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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Sep 23. 2024

현실과 환상이 어디까지 겹치는지에 대한


결아, 잘 지냈어?


 오전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이용 시간 준수. 야생동물들에게 쉼을 줄 시간을 배려해 주세요.  


입구에 적힌 문구가 이상하게 마음에 걸려서 발걸음을 잠시 멈췄어. 결이, 너도 이런 곳에서 살아가겠지? 우리 같은 이들이 쉼을 가질 시간은 언제쯤일까, 그 생각에 킥보드 자전거 출입 금지라는 표지판을 지나쳐 천천히 걸어왔어. 네가 그랬잖아. 흙을 밟으면 잠시나마 우리가 세상에서 멀어진 기분이 든다고. 그 말이 어쩌다가 떠오른 건지는 몰라도 그때부터 신발을 품에 안고 걷기 시작한 거야.


 우리 즐겨하던 그 자동차 게임, 기억나? 오랜만에 해봤는데, 오류가 나버려서 탈락한 자동차를 밟고 지나갈 수 있는 거야. 너무 비윤리적이잖아, 그렇지 않니? 사람들은 왜 이렇게 쉽게 잔인해질까? 마음이 불편했어. 결아, 세상은 정말 이상해지고 있어. 그런데 나한테도 인간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사실은 결아, 9시가 되자마자 바닥 색이 변하는 거야. 원래는 황토색이던 바닥이 점점 검게 변했어. 처음엔 별생각 없이 걷고 있었는데 마치 구멍에 빠져드는 느낌이었어. 어느 순간에는 정말 구멍에 빠질 것만 같았어. 내가 네가 빠진 그 구멍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네가 그때 어디로 갔는지, 그 구멍이 혹시 너를 데려간 건 아닐까. 네가 어느 구멍에 빠져든 건지, 나도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널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나도 그 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왜 대답은 안 해? 결이, 넌 늘 내 말을 듣기만 했잖아. 그런데, 오늘은 네가 계속 내 팔을 간지럽히는 것 같아. 네가 나를 계속 건드리는 거지? 분명 네 목소린 들리지 않는데, 네가 내 곁에 있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이 기분은 정말 묘해.


 그래서 한 발을 길게 뻗어봤어. 그 순간, 내 발끝에 뭔가 닿는 느낌이 들었어. 부드럽게 뭔가가 나를 쓸고 지나갔어. 네가 맞니? 네가 내 발에 닿은 거야? 네가 다시 내 곁에 있는 걸까. 이렇게나 오래된 시간이 지났는데도 네가 나를 데리고 가고 있는 거지? 이건 단순한 생각일까? 아니면 네가 진짜 여기 있는 걸까?


 결아, 신기해. 네가 내 마음을 읽고 있는 거야?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네가 여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난 더는 두렵지 않아. 우리가 헤어진 곳에서부터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말이야.


결아, 너 내 마음을 읽는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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