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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May 17. 2024

기타와의 첫 만남

친구 따라 실용음악학원 간 이야기 (1)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동네 음악학원에서 바이올린을 배웠다. 교본을 1권부터 한 권씩 차근차근 떼고, 초급반 레슨비를 중급반 레슨비로 올려서 지불할 때까지, 그러니까 중학교를 갓 입학할 때까지 나와 바이올린의 인연은 그렇게 쭉 이어졌다. 두 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무슨 단조 무슨 소나타라는 초등학생의 지식으로는 알아듣기 어려운 제목을 가진 연습곡을 하나 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두 달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주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이어서 매일같이 출석하여 레슨을 받을 수 있었는데, 나는 당시 철없는 잼민이었어서 의지도 부족하고, 기본기도 부족하여 두 달은 걸려서 뗀 연습곡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배우기 일쑤였다.


  그래도 악기 한 가지를 깊게 배워서 나름 잘하는 것은 썩 나쁘지 않은 투자였던 것 같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도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으며 고고한 학이 된 듯 바이올린을 켜는 것이 꽤 재밌고 자존감도 상승하는 일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던 내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잘해오던 바이올린 학원에 그만 다니기 시작한다. 이유는 한창 도진 중2병에 걸린 내가 보기에 바이올린은 너무 여성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부모님이 이제는 예체능보다는 공부하는 시간을 늘려야겠다고 판단한 덕분이다. 덕분에 5년은 넘게 질기게 이어오던 바이올린과의 연을 놓고, 대신에 중2 때 어떤 사건을 계기로 기타를 잡게 된다.

  


  민과 김은 내 친구였다. 민은 덩치가 좋고, 목소리가 컸다. 또한 허풍이라면 당시 넷상에서 유행하던 디시인사이드 유저들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그리고 도벽이 조금 있고, 사실 골초라는 소문이 도는 그런 중학생이었다. 김은 키가 크고 성격이 무던한 친구였다. 잘하는 건 그다지 없지만, 심한 장난도 허허 웃으면 넘길 수 있을 만큼 넉살이 좋았다. 별명은 멀대같이 키만 크다고 '멀대'였다. 민과 김은 서로 굉장히 친했다. 민과 김은 서로 자주 크고 길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농담을 따먹으며 서로를 웃기기 위해 말하는 건지, 평범한 대화를 하기 위한 건지 모를 정도였다. 친밀한 그들 사이에 나도 끼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민이 김에게 기타 이야기를 꺼냈다.

  "야 김이 기타 치는 거 봤냐? 나는 봤어!"

  그러면서 민은 김의 반대편 어깨를 팔로 감싸며, 야 너 기타 잘 치더라, 하하 엄청 멋있더라면서 거의 볼따구를 꼬집으려고 했다. 김은 다만 넉살 좋게 허허허 웃으면서 어깨를 내어주며 걸어갈 뿐이었다.

  나는 전부터 김과 더 친해지고 싶지만 친해질 기회가 없어 엿보고 있던 참에 기타를 주제로 관심을 표현했다. 기타? 언제부터 기타를 배웠는데? 우와 너 기타도 칠 줄 알았어?라고 해주자, 김은 갑자기 표정이 굉장히 진지해지더니 언제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보여주겠다고 약속을 해주었다.


  약속한 그날은 생각보다 일찍 다가오게 되었다. 학교 점심시간에 (몰래) 김은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한낮의 어스름한 햇빛이 들어오는 안온한 가정집에 도착한 나와 김이었다. 사실 당시 나는 김이 나를 초대한 이유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김이 갑자기 자신이 기타를 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나는 어? 그러면 그 약속한 거 진짜 보여주려고? 이러자, 김은 어이없다는 듯 픽 웃더니 의자에 딱 앉아서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곡은 다름 아닌 '로망스'였다.



  어 잘치네? 로망스의 나른한 선율이 내 귓가에 닿았다 싶을 무렵에 곡은 엉성한 마무리로 끝이 났다. 순간 나는 너무 대단한 것을 보고 들었다는 생각에 박수를 쳐야될까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박수를 쳤다. 김은 머리를 만지며 쑥쓰러운듯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충격이었다. 5살 무렵 피아노 학원을 다니던 형이 피아노로 연주했던 로망스를 들을 때도 약간 놀랐지만, 기타로 듣는 로망스는 대단히 멋스럽고 고급진 느낌이 났다. 지금까지 먹었던 것은 짜장 라면이었다면, 진정한 짜장면을 먹은 사람처럼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로망스의 멜로디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김의 집에서 로망스를 들은 충격으로 김의 권유에 따라서 김의 아버지의 친구가 운영하는 실용음악학원에 등록하기로 했다. 집 근처에 있었던 실용음악학원은 바이올린 학원과는 다른 분위기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공간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엘리베이터에서 김과 내려서 학원에 도착한 나는 기타 레슨 등록을 하게 되었다.



메인 이미지 출처 : 서울시 종로구 수강생 개개인별 맞춤교육 실용음악학원 '케이스타(K.STAR) 실용음악학원' - 월간인물 (monthlypeo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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