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경영하는 금강경season4(23.구경무아분11)

자신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일체법이자 불법(佛法)을 성취하는 것이다.

by 하이붓다 지공선사

수보리 소언 일체법자 즉비일체법 시고 명일체법

(須菩提 所言 一切法者 卽非一切法 是故 名一切法)


수보리야, 말한 바 일체법이란 곧 일체법이 아님일세, 그러므로 일체법이라 이름하니라


일체법이 불법이라고 하니까, 또 이 세계에 있는 존재 그대로가 진리이고 법이고 부처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의 자기에 안주한다. 스스로 부처라고 위로하지만 그런데 무슨 부처가 이렇게 밖에 하지 못하나?


'나는 중생이니 중생으로 살아가련다'는 것도 불법(佛法)이고, '나는 부처이니 부처로 살아가련다'하는 것도 불법이다.


불법은 모든 존재의 그 본체(本體)와 상(相), 그리고 상(相)의 활용(用)에 의해 펼쳐진 세계에 대해 사실을 가르쳐준다. 이른바 일체법인 것이다. 그래서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인간의 인식차원이 높아지면 모두 저절로 불자(佛者)가 되게 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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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모든 존재의 상(相)과 그 상(相)의 활용에 의해 펼쳐진 세계가 고통을 초래하고 생명을 훼손시키며 파괴되고 있으니 그냥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서 올바른 상(相)을 정립하고 나아가 각자의 본체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불법의 크나큰 한 축이 되어 있다.


불법은 부처라고 일단 임시로 이름 붙인 자기의 본체로서 순도 100% 존재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또한 바람직한 것은 고통이 없고 두루두루 자기에게도 좋고 타인에게도 좋은 것이 부처로 존재하는 것이지 않은가? 중생으로 존재하면 자타에 고통을 초래하게 되니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된다.


그래서 자비를 지혜로 펼치며 갖가지 방편을 활용하는 것 아닌가?


일체법이 불법이라고 하니 일체법에 또 집착을 내는 경우가 생긴다. 일체법을 꼭 성취해야지 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불법은 일체법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체법에 집착하는 자기 자신을 처리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오폐수(汚廢水) 여과장치에 넣어 더러움을 하나하나 씻어내는 것이 곧 일체법이자 불법을 성취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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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기 자신은 상(相)으로 존재하며 망념(妄念)덩어리이기 때문에, 상(相)이 가지는 어떠한 생각도 망념이 된다. 마치 꿈에서 아무리 자기가 여러 황홀한 모습으로 변해 있더라도 꿈을 깨고 나면 사라지는 것과 같다.


일체법이 곧 불법이고, 그 일체법은 자기 자신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름만 일체법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중생인지라 일체법을 성취하겠다는 집착과 망념은 일단 괜찮은 망념에 속한다. 그래서 그것을 꼭 이루라고 격려도 하는데, 그래도 나 자신을 떼어놓고 생각하면 항상 어긋나서 만년이 지나도 성취하지 못한다.


이 구절은 불법은 일체법 가운데 부처가 되는 법, 즉 진여법(眞如法)을 근본으로 삼고 있는 일체법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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