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리존자의 아란나행은 영원한 열반에 들어있는 것을 뜻한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약 아라한도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세존께서는 곧 수보리는 아란나행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지 않으실 것이니와 수보리가 실로 행하는 바가 없으므로 수보리는 아란나행을 즐기는 자라고 이름하셨습니다.
아란나는 무쟁행(無諍行)이란 뜻이니 곧 다툼이 없는 행(行)을 뜻한다. 이는 곧 청정행이고 행하는 바가 없으므로 무위행이다.
세존께서 수보리존자를 아란나행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셨지만 즐긴다는 뜻은 우리처럼 고(苦)를 피하고 고에 상대되는 낙(樂)을 취한다는 뜻이 아니라 고와 낙의 상대성을 초월한 절대낙(絶對樂), 즉 영원한 행복 내지 열반에 들어있는 것을 뜻한다.
아라한도를 얻었다고 생각하면 왜 아란나행을 즐기는 자가 되지 못하는가?
아라한이 된 자기와 그 아라한도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자기가 나뉘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기 내면에서 미묘한 다툼이 생기게 된다. 얻은 것은 처음부터 없기 때문이다.
나도 내가 무엇이 되었다거나 또는 어떤 존재라는 생각이 없다. 그런 종류의 생각을 하고 싶어도 전혀 나지 않는다. 실제 별 특별한 사람도 아니니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과 완벽하게 똑같이 평범하게 보이니 나에게 시비를 걸 일이 없다. 수행한다는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가 그냥 별 것 아니네 하고 돌아간다. 그럼 나는 웃고 넘겨버린다. 그 외 뭐가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나의 그런 생각에 대항하는 반대 힘이 반드시 다가와 다툼이 일어나게 되어있다. 그것은 우주의 법칙인 것이다.
수보리존자의 아란나행이 무엇인가?
내가 무엇이라는 생각이 사라지니 그 반대가 사라지고 반대가 사라지니 다툼이 사라지고 다툼이 사라지니 다툼이 사라진 자리에서 저절로 낙(樂)이 나오게 된다. 그 낙은 바로 개체의식이 사라진 데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업이 되지 않고 원만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무소행(無所行)이다.
그런데 일상무상(一相無相)인지라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을 각각의 과정이나 단계에 따른 상(相)으로 생각한다면 이 또한 옆길로 새는 것이다.
단지 나 자신을 우주 한가운데 두고 나 자신의 본래면목에 얼마나 깊이 가까이 들어가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본래 무상(無相)이다.
동물 같이 지내던 우리가 우린 존재가 되게끔 인도하시는 세존의 위대함은 무어라고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냥 세세생생(世世生生) 감사드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