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여성 그 자체
Angèle(앙젤)(/엉줼/)은 프랑스인이 아닌 벨기에인이다. 몰랐을 수도 있지만, 벨기에는 불어, 네덜란드어, 독일어를 공용으로 쓰는 나라이다. (여담이지만, 벨기에 브뤼셀에 1박 2일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공적으로 쓰여있는 글에 불어와 네덜란드어가 함께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참 신기하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여행객인 나에게는 영어로 말을 걸어주는 나라였다.) 물론 Angèle은 불어를 주 언어로 사용한다.
그나저나, 프랑스 음악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글의 첫 글에 왜 벨기에 아티스트를 골랐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몇 가지 들자면, 첫째, Angèle이 그만큼 프랑스 내에서 유명하다. 둘째, 내가 Angèle을 좋아한다. 셋째, 이런 아이러니한 것이 내가 생각하는 프랑스라는 나라의 이미지와 맞기 때문이다.
Angèle은 이미 한국에도 팬이 꽤 있을 정도로 그나마 잘 알려진 현대의 프랑스어권 가수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지 못했어도 그녀의 얼굴이 낯익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2020년부터 샤넬의 뮤즈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백화점이나 온라인에서 지나치다 한 번쯤은 봤을지도 모른다.
Angèle은 1995년 12월 3일 생이며 풀네임은 Angèle Joséphine Aimée Van Laeken이다.
한국에서는 '앙젤'이라고 검색해야 나오지만 사실, Angèle의 현지식 발음은 /엉줼/이 훨씬 가깝다.
그녀를 한 줄로 설명하자면, '작사작곡, 노래, 피아노, 춤 다 가능한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 파워풀한 보컬은 아니지만 듣기 좋은 음색과 좋은 가사를 겸비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장르를 잘 소화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아닌가. 일단 노래부터 들어보자.
https://youtu.be/zGyThu7EAHQ?feature=shared
Angèle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곡은 <la loi de murphy>(머피의 법칙)(/라 루아 드 먹ㅎfㅣ/)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노래는 특이하게 가사에 영어가 많이 나온다. 매력적인 멜로디에 랩과 내레이션 그 사이에 있는 듯한 구절들이 흥미로우며,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Angèle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망가져도 매우 귀엽기 때문에 꼭 확인하기 바란다.
이를 통해 점점 온라인에서 인기를 얻어가던 와중에 2018년 발매한 (친오빠 래퍼 Roméo Elvis(/호메오 엘vㅣ스/)가 피처링한) <Tout oublier>(다 잊다)(/뚜뚜블리에/)가 대박을 터뜨린다.
https://youtu.be/Fy1xQSiLx8U?feature=shared
이 곡이 굉장히 오랜 시간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1위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독적인 멜로디와 행복하려면 다 잊어버리라는 곡의 메시지가 단순하지만 공감을 얻었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은 것 아닐까 싶다.
뮤직비디오의 첫 장면에는 <악의 꽃>으로 유명한 보들레르의 사진이 나온다.
보들레르가 <Le Spleen de Paris>(파리의 우울)이라는 책을 써서 (가사에도 spleen이 나오기 때문에) 첫씬에 등장시킨 것 같다. 불어에는 우울을 뜻하는 단어가 여러 개가 있는데 그중에서 spleen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을 의미한다.
곧이어서 더운 여름날 해변에서 두꺼운 스키복을 입은 Angèle과 Roméo Elvis가 등장해 (더위마저 잊어버린 듯?) 단순한 곡의 메시지를 잘 전달해 준다. 참고로 뮤직비디오 속 해변은 스페인의 한 해변이라고 한다.
