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말에서 시작한 말은 위대한 법문이 되고..
그때에 장로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에 옷을 벗어메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으며 합장하고 공경히 부처님께 사뢰었다.
석가모니불께서 자리에 앉으신 후 해공제일 수보리 존자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까지의 짧은 순간에 흘렀던 고요한 침묵을 느끼는가?
그때가 바로 일체 부처님과 하늘과 땅과 1,250인의 제자들과 모든 생명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수보리 존자가 그 침묵 속에서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 뒤 이어지는 행위들과 더불어 자기 존재 전체로 법(法)을 청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보리 존자를 비롯한 1,250인의 비구들과 대비구들과 사생들은 법문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자기 존재를 변형시킨다.
우리는 머릿속의 질문을 떠올린 후 생각으로만 법을 청한다.
우리는 부처님에게 머리를 내밀고 머리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에 법을 듣고도 머리만 무거워지고 자기 존재 전체는 변형을 가져오지 못한다.
말 없는 말에서 시작한 말은 위대한 법문(法門)이 되지만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말로 시작하는 법문은 중생의 허튼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팔만사천법문을 한여름 장맛비 퍼붓듯이 내뱉어도 말이다.
부처님의 법문과 수보리존자의 질문은 이렇듯 말 없는 말과 육성으로서의 말이 하나가 되어 자유자재롭게 존재들 사이를 휘저으며 이 지구상에서 부처들을 탄생시킨다.
이 당시의 석가모니불 제자들은 인류역사상 가장 축복받은 존재들이다.
수보리 존자의 법을 청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끝나고 드디어 육성(肉聲)이 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