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역사의 한가운데서 비범함을 강요당했던 평범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
1987년 4월 11일. 대한민국 역사가 바뀌고 있던 시기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한 작가가 자신의 집(3층)에서 추락해 사망합니다. 그의 왼쪽 팔뚝에는 ‘174517’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고,그의 묘비에도 그 숫자가 새겨집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수인번호. 그의 삶을 관통한 상징과도 같은 낙인은 유사한 다른 많은 사례들 처럼 먹먹한 아픔과 더불어 역사속에는 결코 잊어서는 안될 비극이 있음을 되새기게 합니다
3년전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최근에야 다 읽었습니다. 일독을 권하며 책을 선물한 지인의 성의가 아니었다면 나치의 ‘유대인 최종해결’이라는 참혹한 역사를 알기에 절대로 읽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책이었습니다. 인간성과 인류의 역사에 대한 깊은 회의를 갖게 하는 생생한 기록은 언제 접해도 불편함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방송에서 소개할 만큼 많이 알려진대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존한 유대계 이탈리아 작가의 기록’
입니다
프리모 레비(Primo Levi, 1919.7.31∼1987.4.11)... 그는 토리노에서 태어나 토리노대학 화학과를 졸업했고,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후에는 토리노에서 가정을 꾸리고 전공을 살려 직장인으로 일하며 글쓰기를 병행하는 삶을 살다가 토리노시 기념묘지(Cimitero Monumentale di Torino)에 안장됐습니다. 토리노에서 태어나 아우슈비츠 수용소생활 기간이나 직장인과 작가로서 짧게 짧게 집을 벗어난 외에는 줄곧 토리노에서 살다가 토리노시에 묻힌 유대인... 평범했을 그의 삷은 전쟁과 유혈, 신념에 찬 폭압적 권력의 폭주가 버무려진 잔인한 역사의 한가운데서 무너졌고, 힘없는 개인이 겪었던 혹독한 고난을 생생한 기록으로 남겨 비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비범한 존재가 되도록 한 고난의 경험이 없었으면 그는 평범하고 보다 행복했을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사실 책 선물을 받은 날 바로 읽기 시작했었습니다. 결코 유쾌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잔혹함과 희생자들의 비참한 고통, 비극이 담겼을 것이기에 읽기를 꺼려하면서... 그리고 채 20여쪽을 넘지 못한 분량을 애써 읽은 후 멈추었습니다. 도저히 읽게 안되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저자 레비가 체포돼 수용소로 이송되는 내용은 참담했습니다. 그러나 책 읽기를 멈춘 것은, 아니 더 이상 읽기 어려웠던 이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담백한 글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그 엄청난 고통과 비극을 겪었음에도 감정을 일절 배제한 채 어찌 그리 냉정한 관찰자 위치에서 글을 써내려 갈 수 있는가?
그 담담함이 오히려 레비와 유대인들이 겪은 잔혹함과 비극을 더욱 선명하고 아프게 와 닿게 했습니다.
이태리 모데나 근처 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로의 수송열차에 실리기 전날의 분위기를 묘사한 글
모두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 삶과 작별했다.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러 곤드레 만드레 취하는 사람, 잔인한 마지막 욕정에 취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여행중 먹을 음식을 밤을 새워 정성스레 준비했고 아이들을 씻기고 짐을 꾸렸다...