Le spleen n'est plus à la mode, c'est pas compliqué d'être heureux
우울은 더 이상 유행이 아니야, 행복해지는 건 복잡하지 않아
Le spleen n'est plus à la mode, c'est pas compliqué
우울은 더 이상 유행하지 않아, 복잡하지 않아
Tout, il faudrait tout oublier
전부, 전부 잊어버려야 해
Pour y croire, il faudrait tout oublier
그걸 믿기 위해서는, 모두 잊어야 해
Ferme les yeux, oublie que tu es toujours seul
눈을 감고, 네가 항상 혼자라는 것을 잊어버려
Oublie qu'elle t'a blessé, oublie qu'il t'a trompé
그녀가 네게 상처를 준 것을 잊어버리고, 그가 너를 속인 것을 잊어버려
Oublie que t'as perdu tout ce que t'avais
네가 가진 모든 걸 잃어버렸다는 것을 잊어버려
C'est simple, sois juste heureux, si tu le voulais, tu le serais
간단해, 그냥 행복하렴,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될 거야
https://youtu.be/Hi7Rx3En7-k?feature=shared
Angèle의 곡 중 한국에서 꽤 알려진 곡이 아닐까 싶다. <Balance Ton Quoi>(너의 무엇을 고발해)(/발렁쓰 똥 꾸아/)는 원래 프랑스 미투운동에서 쓰이던 'balance ton porc'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페미니즘적인 내용에 그녀의 이야기를 더한 곡으로 프랑스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각종 시위를 할 때면 시민들이 이 노래를 떼창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뮤직비디오에는 한국에서도 꽤 알려진 프랑스 유명 배우 Pierre Niney(피에르 니네이)(/삐에흐 니네/) 도 나오니 보면서 찾아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는 코믹 연기도 잘해버린다)
(동영상 재생이 되지 않는다면 영상 위에 있는 링크 주소를 클릭해 주길 바라며, 모바일로 재생하고자 한다면 유튜브 앱 열기를 누르면 재생이 될 것이다. 왜 이 곡만 재생이 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위 세곡을 포함해서 2018년 처음으로 발매한 앨범 <Brol>(/브홀/)과 2019년 발매한 리패키지 앨범 <Brol La Suite>(/브홀 라 쉬뜨/)는 2021년 말 기준 총 150만 장 이상의 판매를 이뤘다고 한다. (나도 LP로 한 장 가지고 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앨범명에서도 그녀가 벨기에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Brol은 벨기에에서 사용하는 불어로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쓰레기(같이 가치 없는 것), 소란' 정도를 의미하고, 여기서는 소란의 의미로 쓰였다. (앨범 판매 사이트에 첨부된 정보에 따르면, "Le brol c’est le bordel, le désordre mais optimiste et léger, ce n'est pas du tout péjoratif." "brol은 소란이에요, 무질서이지만 낙천적이고 가벼운, 전혀 경멸의 의미가 아니에요"라고 적혀 있으므로 소란이라고 번역하겠다) (Brol La Suite는 '소란 그 후에'라는 의미이다)
이 앨범을 통해 그녀는 '올해의 현상'(Phénomène de l'anée)이라는 수식을 받을 정도로 프랑스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이 앨범으로 그녀는 2019 프랑스 음악 시상식 Les victoires de la musique에서 <신인 앨범> 상을 받았고 2020 같은 시상식에서 <콘서트>상을 받았다.
https://youtu.be/YVdyS-k_MrI?feature=shared
이 앨범에 좋은 노래가 정말 많은데 시간이 된다면 꼭 전곡을 다 들어보기 바라며, 시간이 없다면 아래 두곡이라도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https://youtu.be/m3YX8zlR4BU?feature=shared
<la Thune>(/라 뛴느/)은 불어에서 돈을 의미하는 속어로 한국어로는 '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노래는 돈과 명예만 중요시하는 사회를 비판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À quoi bon?'(그게 무슨 소용이야?)라고 묻는다.
뮤직비디오에 아이튠즈를 연상시키는 iThunes 가 나오고, 음료를 서빙하는 사람으로 친오빠 Roméo Elvis가 잠깐 등장하니 이 또한 찾아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https://youtu.be/XQKYEs4llzg?feature=shared
이 곡은 <Ta Reine>(너의 여왕)(/따 헨느/)라는 곡이고, 라이브 영상이다. 성 정체성을 깨달은 그녀의 경험을 바탕으로 써낸 곡이다.
