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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Aug 31. 2024

그래도 자취가 하고 싶었다

자취의 이상과 현실

  자취(自炊),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생활함.

  주로 20~30대 청년이 가족과 떨어져 혼자서 거주한다는 의미로 통용되는 이 단어는 내 마음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자취를 꿈꾸기 시작했던 때는. 어쩌면 tv속 드라마 주인공이 퇴근하고 돌아온 집에 혼자 불을 켜고 가방을 내려놓는 모습이 무척 담담해보이기 시작한 때부터였을. 아니면 외국 영화속 주인공이 큰 방 안 침대 비스듬히 드러누워서 홀로 사색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을 때? 그것도 아니라면 모 예능에 출연한 연예인이 자취방 소파에 멀뚱히 앉아 정적이 흐르던 모습이 편안해보이던 때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연예인들이 직접 요리를 해서 자기 끼니를 해결하는 매력적인 모습에서 그 마음이 커졌던 것은 아니다. 자취를 하면서 혼자 보내는 시간, 고요함, 정적, 사색, 담담하게 흘러가는 모습들이 그저 좋아보였다. 다만, 자취의 본뜻이었던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생활하는 것'에 끌렸던 것은 아니다. 자취의 현실과 이상은 그렇게 확실하게 서로를 배척하며, 내 속에서 구분지어졌다.


  어쩌면 첫번째로 자취했던 시간이 나에게 큰 실패로 다가왔던 것은, 현실을 이상과 구분짓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손수 밥을 지어 먹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살림을 장만하고, 공과금을 내는 것이 나에게 현실이라는 걸 인정했다면, 생각보다 그것에 발목이 잡히진 않았을 것이다. 첫 번째 자취는 내가 원했던 이상을 즐길 새도 없이, 현실적인 일들을 처리하는데 너무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당시 나는 이제 자취를 시작했으니 너무나 많은 것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 했다. 세탁기 없이 세탁소에 거의 매일 빨래를 하러 나가고, 꼭 필요했던 가구들을 혼자 장만하고 낑낑대며 방에 들여놓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매번 요리해서 먹겠다는 꿈만 가진채, 식재료를 썩혀 버리기 일쑤였다. 쓸데없는 것에 돈 낭비를 했고, 꼭 필요한 것들에 돈을 아꼈다.


  2024년, 이제는 자취의 현실과 이상을 구분할 줄 아는 내가 되었다. 자취는 어렵고 번거로운 일이지만, 꼭 하고 싶은 어떤 것이다. 그 마음을 가슴 한켠에 간직한 채, 하루 하루 직장에 다니며 생활했다. 변화가 있다면 적금을 들은 것 정도였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일 지도 모르겠으나, 꾸준히 저축을 해서 언젠가 독립을 하고 자취방을 구하자는 마인드였다. 때로는 그 마음이 거의 흔적도 없이 잊혀진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다시 계절이 바뀌고 언제 그랬냐는듯이, 꽃이 피고, 잎이 돋아나듯이 내 마음에는 자취라는 꿈이 크게 자라 갈망하는 마음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내 나이는 서른이 가까워져왔고, 그 어떤 이유 없이도, 자취를 원하고 가족과 따로 나가 살기를 염원했던 것이다.


  1년치 적금은 만기가 되고, 내 예금 통장은 전에 없이 두둑해졌다. 주식에도 손을 뻗어 거금을 테슬라 주식에 묶어두었으나, 주변 친한 지인이 말렸다. 그래서 처음에 팔았더니 오히려 오르는 주가에 내심 원망하는 마음도 사실 생겼었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이 스스로 한참 오르락 내리락 하는 주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의 의도대로는 흘러가지 않겠구나라는 걸 느꼈다. 마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느낌이다. 주식은 쉽게 생각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돈만 묶이는것이 아니라 생각과 에너지의 방향마저도 묶이는 기분이었다.


  천만원에 가까운 돈으로 이것 저것 사보기도 하고, 사업계획을 짜볼까, 유럽 여행을 갈까 궁리도 해봤다. 그런데, 막상 진지한 마음으로 할만한 것은 없어보였다. 때마침 생각이 든게, 바로 한달 살기였다. 큰 돈이 있는 것은 아니니, 어쩌면 한 달을 살아보지 않아도 좋다. 일주일만 살아보는 건 어떨까. 이 생각으로 관심을 뻗어본 것이 단기 임대 어플이다. 찾아보니 괜찮은 방이 많았고, 가격이 과중하게 부담될 정도는 아니었다. 당시에 직장 일을 하면서 무의미한 반복만 하는 것 같아 슬럼프에 빠졌을 때이기도 했다. 회사 팀장님께 간곡히 부탁을 하여 2주간 병가를 내고, 단기 임대로 혼자 살아볼 계획을 세웠다. 사람이 너무 쉬고 싶고, 너무 꿈이 크면 추진력이 또 생기더라. 불가능할 것 같던, 2주간 휴가도, 자취를 향한 한 발자국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시작점은 강남구 삼성동의 작은 오피스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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