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이 있는 곳은 화장실도 부처님 집이 되고 지옥도 극락이 된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살이 불국토르 장엄하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고 그 이름이 장엄입니다.
장엄이 무엇인가?
예토(穢土, 더러운 국토 즉 사바세계)를 청정한 국토(佛土)로 바꾸는 것이다.
장엄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
1. 세간불토(世間佛土)를 장엄하는 것이다. 이것은 절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여 모시고 보시공양 등을 널리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환경을 잘 보전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2. 신불토(身佛土)를 장엄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과 귀신과 풀과 곤충을 비롯한 일체 존재를 부처로서 인식하며 평등하게 대하고 널리 서로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사회의 악을 멀리하고 선을 고취시키는 것이다.
3. 심불토(心佛土)를 장엄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각자의 마음을 부처님이 되도록 청정하게 가꾸어 가고 무주상보시를 행하는 것으로서 자성불(自性佛)을 장엄하는 것인데, 형상이 없는 불심으로 이루어진 정토이다.
어떤 장엄이 더 값어치가 있고 귀하다고 생각하는가?
사실은 세 가지 모두가 다 필요하므로 세 가지 모두를 잘 장엄해가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는 그 본체(本體)가 있고 겉으로 드러난 상(相)이 있으며 이것을 활용하여 살아가는 용(用)이 있고 또 모든 존재들의 집합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心) 장엄과 신(身) 장엄과 세간(世間) 장엄 모두 각자의 차원에 대응하여 잘 장엄해가야 한다.
근래에는 세간(世間) 장엄에만 지나치게 마음을 쏟아붓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나 신(身) 장엄과 심(心) 장엄이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되면 세간장엄이 오히려 세상에 부담을 주고 해를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아주 좋은 터에 화려하게 불사를 해서 절을 멋있게 잘 지어놓았지만 정작 그런 절을 제대로 감당해서 세 가지 차원의 장엄을 올바로 할만한 스님이 별로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면 보살은 불국토를 어떻게 장엄하는가?
보살이 있는 곳은 화장실도 부처님 집이 되고 지옥도 극락이 된다. 이렇게 보살은 존재 그 자체로 있는 처소를 저절로 장엄하게 되니 이른바 무공용(無功用)의 장엄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내면을 부처님이 되도록 잘 가꾸어 가면서 나를 비롯한 모든 존재를 공경하고 자연과 조화를 잘 이루며 절 살림살이는 물론 그 신도들을 지극히 편안하게 잘 살도록 해주는 것이 스님이 바로 불국토를 잘 장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은 자기가 보살이 되었을 때 해당되는 것이지, 지금 중생의 내면으로 살면서 '내가 있는 곳이 곧 불국토'라고 외쳐 봐야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스님을 많이 봤다. 이런 중생의 마음이 멸(滅)한 곳이 바로 불국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