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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May 19. 2024

C코드를 잡는 법

친구 따라 실용음악학원 간 이야기 (2)

  올드팝의 슬픈 멜로디가 한 남자의 입술 사이로 잔잔히 흘러나왔다. 그 노래는 머라이어캐리의 'without you'였다.


  나는 살 수 없어요. 만약 당신 없이 살아야 한다면


 넓고 푹신한 털 방석이 깔려있는 소파에 두 명의 중학생이 정지화면처럼 앉아 있다. 그들은 기타를 안고 남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남자의 기타 반주에 맞춰 서툰 손놀림으로 기타를 함께 연주한다. 엄지와 검지 중지 그리고 약지까지 차례대로 기타 줄을 쓸어 올리듯 튕기며, 손가락이 줄에 닿을 때도 있고 안 닿을 때도 있어서 꽤나 당황스러웠다. 첫날이라 손톱이 짧아서 그렇다는 말을 남자에게 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쉽지 않다. 땀이 오른손에서 자꾸 난다.


  사실은 이렇다. 뿔테 안경을 쓴 중학생은 오늘 처음으로 학원에 등록하여 기타라는 악기를 가까이서 직접 봤다. 정신을 차려보니, 친구를 따라 기타를 직접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C코드에서 A마이너 코드로 그리고 D마이너 코드로… 방금 처음 배운 코드 운지법을 따라 하나의 코드에서 다른 코드로, 손가락을 다른 줄에 다른 모양으로 쥔다. 처음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 손은 갈피를 못 잡고 왔다 갔다 하거나, 줄의 장력에 의한 통증 때문에 쥐가 나려고 한다.


  "쿼카 친구는 오늘 처음이라 그래. 그런데 기타가 아예 처음이라고 했나?"


  나는 작은 목소리로 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남자의 목소리에 맞춰 서툴게나마 아르페지오(분산화음) 주법으로 코드 반주를 했다. 나의 친구 김은 곧잘 따라가는 것 같다. 김이 나처럼 처음은 아니라서 그렇겠지.


  이마와 뒷목에서 땀이 나서 목아래에 스며들기 시작했을 때, 오늘의 레슨은 끝이 났음을 알려왔다. 남자는 두 명의 중학생에게 수고했다고 하며, 오늘 배웠던 것들을 복습하라고 악보들을 챙겨주었다.


  "그리고 말이야. 쿼카 친구는 꽤 잘하네. 처음이 아니라고 해도 믿겠어."


  나는 쑥스러워서 뒤통수를 잡고 고개를 약간 숙였다. 하하, 어른이 칭찬할 땐 좀 웃어야지. 과한 긴장과 집중에 표정이 굳어져있음을 눈치챈 나는 최대한 표정을 풀려고 하며 민망해한다. 친구 김은 상황이 조금 우스운 듯 피식 웃을 뿐이다. 둘은 기타를 케이스에 넣고 지퍼를 주욱 올리고, 선생님인 남자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방을 나왔다.



  집에 돌아온 나는 부모님께 대충 인사를 하고 오늘 들었던 칭찬을 다시 생각해 내며 들뜬 마음이 되어서 기타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C코드는 뭐였지, 오늘 배운 것은 다섯 가지였는데, 기타를 살 때 패키지로 동봉되어 있던 코드표를 꺼내서 나의 손 모양과 비교해 가며 익히기 시작했다. 역시 처음이라 기타 줄의 장력에 못 이겨 20분만 쳐도 통증을 호소하곤 했다. 잠깐 다른 것을 하다가 돌아와서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 코드에 맞는 손 모양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코드에 오직 포함되는 프랫(지판 위에 쇠로 된 칸막이)과 줄만 잡는 것도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C코드를 잡을 땐 특히 다른 줄이 닿지 않도록 손가락을 최대한 둥글게 말아서 잡아야 하는데, 처음 하는 사람에게는 자세가 매우 부자연스럽고 어렵게 느껴진다. 코드를 잡고 6번 줄부터 1번 줄까지 튕겼을 때, 맑고 고운 도미솔 화음이 울려 퍼질 때 그 짧은 희열을 위해 연습 또 연습한다.


  내가 코드를 잡는 것만큼이나 처음 기타를 배우며 좋아했던 것은 아르페지오 주법이다. 분산화음이라고도 불리는 이 주법은, 오른손가락으로 각각의 줄을 탄현 하는 법을 처음 배우는 데 제격이다. 일단 코드를 잡고 근음에 해당하는 6~4번 줄을 엄지로, 그리고 낮은 음의 줄부터 높은 음의 줄까지 각각을 검지부터 약지까지 탄현하는 주법이다. 모든 줄을 한 번에 쓸어내리듯 탄현하는 스트로크 주법과는 사뭇 달랐다. 그보다는 매우 섬세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났으며, 부서지기 쉬운 듯한 연약한 느낌의 화음이 귀에 천천히 도달한다. 정확하게 탄현할수록 듣기에 너무나도 좋은 맑은 화음이 나오는데, 그래서 나는 특히 이 아르페지오 주법을 좋아했다.


  주로 옛날 감성의 포크음악에 어울릴 법한 이 주법은 쓰리핑거라는 주법으로 업그레이드 되기도 한다. 쓰리핑거는 엄지 검지 중지만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빠르게 탄현하는 주법을 말하는데, 능숙하게 사용하면 꽤 멋있다. (연습곡은 kansas의 dust in the wind)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정말 모닥불을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연주해보고 싶은 '모닥불'이라는 포크음악을 연습하며, 아르페지오 주법을 갈고 닦는다. 그래서 이 연습들은 훗날 내가 '핑거스타일'이라는 어쿠스틱 기타의 장르 입문으로 나아가는데 일조하게 되는데…


https://youtu.be/Hat1Hc9SNwE?si=PaWrQpdFQI0a_tJ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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