 상황이 되어버린 것에 형은 이미 체념하는 듯했다. 말없이 가져가서 몰래 손가락 굴린 일이 참 많았을텐데, 지금보면 그것에 대해 형은 크게 화낸 적 없이 덤덤했다.
전국 초중생들 사이에서 짧게나마 보물 1호의 자리를 꿰찼을 핸드폰이 시간이 흐르고 흘러, 삼남매 각자의 손에 모두 쥐어지자, 이번에는 다른 강력한 적수가 등장했다. 바로 MP3 플레이어. 어린 시절 유복하고 꽤 넉넉한 형편이었던 우리집이었기에, 형이 중학교 들어갈 무렵에 부모님은 이번에도 처음으로 형에게 선물을 해주었다. 무려 그 당시에도 (심지어 지금도) 희귀한, 카메라 기능이 탑재되어 있던 삼각기둥 모양의 MP3 플레이어였는데, (이제와서 형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그 물건을 특히 좋아했다…
나는 처음엔 눈치껏 빌려달라고 말하고 가져가고, 조금씩 사용시간을 늘렸다.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대놓고, 이어폰이 둘둘 말린 MP3를 한참 사용해놓고, 아무데나 함부로 내팽개쳐 놓기 일쑤였다. 역시 미안한 말이지만, 내 물건이 아니었기에 아껴서 쓸 정도의 애착이 생겼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형의 MP3를 주인 의식 없이 함부로 사용하며, 그 안에 들은 음악만을 열심히 감상한 덕에 음악을 정말로 좋아하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나는 음악학원에서 돌아와 이승기의 ‘삭제’라는 곡을 들으면서 참다 못한 형이 한소리 하는 걸 이어폰 너머로 듣던 게 생생한 기억으로 남았다. 역시 보이는 것에 애착을 두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음악’이라는 것을 사랑하고 가슴속에 남기는 것이 더 낫다는 교훈을 얻어가면서. 하지만 그러한 의미심장한 교훈을 얻었을 때는 MP3 사용을 둘러싼 형과의 미묘한 알력이 커져갈 무렵이었다. 얼마 안가서 나는 물성과 음악 재생 도구라는 쓸모를 겸비한 완벽한 보물1호를 얻었으니, 바로 나만의 MP3 플레이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