저자와 함께 이송된 유대인 650명중 튼튼한 남성을 중심으로한 125명을 제외한 어머니들과 그들로 부터 ‘씻김’ 의 보살핌을 받은 모든 아이들은 객차에서 내려져 바로 가스실로 갔음을, 저자는 ‘그렇게 해서 (호기심 많고 대담하며 활발하고 똑똑한 아이였던) 세 살배기 에밀리아가 죽었다’라는 한 문장으로 담담하게, 그러나 역설적으로 더할 수 없이 큰 슬픔이 엄습하도록 그렸습니다. (레비와 함께 이송된 650여명의 유대인중 최종적으로 살아 돌아온 사람은 단 3명이었습니다)
그는 이 책의 부록 ‘독자들에게 답한다’에서 자신의 그러한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나는 이성과 토론이 진보를 위한 최선의 도구이므로 정의를 증오앞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책을 쓸 때 의도적으로 희생자의 한탄섞인 어조나 복수심을 품은 사람의 날선 언어가 아닌, 침착하고 절제된 증언의 언어들을 사용하고자 했다. 나는 나의 언어가 객관적일수록, 지나치게 흥분하지 않을 수록, 신뢰를 주고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 때만 정당한 증언이 제 기능을 할 것이며 바로 그때 심판의 장이 마련될 것이다. 심판관은 바로 여러분이다
3년전에도, 지금도 나는 침착하고 절제하며 써내려간 레비의 잔혹한 증언을 이성적으로 접하고 인류의 진보를 위한 가르침으로 승화할 자질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글이 불편합니다. 자신은 증오나 격앙 없이 절제된 글을 쓰지만 막상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성의 영역을 벗어나 분노와 슬픔을 쏟아낼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그 어울리지 않음이 불편했고, 오롯이 글에 집증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만일 그가 한탄과 증오, 날 선 언어로 글을 썼다면 그의 감정과 표현에 나의 감정이 어우러져 빠르게 글을 읽어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 번 더 생각하게 하고 그래서 깊은 여운을 남기려 한다 싶어서 솔직히 그 글에 반감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분노하고 슬퍼해야 할 때 자신은 분노와 슬픔을 억누르며 독자에게는 더 없는 분노와 슬픔을 갖게 하는 그 모습이...
레비의 돌연한 추락사는 자살로 결론 내려 졌습니다. 반론도 많았습니다. 유언장을 비롯 자살을 암시하는 징후가 없었고, 오히려 각종 장단기 계획을 세웠으며, 처방 받은 약 때문에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등등... 그러나, 말년의 그는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된 트라우마에다 노모와 장모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 등이 겹쳐 우울증으로 힘들어 했답니다. 로마의 수석 랍비는 추락사고 10여분전에 레비가 처음 전화를 걸어와 “암으로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를 보면 늘 아우슈비츠 에서 늘어져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며 고통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레비와 같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엘리 위젤(Elie Wiesel)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프리모 레비는 40년후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
개인적으로는 위젤이 남긴 말을 알기 전임에도 불과 20여쪽을 읽고 레비가 종국에 왜 자살로 생을 마감할수 밖에 없었을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싶었습니다. 그가 인간다움을 간직하기를 바란 인간들을 위해, 죽어간 친구들을 위해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소명감으로 스스로 철저히 억눌렀을 뿐, 자신과 동료들이 직접 겪은 참혹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고통의 기억이나 감정은 결코 치유될 수 없는 것이었다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고통 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아우슈비츠 수용소 역사상 유일한 무장투쟁을 감행했다가 교수형 당하는 남자의 마지막 고함, ‘동지들, 내가 마지막이오!’를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한 수용자들과 스스로를 돌아보며 ‘우리는 망가지고 패배했다. 우리가 다시 (살아)돌아갈 수 있다 해도 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고 한 그의 소회. 그는 자신이 말한 대로 ‘이미 영혼이 죽은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제 2차대전을 종합적으로 개관한 명저 ‘피와 폐허(Blood and Ruin)’에서 저자 리처드 오버리가 전후 보호소에 수용된 홀로코스트 생존유대인을 관찰한 기록을 소개한데 따르면; 그들은 대다수가 살해된 반면에 자신들은 살아 남은데 대해 죄책감과 수치심에 시달렸고, 끊임없는 공포와 불안상태는 물론 트라우마와 지속적인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야뇨증. 유아적 퇴행. 좀도둑질. 위생불량 등 정신질환적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또한 그들은 ‘신체적. 정신적 인내력의 만성적 과부하’상태였으며 무엇보다 ‘여전히 죽어있는’ 자신들이 통과하고 경험한 사태가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이해 받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감속에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돼 험난한 여정을 거쳐 토리노 고향으로 돌아온 후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사망할 때까지 살며 자신이 겪은 것을 책으로 내고, 가정을 꾸리고 1남 1녀 자녀를 키워냈습니다. 살아남은 그의 삶은 평온했습니다. 적어도 스스로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가 1976년 11월 ‘독자들에게 답한’ 글에서 그는 ‘냉소주의자로 치부되는게 싫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기 조심스럽지만 지금 수용소를 떠올리면 격렬하거나 고통스러운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짧았지만 비극적이었던 포로생활의 경험이 길고 복잡한 증언 작가로서의 경험과 합산돼, 그 결과는 분명 긍정적이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나의 과거는 나를 더욱 풍요롭고 자신감 넘치게 해주었다... 그런 사건을 경험하고 글을 쓰고 관조하면서 인간과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밝힙니다.
