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중천에 뜬 후에 촛불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더 이상 필요 없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하시되,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옛적에 연등불 회상에서 법에 얻은 것이 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연등불 회상에서 법에 실로 얻은 바가 없습니다.
연등불은 석가모니께 법을 설하고 수기(授記)를 한 석가모니불의 스승 되는 부처님이시다. 그런데 수보리존자는 석가모니불께서 연등불로부터 얻은 법을 얻은 것이 없다고 한다.
스승과 제자가 궁합이 척척 맞는 질문과 대답을 한다.
앞에서도 여러 번 그러셨지만 석가모니불께서 법이든 뭐든 뭘 얻은 것이 있느냐고 자꾸 질문하시는 이유는 수보리존자를 비롯한 제자들이 법을 얻었다는 마음이 있는 것을 염려해서 이런 의심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그럼 도대체 선지식(善知識)이라는 스승은 무엇인가?
법(法)은 스승으로부터 개시(開始)된다. 스승이 법을 펼쳐 보이면 제자는 그 법의 한 자락을 단단하게 붙잡고 자기 자신의 법신(法身)을 향하여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법의 힘으로 수많은 장애(자기 내면에 이미 자리 잡고 있어 자신이 스스로 일으키는 마장)를 뚫고 마침내 법신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항상 자기 밖의 대상을 향해 있거나 또는 자기 안을 향한다고 해도 한 꺼풀 벗기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자기 한계인 것이다.
그러고 나서 스승으로부터 받은 법의 한 자락을 놓게 되고 자기의 도(道)를 성취하는 것이다. 이때의 도는 스승의 도와 한치도 어긋남이 없고 모든 부처님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는 내면이 완벽하게 똑같지만 법을 펼치는 데 있어서는 각자 개성만점인 것이다.
그래서 스승으로부터 근본적으로는 얻은 바가 없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스승이 던져주는 법을 붙잡지 않고서는 되지 않는 법이다. 물론 엉터리법을 붙잡으면 신세 망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법을 얻어 자기의 법신을 찾았으면 그 법은 더 이상 자신에게 머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태양이 중천에 뜬 뒤에는 촛불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더 이상 필요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동굴의 어둠 속에 있을 때에는 아직 촛불이 필요한 법이다. 그것이 스승이 주고 제자가 받은 법이다. 태양은 주고받을 수가 없다. 이미 각자에게 본래부터 있기 때문이다. 본래 없다면 스승은 태양을 줄 것이다. 스승은 촛불을 들어 어둠 속의 태양을 보게 하는 것이다.
수보리존자를 비롯한 제자들이 그 촛불을 혹시 태양으로 착각할까 봐 자꾸 얻은 바는 진실로 없다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