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사이로 아이스크림이 흘러내리는 걸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있었다. 겨우 선풍기의 미풍에도 불안정하게 미끄러지는 모습. 그걸 한참 동안 입에 머금은 채로 삼키지 못했던 건, 어린 날의 기억이 다시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죽이 해질 대로 해져서 빛바랜 누런 천이 빼꼼 보이는 갈색 소파 끄트머리에 앉아 있었다. 뻐꾹. 뻐꾹. 정각이면 울려대는 거실시계를 노려보면서 말이다. 아이는 오늘이 모두 지나려면 몇 번이나 더 울음소리를 들어야 하는 걸지 생각하며 손가락을 접기 시작했다. 열 개를 전부 오므리고도 아직 셀 게 남았다는 걸 알았을 때, 더 세는 걸 그만두었다.
열 세 가구가 한 층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복도식 아파트에 살던 아이는, 다른 집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양말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뛰어갔다. 철문에 볼을 가져다 댔다. 차가웠다. 문이 닫히기 전까지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문틈 너머로 왁자지껄한 대화소리가 들렸다.
아이의 집만큼은 고요했다. 덕분에 이따금 울리는 냉장고의 작동 소리가 귀를 찌르는 것 같았다. “생일 축하해.”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이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케이크 상자가 냉동실에 있었다. 아마 냉장고는 그것의 모양을 처음처럼 유지하고자 그렇게 윙윙 숨바삐 움직였을 거다.
아이의 엄마는 집을 나서는 길에 목소리에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혼자라도 오늘 꼭 케이크 먹어야 해. 생일 지나서 챙기는 거 아니야. 할 수 있지?” 엄마 말을 듣고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 기억이 있기 때문에,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의자를 부엌까지 질질 끌고 갔다.
찬장에서 이가 나간 하얀 그릇 두 개를 꺼내어 다시 소파에 앉았다. 하나는 팔걸이 부분에 올려두고 하나는 손에 든 채로 먹기 시작했다. 몇 숟가락을 뜨지 않았는데도 케이크 가장자리의 선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던 거다. 나머지 접시는 손도 대지 않았는데도 이미 서서히 녹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 맛에 신이 나서 숟가락을 들던 아이는 이내 무릎을 끌어안고 생각했다. 초코도 치즈도 생크림도 아니고 하고 많은 것 중 엄마는 왜 하필 녹아버리는 걸 가져왔을까. 아이는 벌떡 일어나서 다시 냉동고 문을 열었다. 여전히 붙어 있었다.
- 생일 축하해.
메모지를 상자로부터 조심스럽게 떼내었다. 양손으로 잘게, 잘게 찢어서 한입에 털어 넣었다. 달고 쓰고 짭짤하다. 오물거리고 있었다. 몹시 오랫동안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