이 구절은 언뜻 푸쉬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가운데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라는 문구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푸쉬킨의 삶을 관조하는 듯한 철학적 사색이 담긴 이 싯구와 레비가 겪었던 참혹한 사건은 결코 어울릴 수 없습니다. 레비, 그리고 그와 같은 공간에 있었던 인간들이 겪었던 일에 대해 그리 얘기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모든 인간다움을 박탈당한, 또는 스스로 버린 짐승들만의 세계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그러한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불가능한 설명을 하려는 억지스러움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반면 그 레비의 말이 어울리지 않기에 큰 의미를 갖게 되기도 합니다. 만일 어울리는 것만 존재한다면 침착하고 절제된 증언의 언어로 쓰여진 이 책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기에...
레비는 수용소 생활에 대한 기록 곳곳에 ‘벗어날 수 없는,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공간’, ‘육체적 죽음을 맞기 훨씬 전에 먼저 영혼이 죽은 공허한 인간군상’에 대해 얘기합니다. 그 얘기를 보면서 줄곧 40여년전 중 3 겨울방학에 읽었던 비르질 게오르규의 ‘25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LG 25’, ‘톡파원 25시’ 등등을 통해 대중에게 ‘25시’는 하루 24시간을 넘어 열심히 뛰고 서비스를 하는 이미지로 자주 소개됩니다. 그러나 처음 이 표현이 사용된 의미는 희망이 사라진 시간을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25시!’ 최후의 시간에서도 한 시간이나 더 지난 시간. 메시아가 강림한다 해도 아무런 구제도 할 수 없는 절망의 시간... 산소공급이 끝나는 시간을 훨씬 넘겨 무너진 갱도속에 생존자가 한명도 존재할 가능성이 없는 것과 같은 이미지를 연상하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소설 ‘25시’의 주인공 요한 모리츠는 루마니아시골에서 살아가던 가난하고 순박한 농부였습니다. 민족도 이념도 알지 못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을 넘어선 세계를 사고할 능력도 없이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는 삶에 의미를 두는. 그런 그가 개성이 말살되는 거대한 권력과 관료제도, 광기어린 부족주의와 이데올로기 대립에 휩쓸려 13년간 루마니아의 유대인 수용소, 헝가리의 적성국 루마니아인 수용소, 독일의 노동수용소, 프랑스의 연합군 수용소에 수감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유대인 야노스'가 되기도, '야곱'이 되기도, '앙켈'이 되기도 합니다. 그와 그의 가족, 그가 살았던 마을의 선량한 목사와 목사의 가족들은 ‘거대한 기계문명의 노예’가 된 인간의 일원으로, 또다른 노예들에 의해 희생됩니다. 소설의 주요 인물이며 ‘적성국이 된 루마니아인으로' 연합군 수용소에서 갇혀 있던 지식인 ‘트라이안 코루가’는 ‘거대한 기계문명의 노예가 된 삶’에 절망해 경비병 총에 맞아 ‘자살’당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프리모 레비(이태리계 유대인), 비르질 게오르규(루마니아인), 그리고 엘리 위젤(헝가리계 유대인)등등 많은 사람이 산업화된 거대국가와 권력에 의해 가능해진 디스토피아와 인간성 말살에 대해생생한 경험에서 우러난 경고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에 있어 그러한 목소리는 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대문명을 가능하게한 주된 동력중 하나는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가능하게 한 계몽주의입니다. 