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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Sep 07. 2024

LP에 관심이 있다면 가볼만한 곳

삼성동 오피스텔 일주일 살기 下

  나는 현대카드가 운영하는 바이닐앤플라스틱에 도착했다. 6호선 한강진역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기 때문에, 지하철을 두 번은 갈아탔다. 10분 정도 걸어가다보니, 통유리로 되어있는 건물 입구에 vinyl & plastic과 현대카드 로고가 쓰여 다. 입구에 들어서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무언가가 느껴져왔다. 음반 덕후들이 좋아할 것 같은 아우리가. 마니아들의 사치품 정도로 홀대받는 lp들이 넓직한 매장 안에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보인다. lp가 너무 많아서 cd를 찾기 힘들 정도다. 또한 한국음악, 힙합, 재즈, 록 같은 장르로 잘 구분되어 진열돼 있었고, 철자별로 정렬되어 있어 원하는 음반을 찾기 쉬웠다. lp 마니아들의 성지가 다름아닌 이곳에 위치하고 있었다니!


  그 밖에 구석에서 추억의 워크맨과 카세트테이프를 헤드폰으로 들을 수 있는 코너도 작게 마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비치되어 있는 카세트테이프는 내가 모르는 재즈 음악과 일본 시티팝 등이었다. 관심을 갖고 조금 들어보다가 이쯤 됐다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실 내가 온 이유는 이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넓은 개방형 책상에 열 명 남짓한 사람이 둘씩 짝을 지어서 높은 의자에 앉아 있다. 모두가 헤드폰을 쓰고 자유롭게 손으로 턱을 괴거나, 작은 몸짓으로 리듬을 탄다. 책상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부지런히 회전하는 턴테이블이다. 쿼카는 미국 영화를 보면 음반 매장에서 청음을 하고 있는 힙스터들을 볼 때마다 언제나 부럽다고 생각했다. 미국에는 저런 곳도 있구나 싶었고, 한국에는 손품을 아무리 팔아보아도 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아쉬웠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아니 그보다 나을 수도 있는 풍경이 앞에 펼쳐져 있다니, 얼른 가서 청음을 신청해본다.


  매장 직원의 안내에 따라 30분 정도를 대기하고 있다가, 듣고 싶은 lp판 두 개를 선택한다. 쿼카가 선택한 음반은 … chicago 라는 밴드의 히트곡을 모은 앨범과, 나의 최애 밴드 red hot chili peppers의 캘리포니케이션이라는 음반이다. 전자는 아예 처음 들어보는 브라스 세션이 있는 생소한 밴드이고, 후자는 귀에 닳을 정도로 많이 들은 록밴드이다. 들뜨고, 흥분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키높이 의자에 앉는다. 직원이 친절하게 lp판을 개봉하고 턴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뒤,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헤드폰을 쓰기만 하면 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말 그대로, 'lp판의 끝부터 끝까지 모든 음들을 음미하며 감상하던' 쿼카는 직원의 30분 경과를 알리는 안내에 당황한다. 아니 아직, 두 번째 lp는 첫 번째 트랙밖에 듣지 않았는데… 이제 시작인데,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청음 코너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시간이 순간 삭제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결국, 홀린 듯이 lp를 2개나 결제하고 나와버렸다. 현대카드 장사 잘하네, 라는 생각으로 영수증을 받는데, 직원이 사진 전시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티켓까지 쥐어준다. 좋은 물건도 질렀겠다 느긋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사진 전시관을 둘러본다. 재밌고 감각적인 사진들이 많이 있었다. 현대적인 감각, 균형미, 일상 속 특별함을 담은 사진들.


  전시관을 나와서 지하철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맥심 플랜트라는 카페가 있어서 들르게 됐다. 우리에게 친숙한 커피 브랜드 '맥심'을 이름으로 내걸고 카페를 차렸나 보다. 아마 맥심을 운영하는 동서식품이 납품하는 원두를 사용하겠지. 세련된 스테인리스 컵에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자리에 앉아 마시니 피로가 가신다. 좋은 하루다, 여기 오길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lp판 2개가 담겨있는 비닐봉지를 보니 마음까지 훈훈해진다.


  삼성역을 가는 지하철에서 생각한다. 쿼카는 이제 내일 본가로 향한다. 좋은 일주일이었다. 비싼 값을 주고 단기 임대를 했지만 후회는 남지 않는다. 오히려, 다음 번에 다시 와야 겠다고 다짐한다. 그게 언제일까 생각해보지만, 언제 이렇게 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에 막막해진다. 답답한 속마음에 이어폰에 흘러나오는 음악에 집중한다. 사는 건 역시 어렵구나, 행복한 때를 보내고 나서도 새삼 그렇게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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