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과분(果粉)에 대하여

by 소단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월든'에서 인간의 내면을 자연에 비유하곤 한다.


"인간성의 가장 훌륭한 면들은 마치 과일 껍질에 붙어있는 과분(果粉)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만 보존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부드럽게 다루지는 안 한다."- 월든 본문 中


이 대목에서 한참을 멈추었다 다시 읽어보고 또 읽어보았다.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찾아갔던 큰아빠의 포도 농장이 떠올랐다. 탐스럽게 익은 포도송이를 감히 잘라도 되는 것인지 이리저리 열심히 살펴본다.


그러다 깊은 어둠에 가까운 짙은 보랏빛을 띤 포도송이 표면에 하얗고 뽀얀 가루 같은 것이 보이는 것이다.


뭔가 알고 있다는 듯 내가 묻는다.

"이건 농약이에요?"


아빠는 대답하셨다.

"아니, 이건 자연적으로 포도에서 나오는 과분이야. 포도가 아주 싱싱하다는 거지."


그 이후로 과일 가게를 가서 포도송이들을 볼 때면 나는 과분이 있는지 없는지 살피곤 했다. 과분이 잘 보존된 포도는 틀림없이 달콤하고 입속을 넘어 뱃속에 넘어갈 때까지 풍성한 만족감을 주곤 했다.


그 사실을 모른다면 이 무해한 과분을 손으로 쓱쓱 닦아서 먹거나 식초가 담긴 물에 흔들어 씻어버릴 것이다.

그럼 과분은 언제 있었냐는 듯 금세 자취를 감추고 만다.


소로우는 우리 내면의 훌륭한 특성들을 이러한 과분(果粉)에 비한 것이다. 다른 사람 감정과 입장을 이해하고 느낄 줄 아는 공감력, 옳은 일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 남을 도우려는 선한 마음, 불의 앞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용기, 내게 해를 입힌 사람을 용서하는 힘 등과 같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훌륭한 특성 말이다.


이러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마치 과분이 행여나 떨어질까 조심조심 포도를 박스로 한 송이씩 옮기듯, 섬세한 주의와 부드러운 태도, 그리고 자기에 대한 깊은 존중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 속에서 자신과 타인을 다루는 데 있어 모질고 거친 경우가 많다. 자신을 몰아붙이고, 가장 소중히 다루어야 하는 가족에게 모진 말을 내뱉고, 타인을 평가하며, 타인의 선의의 행동조차 냉소로 읊조린다.


소로우가 말하는 '조심스러움'이란 단순한 감정적인 것을 돌본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세심한 윤리적 태도에 대해 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연 속에서 살며 인간의 내면 또한 자연과 닮아 있음을 말한다. 자연은 강하지만 동시에 섬세하다. 한 송이 꽃은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리고 잘못된 손길에 쉽게 시들어 버린다. 사람의 내면의 특성 역시 그러하다.


수많은 영화와 책에서 한 때 순수하고 소박한 행복을 꿈꾸었던 영혼이 어떻게 사회의 부조리함과 거친 대우 속에 변해가는지를 잘 설명해 두었다.


영화와 책까지 갈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을 둘러보거나 나 자신을 돌아보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오늘날 문명의 발달로 새겨진 역사는 우리를 이곳에 데려다 놓았다. 빠르고, 거칠고, 효율을 중시한다. 개인의 훌륭한 미덕을 살피기보다는 빠르게 효율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다.


출판 당시에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던 소로우의 '월든'이 현대 사회에서 더욱 존중받고 많은 이들의 마음을 끄는 이유는 뭘까?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마음 한켠에 실현하고 싶은 자기 존중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소로우는 월든 호숫가에서 진정한 인간다움에 대해 고찰했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그 섬세함 속 강인함에서 그는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서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살려고 하는 이유도 본연에 가지고 있는 자신의 섬세함 속 강인함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연 속에서 배우고 자신과 타인을 부드럽게 다루는 법을 연습하는 것.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모든 사람이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는 훌륭한 특성들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져 타인을 대한다면, 세상을 살아가기가 한층 더 달콤할 것 같다.





그동안 '고전을 읽고 삶에 동의하기로 했다'를 애정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실은 이 10편의 글들은 10일 만에 쓰였습니다.


'제13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응모를 기획하던 중 갑자기 9월에 말레이시아와 한국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기획을 접을까 고민도 했지만 읽었던 책에 관한 글을 6일 동안 써서 매주 예약을 걸어두었습니다.


여행에 돌아와서는 마침 시차 적응으로 새벽에 깨어 있는 시간이 많아 4편의 글을 더 쓸 수 있었고 10편의 글이 완성되어 무탈하게 연재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글을 써서 응모를 한다는 것이 꼭 마감 기한을 두고 청탁받은 글을 마감기한에 맞추어 쓰듯 짜릿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응모를 하기 위해 연재를 시작했지만 실은 스스로에게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지 시험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기여를 할 수 있는 일이 재주가 없는 저에게는 글쓰기밖에 없는 듯하여 글 쓰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은데 제가 과연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노인과 바다'를 필두로 시작한 이번 연재는 쉽지는 않았지만 10일간 뿌듯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행복에는 제 글을 읽어주는 독자분들이 계십니다. 다시 한번 감사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신 브런치 관계자 분들께도 아울러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저의 글쓰기 삶에 새로운 여정을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제 글을 애정해 주시는 분들께 소단의 '오늘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낯설지만 설레는 저의 여정에 독자분들께서 함께 해주신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


소단의 '오늘 편지'를 받아보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셔서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w1DUvSOuHxdlDz23KO_HP7e0X0KdyJDOclh4Tbkep35BJ3g/viewform?usp=header



항상 무탈하시고 건강하게 하루하루 행복한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 하루에 저의 편지가 작게나마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저의 '오늘' 또한 행복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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