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경영하는 금강경 season2 (4.무득무설분4)

무위를 행한다는 것은 중도를 가는 것과 같은 뜻이다.

by 하이붓다 지공선사

소이자하 일체현성 개이무위법 이유차별

(所以者何 一切賢聖 皆以無爲法 而有差別)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일체 성인이 모두 무위법으로써 차별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여래의 모든 설법이 근본인 무위법에서 나와 설법대상에 따라 팔만사천법문으로 다양하게 차별을 두며 널리 퍼진 것이라. 따라서 여래의 모든 설법을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무위법을 증득(證得)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무위법이란 무엇인가?


무위(無爲)란 유위(有爲)에 상대되는 용어가 아니다.


무엇을 '한다' 또는 '하지 않는다', '함이 없이 한다' 등의 내용은 유위를 뜻하는 것이다.


무위란 행위 이전에 존재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이다.


이른바 나의 영혼이 여래의 불성과 완전히 계합한 상태에서 천지자연의 도를 따라서 마음을 순리대로 행(行)하는 것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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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무위를 행한다는 것은 곧 중도(中道)를 가는 것과 같은 뜻이 된다.


중도란 양변(兩邊)을 모두 버리고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높은 허공에서 외줄을 타는 것과 비슷한데, 양팔과 양다리로 균형을 잘 잡고 가슴속에 허공을 모두 품은 채로 무심하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그렇게 외줄을 탈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 가뿐하게 탄다.


이른바 존재와 행이 완전히 하나로 일치되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에는 내면의 스트레스가 완벽하게 제로가 된다.


그러니 무위를 행하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중도를 가면 얼마나 편안해지겠는가?


내 법문도 이와 같이 무위법에 근본을 두고 일체 차별상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 개체적인 욕망이나 두려움을 눈곱만큼이라도 가지고 있거나 상(相)이 있다면 무위를 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어느 한쪽을 취하면 곧바로 유위로 떨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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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쪽을 취하면 반드시 반대쪽을 또 취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면의 갈등이 끊임없이 생기고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렇게 이것을 하다가 저것을 하다가 왔다 갔다 하다가 마침내 힘이 다하면 쓰러지고 만다.


자기의 행이 그나마 무위에 가까워지려면 예를 들면 긍정적인 생각이든 부정적인 생각이든 양쪽을 모두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대범하고 무심하게 하는 것이다. 단, 그 행이 자기 자신의 안팎의 모든 것과 들어맞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개체의 욕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욕심을 부리는 것은 유위가 된다.


그럼 무위법으로써 차별을 두었다는 말씀은 무엇을 일컫는가?


우리가 모두 무위를 행한다고 한다면 또 모두의 무위행이 동일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전체성만을 생각하는 부분의식일 뿐이다.


무위법을 바탕에 두면 그제야 비로소 진정한 개체성이 발현된다.


즉, 마음껏 자기의 행을 걸림 없이 업장이 되지 않고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때 개체는 비로소 전체의 꽃을 다양하게 어우러지게 피우게 되고 전체는 이 모든 꽃의 자양분을 끊임없이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개체와 전체의 합일(合一) 상태인 것이다.


개체가 자기 욕망을 맘껏 실현한다고 전체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다. 자칫하다 업(業)만 짓는 것이다. 이런 것은 또 누가 가져가고 뺏고 뺏기게 된다. 왜냐하면 잠깐동안 개체의 소유물에 불과하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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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전체의 힘을 바탕으로 개체성을 발현시킨 것은 그 누구도 가져가거나 빼앗길 수 없고 줄 수도 없는 것이다.


이른바 일체 성인(聖人)이 무위법으로써 차별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여래가 설한 법은 취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법도 아니고 비법도 아닌 것이 되는 것이다.


참 어렵지요?


그런데 진짜 불가사의는 바로 내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이고, 우주의 가장 큰 기적은 내가 그렇게 된다는 사실이다.


여래와 그 설법의 뗏목을 잘 타고 가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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