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유 Sep 16. 2024

페퍼로니향 물집


 지난번에 생긴 물집이 떠난 자리에는 페퍼로니 같은 것*이 자라났어. 껍질이 우글거리며, 아직 다 가라앉지 않아 단단한 상태로 경계하는 살의 표면이 피자 토핑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나더라. 그러면 나는 하나의 커다란 피자가 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어이가 없었어.


 나는 여기저기에서 부스러지고 있지만, 그 부스러진 조각들이 모두 나의 일부가 된 채 그대로 남아 있는 거야. 내 몸을 누군가가 여덟 조각으로 나누어 보면 각 조각마다 개별의 아픔이 있을 거야. 피자처럼 서로 다른 자리에 있지만 결국 하나의 원형을 이루듯, 나도 그 모든 것이 모여 나를 완성한다는 말이야.


 괜찮을까, 오늘이 지나면. 어디에 물집이 잡혀 있으려나. 푹 퍼진 몸을 모로 눕혀 몸을 마디마디 나누어보면서, 조각난 몸에 대해 생각하곤 했어. 오늘은 또 다른 조각이 어디에서 부스러질지 궁금했어.


어제는 발뒤꿈치였지. 퉁퉁 부어 생긴 작은 구멍. 그곳은 내가 자주 무시해 온 부분이야. 몸에서 제일 소홀하게 여겨지던 곳에 생긴 균열은 그 소홀함을 비웃듯 깊어졌어. 그렇다면 오늘은 어디일까. 나는 손목을 만지작거렸어. 손목이었을까? 아니면 손바닥? 어쩌면 속이었을지도 몰라. 속였을지도 모른다고. 보이지 않는 곳에 물집이 잡힌다는 생각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지.


 나는 정말로 조각난 걸까.

누군가는 완전한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나는 매일매일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어. 그런데, 페퍼로니를 본 순간 알아버린 거야. 조각 속에도 원형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조금 안도감을 느꼈어. 내 안의 파편은 나를 떠나지 않았구나. 하나의 완전함을 꿈꾸지 않기로 했어.


 부서지는 건 여전히 아프지만, 동시에 갖는 새로운 가능성. 내일은 또 어디에서 물집이 생길지 모르겠어. 하지만 그 이야기는 하나의 이름 아래 하나로 이어지게 되겠지. 조각난 나의 일부는 우글거리며 살아가.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여러 갈래로 조각났고, 그것이 나야.


그리고 언젠가, 나의 모든 조각들이 하나로 모일 때, 나는 그 순간 빛처럼 흩어지며 새로운 세계의 일부가 될지도 몰라.



* 김금희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이전 02화 사라지는 몸, 피어나는 천장 속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