Mais tu voudrais qu'elle soit ta reine ce soir
하지만 넌 오늘밤 그녀가 너의 여왕이기를 바라잖아
Même si deux reines, c'est pas trop accepté
비록 두 명의 여왕은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라도
Mais tu voudrais qu'elle soit ta reine ce soir
하지만 넌 오늘밤 그녀가 너의 여왕이기를 바라잖아
Toi, les rois, tu t'en fous, c'est pas c'qui t'plaît
너는, 왕들은 신경 쓰지 않잖아, 그건 네 마음에 들지 않지.
사실 그녀는 가수로 유명해지기 전, 유명인 부부의 딸로 여겨지던 사람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벨기에의 유명한 가수이고, 어머니는 배우이다. (물론 벨기에 안에서만 유명한 편이었고, 그녀의 오빠도 그녀보다 먼저 래퍼로 데뷔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전세가 역전돼 부모님이 Angèle의 아빠, 엄마로 여겨진다고 한다.
그녀의 삶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넷플릭스에 있는 Angèle의 다큐멘터리 <앙젤>을 꼭 보길 바란다! (인생사뿐만 아니라 그녀가 작업을 하는 방식도 잘 담겨 있다)
https://youtu.be/yw0rs2z1KXA?feature=shared
이 다큐에는 데뷔 전 Angèle이 유명인의 자녀로서 느꼈던 부담감과 가수활동 초반의 대중의 냉랭함, 언론에게 당한 배신과 아웃팅 그리고 대중으로부터 상처를 받는 모습까지 잘 담겨 있다. 또한 그녀의 오빠가 2020년 성폭행 혐의로 기소당해 그녀는 다시 한번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었다. 길지 않은 세월 동안 그녀의 인생은 이처럼 꽤나 다이내믹했다. 그래서 두 번째 앨범의 표지에 롤러코스터가 등장하는 것 아닐까 싶다.
Angèle은 2021년 말에 두 번째 앨범 <Nonante-Cinq>(95)(/노넝뜨 쌍끄/)를 발매했다. 이 앨범에서 그녀는 1집에서 다뤘던 주제들보다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이 앨범명에서도 그녀가 벨기에 사람임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데, 이는 그녀의 탄생연도 95를 의미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쓰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벨기에와 스위스 지역에서만 사용하고, 프랑스어로 95는 quatre-vingt-quinze라고 말한다)
위 사진은 2022년 발매된 2집의 리패키지 앨범 <Nonante-Cinq La Suite>(95 그 후에)(/노넝뜨 쌍끄 라 쉬뜨/) 앨범 커버이다. 이 앨범을 통해 Angèle은 2023 프랑스 음악 시상식 les Victoires de la musique에서 <여성 아티스트>상을 받았다. 원래 앨범과 다르게 사진의 각도가 뒤집혔고, 더욱 익살스러운 표정의 사진을 골랐다. 이 점에서 볼 수 있듯이 Angèle의 실제 성격은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유연한 사람이다.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유머의 중요성을 알지만 음악 앞에서는 진지하기 때문에 많은 프랑스인들이 그녀를 더욱 사랑하는 것 아닐까 싶다.
https://youtube.com/shorts/woJwOXGWttA?feature=shared
위 영상은 이 앨범이 나오기 전에 공개된, Angèle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트랙리스트를 기억해 적는 영상이다. 짧지만 재밌는 이 영상에서 그녀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아서 첨부해 봤다.
https://youtu.be/a79iLjV-HKw?feature=shared
이 앨범의 수록곡 중 타이틀의 느낌(프랑스어권 앨범은 한국처럼 타이틀곡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 같지만, 이 곡이 앨범에서 가장 먼저 공개됐고, 대표곡임은 틀림없다)인 <Bruxelles je t'aime>(브뤼셀 난 너를 사랑해)(/브휘쎌 쥬 뗌므/)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의 고향인 브뤼셀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곡이다.
https://youtu.be/G_c2o07aCOM?feature=shared
2022년 프랑스 음악 시상식 <Les victoires de la musique>에서 이 곡의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는데, 벨기에의 상징과 같은 와플 위에서 곡을 시작하며 “브뤼셀 사랑해! 네가 제일 아름다워!"라고 외치는 모습이 굉장히 당차고 애국심이 느껴져 멋있지 않은가. 이 점이 바로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이다.
https://youtu.be/Y1sWOW23md0?feature=shared
<Libre>(자유로운)(/리브흐/)는 경쾌한 멜로디에 더 이상 과거의 자신 없던 모습이 아닌,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겠다는 내용의 곡이다.