그러나 그 계몽주의에 의해 가능해진 '문명화된 거대 산업국가'라는 쌍생아는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엄청난 자원 동원력과 개개인의 삶을 통제하고 자신들에게 복종토록 하는 지식을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을 권력에게 부여함으로써 무지와 폭력, 미신이 횡행하던 야만의 시대를 넘어선 ‘이성’을 가진 존재인 인간이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아우슈비츠나 인종청소와 같은 일이 20세기에 버젓이 벌어지도록 했습니다. 그러한 잔혹한 만행이 ‘인간이성’에 대한 믿음과 중시가 빚어낸 과학문명과 산업 생산력, 그리고 이것을 바탕으로 효율화된 국가 행정역량에 힘입은 것이라는 것이 인류의 비극적 역설입니다.
그 강력한 힘은 한나 아렌트가 얘기한 ‘악의 평범성’과 결합되어 광기어린 믿음과 비극을 반복 하게 합니다. 권력에 의해 창출되고 주입된 ‘정의’와 ‘지식’. 그것은 성실하고 평범한 인간을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 잔인한 괴물이 되게 합니다. 카톨릭 사제가 될 것을 생각하기도 했다는 아우슈비츠수용소장 루돌프 회스는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그려지듯, 잔혹한 살육을 지휘하면서 그 살육의 현장이던 수용소 인근에 가족들과 행복의 보금자리를 꾸며 생활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수행해야 할 일에 항시 누구보다 성실했습니다. 유대인 절멸이라는 행위를 주어진 과업으로 생각했을 뿐 수많은 인간을 죽이는 잔혹함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의 사고에 없었습니다. 선함과 선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공동체가 어느 한 순간 던져진 작은 불씨에 의해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과 사회가 될 수 있음을 역사는 보여줍니다. 어느 사회도,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역사가 보여주지만 앞으로도 인류의 역사에서 유사한 상황은 반복될 것입니다. 악은 언제든 작은 틈새를 파고들어 튼튼해 보이는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번영하는 국가, 건강한 사회, 함께하는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좋은 정치’라는 말. 그러나 정치는 그 자체로 본질적으로 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정치학자나 정치철학자들은 마음을 지배하는 종교, 폭력을 지배하는 전쟁과 대비해 정치를 ‘지식을 지배하려는 것’으로 이야기 합니다. 정치적 경쟁은 지식을 장악하려는 경쟁이고, 권력의 장악은 곧 그 국가사회의 지식을 장악하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자신은 이성적 존재이고 충분한 지식과 교양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는 인간들이 접하는 지식과 가치판단의 기준 자체를 실제는 정치가 지배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든 나치의 유대인 절멸정책이나 볼세비키 쿠데타, 문화대혁명, 1990년대 보스니아 인종청소 같은 비인도적, 반이성적 행위가 버젓이 이뤄질 수 있는 동력이 됩니다.
