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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May 20. 2024

게임보다 기타가 재밌습니다만

오아시스의 원더월부터 핑거스타일 입문까지


 그 음악은, 팝송은 팝송인데 당시 유행하던 저스틴 비버나 에이브릴 라빈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올드팝이라고 이름붙일 만큼 퀴퀴하며 묵은 냄새가 나는 음악도 아니다.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은데 그렇다고 지금까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전무후무한 노래. 실시간 검색어나 네이버 블로그에서나 흘깃 봤을 법한 가수 이름. 나의 감성과 애간장을 자극하던 한국의 발라드와 알앤비, 랩퍼형들의 힙합 크루 음악들만 즐겨 듣던 내가 처음으로 찾아서 듣게 된 오아시스라는 록밴드의 음악이었다.


https://youtu.be/bx1Bh8ZvH84?si=6ihxblgsYEk5SJ30


  오아시스에 관심이 생겼던 이유는 내가 다니던 기타 학원에서 배웠던 곡이 바로 오아시스의 '원더월'이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벽이라는 무언가 그럴듯한 제목을 가진 그 곡은 통기타로 반주할 때가 특히 기깔나고 멋있었다. 어느 날 내 친구 김은 학원 연습실에서 전과 같은 엉성함과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원더월의 반주하는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스트랩(기타에 매는 어깨끈)이 없어서 김이 주춤하게 서서 한쪽 무릎을 굽히고 그 위에 기타를 올려 반주했던 것이 아직 생생하다. 김은 역시 마무리로 어색하고 엉성한 타이밍에 기타를 놓았고, 휴대폰으로 같이 켜놓았던 오아시스의 음악도 외롭게 조금 흘러나오다가 김이 꺼버렸다. 어색한 듯이 침묵이 흘렀다. 전에 그랬던 것처럼 김을 향해 싱겁게 박수를 치지는 않았지만, 내 두 눈은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는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며칠 뒤에 학원 선생님은 나에게도 원더월을 가르쳐 주셨다. 그 이후로 원더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십팔번 곡이 되었다. 틈만 나면 나는 원더월의 다소 장황하며 풍성한 리듬을 쳤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반복하면 할수록 리듬은 정확해지고 악력은 단련되었다. 도입부터 브릿지, 코러스까지 모두 완곡하게 된 날에는 정말 뿌듯했던 것 같다. 휴대폰으로 mp3파일을 재생하고 오아시스의 우렁찬 보컬 목소리에 맞춰 반주해보기도 했다. 리듬은 약간 어긋났고, 손이 아파 연주를 멈추고 땀에 젖어서 기타줄 자국이 깊게 패인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영광의 상처처럼 느꼈다. 앞으로 굳은살이 점점 단단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어떤 것을 하면서 따르는 고통까지 감싸안을 수 있다면 그 일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에게는 그럴 수 있었던 것이 기타였다. 그에 반해서 당시에 유행하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는 나에게 어떤 고통만을 가져다 주었는데, 그것은 초보 유저들에 대한 기존 유저들의 조롱과 무시였다. 당시에도 소위 고인물들이 많은 게임이었기 때문에 새로 유입한 유저들에 대한 포용이랄까 배려가 너무 부족했다. 게임에 져서 화가 나고 분이 안풀리는데, 상대방에게 욕까지 먹는 치욕까지 감내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금새 스타크래프트에 흥미를 잃었다. 중고등학생들 대부분이 밤을 새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을 때, 나는 늦은 밤이 오기 전까지 기타를 쳤다. 밤에는 기타를 쳐서 소음을 만들어낼 수는 없기에 이어폰을 귀에 꽂고 오아시스의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휴대폰으로 재생해서 들었다. 음악을 많이 들으면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90년대 영국 록밴드의 음악은 일렉기타 사운드 일색이었고, 귀가 아플정도로 볼륨이 큰 까닭에 며칠 듣다가 그만 두었다. 나중에 묘하게 끌리는 영국스러운 멜로디에 다시 찾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참고삼아 이것 저것 듣다 보니까, 당시에도 존재하던 네이버의 핑거스타일 카페를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던 당시 네이버 카페의 BGM으로 깔린 음악을 들으며 본격적으로 핑거스타일이라는 장르를 만났다. 잔잔한 물결과도 같은 음악을 한 대의 어쿠스틱 기타로 꽉 찬 사운드를 만들어내며 연주하는 것이 핑거스타일의 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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