뮤직비디오에 실제로 Angèle의 반려견인 Pépette(/뻬뻬뜨/)도 출연하고, 그녀가 와이어도 달고 촬영을 했으니 꼭 확인하기 바란다. 뮤직비디오 초반에 버스에 붙은 자신의 포스터에 낙서된 것을 보는 그녀의 표정을 놓치지 말기 바란다.
https://youtu.be/5TqetBMBTww?feature=shared
벨기에 래퍼 DAMSO(/담소/)가 피처링한 <Démons>(악마들)(/데몽/)이라는 곡이다. 이 노래는 반복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악마들을 죽이는 법을 묻고 있다.
사실 Angèle과 DAMSO는 이전부터 인연이 깊다. 데뷔 초 그녀는 유명 래퍼인 DAMSO의 콘서트 오프닝 게스트로 서게 됐으나 관객들의 반응은 아주 냉랭했으며, 그녀는 이로 인해 꽤나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었다. (이는 넷플릭스 다큐에 잘 담겨 있으니 참고 바란다) 아직 노래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관객들의 취향과 맞지 않는 다소 잔잔한 음악들이었기에 그 냉랭함은 더욱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힘든 시간을 잘 견디고 최고의 여자 솔로 아티스트중 하나가 되어 그와 함께 곡을 발표하는 멋진 결말을 보여주었다.
https://youtu.be/VWbkB3fz_x8?feature=shared
프랑스 유명 래퍼 Orelsan(/오헬산/)과 함께 부른 <Évidemment>(분명히)(/에vㅣ다멍/)은 성공에 왕도는 없으며 그 길이 확실히 쉽지 않다는 것을 노래한다.
Le secret, c'est qu'y a pas d'secret
비밀은, 비밀이 없다는 거야
확실히 성공한 두 가수가 지름길을 바라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라고 해주니 좋은 자극이 된다.
https://youtu.be/Nt4il_hBM4U?feature=shared
<Amour, Haine & Danger>(사랑, 증오&위험)(/아무흐, 엔느 에 덩줴/) 은 제목처럼 핸드폰 속에 이 모든 게 들어있으며 이에 중독된 사회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핸드폰이 없었던 예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약속을 잡고, 데이트를 했는지 궁금하다는 가사가 재밌게 느껴지는 곡이다.
뮤직비디오에서 그녀가 핸드폰 탈을 쓰고 등장해 가사를 더욱 재밌게 전달해주고 있다.
https://youtu.be/vs61OHs2g-w?feature=shared
끝으로 빼놓을 수 없는 곡이다. 한국에서는 Angèle이 이 노래로 가장 많이 알려졌을 것 같다.
2020년 Dua Lipa(두아 리파)의 노래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Fever>이다. (이 곡에서도 그녀는 불어로 노래를 부른다)
이 곡을 계기로 두아 리파와 Angèle은 실제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콘서트(런던, 파리)에도 깜짝 게스트로 등장하기도 했다.
https://youtu.be/O55U1INqTrc?feature=shared
Angèle은 지난해 총 95일의 Nonante-Cinq 앨범 투어를 마쳤다. 앨범이 아직까지 많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발매할 곡들이 더욱 기대되는 성장하는 멋진 아티스트이다. 그녀의 이번 투어 비하인드 영상을 첨부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영상에 깔린 음악은 2집 수록곡 <Plus de sens>(더 이상 이해가 안돼)(/쁠뤼스 드 썽쓰/)이다)
https://youtu.be/WGG2H-NcgIw?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