레비가 ‘독자와의 대화’ 형식을 통해 유대인에 대한 나치독일의 광적인 증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힌 바 있습니다. 히틀러는 대공황으로 경제적 파탄에 직면한 독일인들의 적대감이 유대인에게 향하도록 하는데 성공해 독일국민에게 걷잡을 수 없는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그것이 히틀러에게 두 배로 되돌아와 스스로를 니체가 예언한 ‘독일의 구원자인 초인’이라는 미치광이 같은 확신을 갖게 했다는 것입니다. 레비는 1933년 5월 유대인과 나치즘에 비판적인 저자들의 책이 처음으로 불태워졌음을 덧붙입니다. 19세기초 유대인 시인 하이네가 했던 예언적 경고, ‘책을 불태우는 사람은 조만간 인간들을 불태우게 될 것이다’라는 말과 더불어... 하이네는 물론 레비가 살았던 시대의 ‘책을 불태운다’는 행위는 인터넷과 대중매체가 발달한 오늘날에는 보다 넓은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입니다. 나와 다른 견해나 관점, 가치관이 담긴 책은 물론 인터넷상 글, 강좌 등을 적대시하고 의견표명을 억압하는 모든 것이 ‘책을 불태우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더우기 일상적으로 대중의 삶에 파고들 수 있는 수단의 발달은 자연스럽게 지식을 지배하기 위한 경쟁을 치열하게 하고 대립각을 더욱 선명하게 합니다. 또한 경쟁에서 이긴 세력은 권력을 유지하는 핵심고리인 지식을 독점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게 될 것입니다.
그 궁극적 성공인 전체주의 독재체제는 ‘진실을 마음대로 바꾸고, 과거를 되돌려 역사를 다시 쓰고, 사실을 왜곡하고 삭제하고 거짓을 첨가하는 게 합법적이다’는 레비의 경고가 현실화되는 곳입니다. ‘프로파간다가 정보를 대체’하는 국가. 그로인해 ‘신민’만 있을 뿐이며 자각과 권리를 갖는 ‘시민’이란 존재할 수 없는 전체주의 국가...
작가로서, 스페인내전에 직접 참전한 활동가로서, 평생 일관되게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의 삶을 산 조지 오웰이 그의 작품을 통해 ‘전체주의의 가장 끔찍한 면은 그것이 저지른 잔혹행위가 아니라 객관적 진리라는 개념자체에 대한 공격이다' '조직적 기만은 전체주의 사회의 본질적 속성’임을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인류문명이 진화할수록 조직적 기만의 시도와 철저함도 진화할 것입니다. 그 거대한 힘에 맞서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유지하는 것도 점점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깨어있어야 한다’ 거나 ‘깨어있는 시민(적 각성을 촉구)’을 강조하는 이야기가 그에 대한 해법으로 회자됩니다. 그러나, ‘역사적 합의’라는 공동근거가 없이 ‘당파적 역사’만 남은 사회에서는 ‘깨어있다는 것’자체가 가치판단이 개입된 또 다른 편향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경우에 따라 가장 위험한 주장입니다. 유대인들이 탄압받고 학살당하던 그 순간 독일인들은 ‘국가사회주의’ 신봉을 ‘진리의 길’ 이며 ‘깨어있음’으로 정의했습니다.
위치에 따라, 입장에 따라 동일한 사안이나 유사한 사안에 대해 관점과 의견이 일치할 수 없음은 인간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앞으로도 또 다른 악이 인간을 억압하는 과거보다 더 진화된 체제를 세울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음이 안타까움과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거나 의미를 축소하고 합리화하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절대 악’에 대해 ‘합리적인 평가’라는 명분아래 착안한 논리가 ‘절대악’에 ‘상대성’이 있는 것으로 비치게 한다면, ‘절대 악’은 언제든 그 ‘합리성’을 발전시켜서 자신의 악을 정당화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는 수단으로 동원할 것입니다.
