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욕바라밀은 중생심이 생기는 마음덩어리 자체를 소멸시켜 버리는 것이다.
수보리야, 인욕바라밀도 여래가 설하되 인욕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이니라
여래가 앞에서 언제 인욕바라밀을 설한 적이 있던가? 없는데, 갑자기 인욕바라밀을 말씀을 꺼내신다.
인욕(忍辱)은 참는 것이니 참는 대상인 고(苦)를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늘 고통 속에 있었다는 뜻이 된다.
여래는 이 땅에 오셔서 출가 후 온몸으로 늘 인욕바라밀을 설하고 계셨다. 사는 방식 자체가 몸의 괴로움을 요구하는 것이니 당연히 인욕은 그동안 저절로 해 오신 것이다.
그런 제자들은 어떤가?
평생 석가모니불을 따라다니다 보니 길거리에서 모기에 물리면서 자고 눈뜨면 빌어먹고 먼 길을 걸어 다니고 틈틈이 명상을 하고 했으니 고통에 따른 인욕이 저절로 되게 되어 있다. 그런 고통을 참지 못하면 석가모니불과 같이 할 수 없던 것이다. 어린 라훌라 존자가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 스승인 사리불존자가 잘 붙들고 있었으니 불평하지 않고 고통을 견디면서 마침내 성불(成佛)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불이 갑자기 인욕바라밀 말씀을 쑥 꺼내도 제자들 모두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었으니 이 설법을 신해수지(信解受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욕은 욕됨을 참는다는 뜻인데, 꼭 욕됨을 참는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두루두루 참는다는 것이다.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바로 자기가 모욕을 당해 분노하게 되는 것이니 참는 대표로 욕(辱)을 내세워 인욕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럼 인욕바라밀은 무엇인가?
나에게 고통을 주고 나를 화나게 하고 나를 실망하게 만들고 하는 것들이 무엇인가?
모두 나를 둘러싼 인적(人的), 물적(物的), 영적(靈的) 환경에서 오는 것 아닌가? 한마디로 통칭하면 삼계유심(三界唯心)이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니 중생의 세계로부터 나 자신에게 오는 중생심(衆生心)인 것이다.
또 그로 인해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온갖 고통과 분노 등의 감정과 의식은 나의 중생심이 아닌가?
그것을 참는다는 것은 중생심에 의해서 나에게 일어나는 그 중생심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억누르는 것이다. 중생심이 힘을 발휘하면 그 마음에 나 자신이 휘둘려 나는 중생의 세계에 영원히 소속하게 되니까.
중생심을 억누르고 참으면 무슨 현상이 생기는가?
참기 위해 힘을 내게 되면 참는 힘이 생기고 커진다. 대신 크나큰 스트레스로 자기 자신이 크게 손상되게 된다. 이른바 단순히 인욕 하는 것의 한계인 것이다.
바라밀(波羅蜜)은 무엇인가?
피안(彼岸)이라는 뜻이니 바로 근본 실상으로 존재하는 세계인 부처님의 세계 이름이니, 나 자신도 비록 사상(四相)을 가지고 이 사바세계에 존재하지만 나의 본신(本身)은 사실 바라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다. 이른바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 내 영혼의 고향이고 내 본래면목이다.
이것을 종합하면 인욕바라밀이란 이 세계에서 나에게 오는 중생심을 활용하여 그로 인해 나 자신의 중생심을 참고 거기서 생기는 큰 힘으로 나 자신의 상(相)을 가루로 갈아서 닦아내고 깨뜨리고 하여 마침내 내 본래면목으로 나아가는 무시무시한 수행을 말하는 것이다. 이른바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마침내 중생심이 생기고 사라지고 하는 마음 덩어리 자체를 소멸시켜 버리는 것이다. 화를 참고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화 자체가 나지 않아 적멸(寂滅)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상(相)을 떠나 적멸의 세계로 들어가는 나 자신을 만드는 이 설법 부분에서 인욕바라밀의 수행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인욕은 단순히 나 자신과 그 대상의 상(相)을 다루는 것이므로 세 번까지 참는 것은 가상하지만 한계를 넘어서면 스트레스가 극심해지고 화병(火病) 등 각종 병에 걸리거나 해서 죽게 된다. 반대로 참다가 폭발하면 화산폭발이 되어 자타(自他) 모두 신세망치게 되기 쉽다.
인욕바라밀은 나 자신의 본래면목으로 들어가면서 그 걸림돌이 되어 있는 나 자신의 상(相)을 아예 지워가는 것이다. 그래서 인욕바라밀 수행의 한계나 부작용은 전혀 없다. 오히려 수행이 진행될수록 행복이 점점 나온다.
그래서 인욕바라밀을 하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향상일로(向上一路)를 가는데 타인의 중생심이 큰 도움이 되므로 오히려 자신에게 고마운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일체의 고(苦)와 마장(魔障), 악인(惡人) 등을 비롯하여 모든 것이 나에게 부처가 되게끔 하는 수행이 이른바 인욕바라밀인 것이다.
상·중·하 근기(根機)를 나누는 기준은 이 인욕바라밀을 얼마나 해낼 수 있는가가 결정적이다.
고(苦)를 주체적으로 행(行)하는 이 인욕바라밀을 고행인욕(苦行忍辱)이라고 한다.
이 사바세계를 졸업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필수 전공과목이다. 이것을 해내면 부처를 비롯한 성인(聖人)과 과(果)를 이루게 되고 이것을 못해내면 어지럽게 돌고 돈다.
그런데 이런 인욕바라밀이 아니라고 또 말씀하신다. 그냥 이름일 뿐이라고 하신다.
왜 그런가?
인욕바라밀을 자기가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인해 잘 닦여져 가는 자기 자신에게 더욱 강한 집착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욕바라밀을 한다고 하는 자랑스러운 의식이 또 다른 더욱 강한 아상(我相)을 만들어 마침내 구제불능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참는 경계에 있는 마음을 자기가 보고 있으면 이 함정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바라밀이 그래서 쉽지는 않다.
도(道)가 약간 높아진 스님들이 잘 닦여진 자기 자신에게 더욱 집착하여 그에 걸맞는 자리나 명예나 신도나 돈을 더 많이 원하게 되는 이유이다.
인욕바라밀을 죽을 때까지 잘하면 최소한 내생(來生)에는 반드시 성불한다. 금생에 성불하는 분의 전생을 살펴보면 고행인욕 하나로 전생의 삶을 요약할 수 있다.
성불을 원하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 대우주에는 공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