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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Sep 09. 2024

사라지는 몸, 피어나는 천장 속에서


 마지막으로 찍힌 발자국 주변에 소복하게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천장에 매달린 채 굳게 닫힌 문의 손잡이를 오래도록 응시했다. 바닥으로 자꾸만 떨어지는 이불을 덮는 대신, 양팔을 교차해 어깨를 감싸며 잠에 드는 것이 이제 나의 새로운 습관이 되었다. 이곳에서 나는 내 몸에 맞춘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영은 씨 요즘 뭔 일 있어요? 다리 살이 너무 많이 빠졌네.”


 옆자리에 앉은 주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발목을 살폈다. 아니다, 살이 빠진 수준이 아니라 살을 깨끗하게 다 발라 먹고 남은 닭다리처럼 앙상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이게 정말 내 다리일까, 분명 지난주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아, 그날부터였을까. 업무 분담표에서 내 이름이 빠진 걸 봤을 때.


 “왜, 아직 전달 못 받았어요?”


 상사는 무심하게 묻더니, 대충 인사말을 흘리듯 넘겼다. 모두 내 존재를 잊은 것처럼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속이 울렁거려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를 부여잡고 허리를 굽혔지만, 무엇도 나오지 않아서 팔을 뒤로 젖혀 엉성한 자세로 등부터 허리까지 문질렀다. 가슴이 쿵쿵 뛰고 턱은 뻐근하게 아파왔다.


 다리에 힘이 쫙 풀려 쓰러지듯 컴퓨터 의자에 앉았다. 한 시간쯤 지나고부터는 다리에 경련이 일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달달 떨렸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지만 다리 떨림이 멈추지 않아 치마 속으로 벨트를 칭칭 감아두었다. 답답해도 그게 나았으니까.


 이상한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사람 등이 금방 굽을 수가 있나? 티셔츠를 입을 때마다 날개뼈 근처가 걸려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블라우스가 점점 맞지 않게 되자 단춧구멍이 아슬아슬하게 벌어지곤 했다. 결국 한여름에도 두툼한 후드티와 다리를 다 가리는 긴치마를 입고 출근을 했다. 상사는 뻘뻘 흐르는 땀을 휴지로 닦는 나를 한 번 힐끗 보더니


 “이 정도로 예민해서는 힘들겠죠?”

 라는 말을 툭 던졌다.


 그때였다. 무언가 내 안에서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회사에는 병가를 냈다. 집에 돌아온 뒤로도 내 몸은 점점 더 말라갔고 어느 날엔 결국 날개가 돋아나고 말았다. 밥을 먹지 않아도 괜찮았다. 허기가 느껴져도 이런 상태로는 밥을 차려 먹을 수가 없었다. 다만 밤에 달빛만 잘 쬐면 되었다. 침대에 누우면 자꾸 뼈가 눌려 아팠다. 날갯짓을 배운 적은 없지만, 위아래로 펄럭펄럭 흔들어보았더니 금세 날 수 있었다. 분명 날개가 있는데도 나날이 바닥과 가까워지는 것만 같다.


 어젯밤엔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달빛이 방안을 환히 비출 때였다. 천장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달을 향해 날고 또 날았다. 처음에는 달이 줄지어 있는 듯한 가로등 사이를 유유히 날다가 하늘에 있는 하나뿐인 달로 날았다. 이제야 모든 게 후련하게 느껴졌다.


 밝게 빛나는 깃털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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