그러한 비극을 막는 방법은? 없습니다. ‘역사의 교훈’? 그럴 듯한 말이나 일방적이고 선정적인 역사교육이 만연한 사회에서 정작 중요한 교훈은 ‘역사의 쓰레기통’에 버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실에서는 매우 무기력한 얘기일 수 있으나 다양한 관점을 접하는 ‘합리적 사유’와 ‘슬로건’이나 ‘프로파간다’에 휘말리지 않는 ‘실질적 논쟁’으로 거짓 신화나 편향된 지식의 족쇄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정도만을 대안으로 얘기할 수 밖에 없음이 안탔깝습니다
여기에 억지로 덧붙인다면 참혹한 고통에 놓여서도 굴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와 사랑(?)의 힘... 그것이 판도라의 상자에 남았던 ‘희망’이라는 이름과 연결되어 인간이 그 모든 도전을 극복하는 동력이 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앞서 레비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했던 홀로코스트 생존자 엘리 위젤(Elie Wiesel)은 16세에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도착하자 마자 가스실로 보내져 죽임을 당했고, 아버지는 종전직전 부헨벨트 수용소로 함께 이송되었다가 사망해 혼자 살아 남았습니다. 그는 훗날 그때를 회상하면서 ‘오프라 윈프리’에게 자신이 살아남으려 애쓴 가장 큰 동기는 아버지였다고, ‘내가 죽으면 아버지도 죽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답니다
그리고 모이라(Moira)를 인식하는 것! 그리스어로 운명을 뜻하는 모이라는 ‘주어진 몫’이란 의미가 담겨있다 합니다. 그리스인들은 각각의 인간에게는 ‘주어진 몫’이 존재하기에 오만(Hubris)하지 않도록 늘 겸손하고 조심해야 하며, 불확실성과 불안에 근거한 선견지명을 갖추도록 노력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단순히 운명에 순응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지식의 절대성’을 신봉함없이 겸손하고 조심하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유한성과 삶과 역사의 불확실성을 인식하고 각자에게 주어진 몫을 하라는 것입니다
‘모이라’이야기와 꼭 맞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레비는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직후 삶과 죽음을 가르는 분류과정에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존재’로 분류되어 가스실행을 모면합니다. 그리고 화학자로서 전문성을 인정받아 상대적으로 편한(?) ‘화학 코만도’에 편성돼 목숨을 이어갈 더 좋은(?) 기회를 부여 받습니다. 또한 소련군에 의해 끔찍한 수용소 생활에서 벗어나기 직전 성홍렬에 걸려서 감염병동에 수용됨으로써, 독일군에 의한 소개작업으로 많은 유대인이 희생된 ‘죽음의 행진’에서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운(?)은 ‘40년후 아우슈비츠에서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행운이 아니라 그에게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 그가 겪은 참상, 그가 느낀 분노와 슬픔, 절망을 인류에게 남기라는 모이라(힘든 숙제)를 부여 받은 것이었을 수 있겠다 여겨집니다.
그는 그 임무를 더할 수 없이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신적 존재, 그리고 역사는 우리에게 프리모 레비와 같은 존재를 매개로 충분히 경고하고 충분히 그 비극을 피할 기회를 줍니다. 늘. 과거에도 그러했고 미래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읽고 비극을 막거나 그것을 무시하고 참혹한 비극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몫일 것입니다
이미 신과 역사는 ‘우연’이라는 모습으로 토리노라는 한 공간에 서로 대립하는 상징적 인물들을 병렬시켜 우리에게 ‘과거를 잊지 말라’는 숙제를 남겨 놓았습니다.
인류에게 묵직한 질문과 숙제를 안겨준 프리모 레비의 묘에는 작은 나무 한그루가 심어져 있습니다. 평와와 안식을 기원함과 아울러 '죽음위에 다시 뿌리내리는 생명'이라는 레비의 문학세계와도 맞닿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제 프리모 레비 연구센터'와 토리노 시나고그 앞 작은 광장, 토리노의 각급 학교에 그의 이름이 붙여지고 그의생가와 그가 공부했던 곳, 그가 근무했던 공장에 그를 기리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것에는 '프리모 레비' 개인을 넘어 그가 전 인류에게 남긴 고통스러운 기록과 참혹한 역사를 결코 잊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