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덩어리가 없으면 화내는 것은 방편일 뿐이다.
세존이시어, 선남자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오니 응당 어떻게 머무르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으오리까
선남자선여인은 누구를 일컬음인가?
여기서 선(善)이라고 하는 것은 악(惡)에 상대하는 상대법으로서의 선이 아니라 선악을 초월한 절대법으로서의 선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본래 절대선에 의해 출생하였건만 현상의 선악에 대한 관념에 매여 고(苦)를 일으키고 있으니 선남자선여인은 우리 본래의 마음 차원, 즉 공(空)에서 우리 모두를 일컫는 것이다.
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천하의 악인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기만 하면 그 순간 선남자선여인이 되는 것이니.. 하물며 보통의 선인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란 불심, 해탈심, 청정심, 열반묘심, 부동심, 평등심 등등을 일컫는 말이다. 즉 한마디로 최상의 깨달은 마음이란 뜻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다는 것은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에서 표현하듯이 미각(未覺)으로 지내다가 드디어 본각(本覺)에 의지하여 시각(始覺)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화엄경에 나오는 표현인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란 표현도 초발심을 가진 순간 왜 바른 깨달음이 되느냐 하면 초발심이 바로 본각과 이어지고 있어 그것에 의지하여 나오기 때문이다. 이른바 시각이 곧 본각의 성품인 것이다.
그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 어떻게 머물며 중생심은 어떻게 항복받아야 하는가?
수행이나 또는 도(道)를 가는 이들에게는 마음자리가 늘 불심에 머물고 있으며 또한 모든 생명들의 중생심을 능히 섭수해야 하는데..
그러니 자기는 중생심에 머물지 않으면서 그렇게 하려면 중생심을 항복받아 불심이 작용하는 데 있어서 방편으로 삼아야 되지 않겠는가?
대선사는 마음덩어리 자체가 없으므로 응당 화가 나지 않게 되어 있지만 방편으로 화를 내는 것과 같다.
기독교는 다른 존재 또는 자기 안의 사탄과 싸워 이겨서 승리하고 항복받아야 된다고 하는데, 불교는 사탄과 싸워 이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조차 통째로 항복받는 것을 가르친다. 싸우는 자기가 아직 남아 있는 탓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영원하고 적멸한 평화를 이루기가 어려운데, 자기 자신을 항복받으면 모든 것을 승리한다는 간단한 이치를 가르쳐 주지 않고 있다. 이러한 종교에 대하여 불자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냈다면 응당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
수보리 존자는 이렇게 되기 위해서 어떻게(운하: 云何)라는 말로 법문을 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