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묶인 발자국들은 하나같이 사랑스럽고 귀엽다. 좋은 목화솜을 넣고 만들었다는 상큼한 눈코입을 가진 인형. 아이는 매일 같이 인형을 물고 빨고 바닥을 질질 끌고 다니기도 하면서, 매일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옹알이를 전부 알아듣고, 언제나 함께 아이의 세계를 보살펴주는, 그건 완벽한 친구에 대한 꿈이다. 불완전함은 때때로 완벽을 꿈꾸게 만들어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형은 아이의 어머니가 임신 중일 때, 아버지가 구입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퇴근길에 인형을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했지만, 어머니는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너무 이른 거 아니야?' 아버지는 대답 대신 장난스럽게 인형을 흔들며 웃었고,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인형은 아기의 곁에서 늘 함께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인형을 처음 만나던 날, 아직 말도 못 하던 아이의 작은 손가락이 인형의 부드러운 손을 움켜쥐었다. 아이와 인형 사이의 악수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처럼 익숙했다. 아이는 그날 밤부터 인형을 꼭 안고 잠들었다. 부모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고, 인형은 그렇게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형은 아이의 일부처럼 여겨졌다. 밥을 먹을 때도, 목욕을 할 때도, 심지어 병원에 가는 날도 아이는 인형을 꼭 쥐고 있었다. 부모는 세탁기에 인형을 넣을 때마다 내심 걱정이 되었다. 아이가 자주 들고 다니는 만큼 더럽혀지기 쉬웠고, 그래서 세탁을 자주 하면 언젠가는 닳게 될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다행히도 인형은 매번 깨끗해졌고, 아이는 인형을 꺼내면 다시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형도 그 역할을 서서히 내려놓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인형 회사는 새로운 디자인의 인형을 출시했고, 부모들 사이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아이는 친구들이 손에 든 새 인형에 매료되었다. [NEW!]라는 붉은 글씨가 쓰인 박스 안에서 아이는 자신의 새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오래된 인형은 서서히 자리를 잃어갔다.
아이가 더 이상 인형을 안고 잠에 들지 않는 나이가 되었을 때, 짐정리를 하려고 버릴 옷을 추리던 중 우연히 그 인형을 마주한다. 일회용 비닐봉지에 팔다리가 몸통에 밀착한 상태로 구겨지고 접혀서 공기까지 거의 빠져나간 듯했다. 그 상태로 계절옷을 담아두는 상자 안 깊숙한 곳에서 간신히 본인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었다. 플라스틱 눈의 이음새가 되던 천은 헐거워진 채로, 작은 공처럼 뭉쳐있는 솜들이 비치듯이 보였다.
낡고 해진 인형은 이제 더 이상 그때의 인형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 인형을 조심스럽게 들어 코에 가져다 댔다. 조금 쿰쿰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분명 따듯했다. 어딘가 지난 시간의 흔적이 남은 그 인형에서, 한때 자신이 품었던 온기가 느껴졌다. 아이는 오래된 인형을 다시 상자 안에 넣지 않았다. 여기 묶인 발자국들은 하나같이 사랑받고 귀여움을 받던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