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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공선사 Jul 01. 2024

나를 경영하는 금강경season5(20.정심행선분1)

"그렇습니다", 여래시여. 저는 당신과 평등한 존재입니다.

부차 수보리 시법 평등 무유고하 시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

(復次 須菩提 是法 平等 無有高下 是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


또한 수보리야,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음이라. 이를 이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하느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法)이 위로는 모든 부처에 이르고 가운데는 그대와 일체인간과 아래로는 초목곤충에 이르기까지 진정으로 다름이 없어 완벽하게 똑같다는 것을 완전히 확신하고 있는가?


그러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대는 진정 여래(如來) 비슷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각에 일차적으로 포착되는 것은 일체 차별상(差別相)이고, 또 인간사회 질서가 아무리 민주주의 시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높고 낮음으로 질서를 이루고 있으며,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들을 지배하고 있고, 나아가 신앙에서 우리는 부처를 모시고 기도하며 늘 우러러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대와 여래가 지혜가 똑같다고 진정 확신할 수 있는가? 당장 중생심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기껏해야 그렇다고 성인(聖人)들로부터 듣고 배웠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또한 인간의 오만이 극대화가 되어 있는 시대라, 어떤 때는 부처보다 더 나은 것 같은 과대망상을 가지기도 한다. 깨달았다는 사람이 어찌 신과 부처님을 자기보다 아래에 두는가?


상(相)은 평등할 수가 없다.


그래서 너와 내가 다름이 생기고 잘해봐야 그 다름과 차이를 존중할 뿐인 것이다. 평등하다고 해봐야 불완전한 상대적(相對的) 평등일 뿐이다.

그래서 공존(共存)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 양보와 타협이 필요하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싸울 수밖에 없고 인류역사가 갈등과 투쟁의 역사가 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개개인이나 사회전체가 늘 불안과 공포가 감돌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성(佛性)은 평등하다.


그냥 평등한 정도가 아니라 절대적이고 완전한 평등이다.


여기서는 공존이 아니다. 그냥 내가 상대이고 상대가 바로 나 자신이다. 둘이 하나고 하나가 곧 둘인 것이다.


그러니 싸울래도 싸울 상대도 없고, 얻으려고 해도 얻은 것이 없고, 주려고 해도 준 것도 없고, 설(說)하려고 해도 설한 법이 없고, 장엄(裝嚴)하려고 해도 장엄한 것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모든 것을 구족한 존재가 되면서 동시에 모두가 그렇게 되니 일체의 모든 인연으로부터 자유롭고, 인과로부터 벗어나게 되어 자유혼(自由魂)이 되는 것이다.

이른바 무위(無爲)와 무주(無住)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개개인의 마음에는 대상이 없는 깨끗함만 있을 뿐, 그 어떤 얼룩도 없게 되는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그 깨끗한 마음으로 선(善)을 행하니 선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이른바 내가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한 영향력의 완성인 것이다.


이때 개개의 모든 존재는 지극한 행복과 평화를 누리며 이렇게 될 때 불국토(佛國土)라고 한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천주님도 알라신도 부처님도 그 신도들도 모두 일체가 절대평등하니 종교 가지고 다툴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상(相)에서 자기 자신을 떠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곧 일체평등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되고, 이것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을 성취하는 것이 된다.


그러면 일체 차별상(差別相)은 나쁜 것인가?


본래 상(相)이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닌 중립적(中立的)인 것이다.


다만 그 상(相)을 용(用)하는 데 있어서 자타(自他)의 생명을 얼마나 이롭고 해롭게 하느냐에 따라 선(善)과 악(惡)과 무기(無記)가 나오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불성(佛性)의 차원에서는 그 어떤 타인도 심지어 자기 자신도 없애고 해칠 수 없으므로 당연히 선도 악도 아무것도 없다.

자기 자신의 상(相)을 잘 활용하여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잘 행하는 동시에 그 상(相)에 매여있어 나오는 자기 자신의 수많은 차별된 인식으로부터 잘 벗어나서 궁극적으로는 절대평등(絶對平等)의 차원까지 자기 자신을 드높이는 것이다.


절대평등의 차원까지 가야 비로소 자기가 자유자재(自由自在) 한 상태의 존재가 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法)이 높고 낮음이 없이 절대평등하여 인연(因緣)과 인과(因果)가 붙지 않으므로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게 되어 자연히 머무는 바 없는 그 마음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를 가르치고 구제하러 오신 대우주신(大宇宙神)인 여래께서 직접 동물의 몸으로 지내는 중생을 당신과 비교하여 절대로 높고 낮지 않아 평등하다고 하시니 감읍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가 그 보답을 할 차례다.


"그렇습니다. 여래시여. 저는 당신과 평등한 존재입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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