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떤 공간일까요?
멘티를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한다.
이 아이는, 내가 서울런 멘토로 선정되고 맡은 첫 멘티였다.
그렇기에 꽤 설레어 하면서, 기대를 하기도 하고 긴장도 하기도 하면서 첫 멘토링을 하러 갔었다.
고등학생이었다. 작년에 휴학을 했다고 하였다. 교과 학습을 한지 꽤 지나 교과 내용 중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하였다. 내가 준비해 간 중학교 문제 중 아이는 그 어느 것도 풀어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우선 기초 개념서를 함께 보기로 하였다.
아이는 학습에 대한 의욕이 없었다. 적어도 멘토링을 할 때에는 종종 미소를 짓기도 하고, 꽤나 밝은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았는데. 그것만이 아이가 지닌 감정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몇 마디의 대화를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매 시간 아이를 설득했다. 아이가 공부하는 법을 모르는 아이는 아니었기에, 내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아이에게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 아이 설득에 꽤나 성공한 것 같았다. 멘토링 시간이 끝나고, 아이에게 처음으로 학습 관련 질문이 왔다. 꽤나 기뻤다. 적어도 아이의 무언가를 내가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은 꽤나 기쁜 일이었기에.
어떤 날은 멘티 어머님과 상담을 했다. 아이는 과제를 매주 해온다고(나는 이 당시 멘티의 학습 시간이 아예 없어서, 학습 시간을 기준으로 과제를 내주고 있었다.), 하였었는데 어머님은 그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아이가 집에서 하는 일은 핸드폰과 누워있는 것 외에는 없다고. 아.. 나는 어머님께 멘티와 다시 이야기를 하여보겠다고 한 후 상담을 마쳤다.
그렇게 상담이 끝나고 난 후 다음 멘토링 시간이었다. 멘토링을 하러 스터디 카페에 가던 도중 어머님께 문자가 왔다. 상담 내용을 전부 멘티에게 말하였다고. 아, 어머니...! 멘티가 멘토링 장소로 향하였다고도 함께 전달해 주셨었는데, 약속시간이 되어도 멘티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갑작스레 멘티에게, 오늘 멘토링은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연락이 왔다. 멘티에게 전화통화를 시도해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어머님께 연락을 드렸다. 그리고 그날 멘티는 20분이 넘게 지나서야 멘토링 장소에 도착하였다. 아이의 얼굴에 운 자국이 있었다. 빠알갛게.
장기간의 무기력증과 우울감, 슬럼프가 있는 아이였다. 초반 멘토링 시작 이전에도 관련 내용을 전달받았다. 허나, 몇 년에 걸친 아이의 마음 공백은 겨우 몇 마디의 낯선 이의 위로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간과했다. 이제와서 비록 변명이지만, 당시 멘티의 어머님은 아이가 다시 학습해 나갈 수 있기를 바라셨고, 서울런 지침 또한 그러했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이 당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고등학생이라면 응당 학습을 해야 한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아이와 나의 멘토링은 이날 이전과 이후로 많이 달라졌다. 아이는 더 이상 내 앞에서 무언가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감정을 서슴없이 그렇게 다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때로는 자신의 주변 환경에 대한 불만들. 그리고 자신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 아이는 정말 극단적일 때는 자신이 삶에 대해 아무런 미련이 없다고도 이야기하면서, 때론 자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은, 이음단 선생님께서 방문하셨고, 그날따라 멘티도 다소 늦게 도착했다. 그리고 멘티의 얼굴 또한 우울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리고 인사말 뒤에 바로 이어진 멘티의 말은 ‘저 휴학했어요’ 였다.
아, 나도 이음단 선생님도 사실 많이 놀랐다. 멘티는 이미 1년을 휴학한 상태였기에. 그리고 고등학교 휴학을 쉽게 떠올리지는 못하였기에. 이음단 선생님께서는 몇 마디의 위로의 말을 건네고 곧 떠나셨다. 그리고 멘티는 그날 울었다. 그리고 아이는 울먹이면서, 이야기했다. 휴학이 온전히 자신의 의지만은 아니었음을.
멘티는 장기간 방황을 하고 있었고, 수업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하였다. 담임 선생님과의 관계 또한 원활하지 못했고, 때로는 반 친구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다 2학기 초입에 학부모 상담이 있었고, 거기서 휴학이 결정되었다는 것. 마지막에 멘티의 의사를 ‘간략히’ 물어본 후 바로 휴학이 결정되었다는 것. 이었다.
10대 후반의 아이. 그리고 한창 타인의 시선에 민감할 나이. 나 또한 그러하였다. 내가 그동안 아이의 무엇을 놓쳤던 것이었을까. 나는 아이를 잘 보고 있었던 것이 맞았을까? 아이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상당히 불만이 깊은 것 같았다.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또래가 가진 보편적 욕구와는 보다 거리가 먼 고민들이었다. 어쩌면, 자신이 방황하는 이유 조차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매주 멘토링 시간마다 멘티와 나는 멘티가 방황하는 이유를 찾아보았다. 멘티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내가 방황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였다. 때로는 조언을 해주기도 하였고, 너무 깊고 어두운 내면의 이야기가 나온 적 또한 있었다.
아이는 어두웠다. 아이에게 드리운 심연의 깊이를 차마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아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을 살아갈 때에 존재할 만한 이렇다 할 욕구가 없었다. 세상에 하고 싶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어느 날은 아이에게 버킷리스트를 적어보라 하였는데, 단 하나도 제대로 적어내지 못했다. 마치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이렇다 할 욕심도, 사소한 욕망도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그렇게 멘티가 휴학을 한 뒤로 몇 주가 흘렀다. 아이에게 나는 한 주에 있어 거의 유일하게 만나는 그나마 가까운 ‘또래’였다. 비록 나는 멘티보다 3살 정도 더 많기는 하였으나 한 주간 멘티가 교류하는 인간관계는 나를 제외하고 가족이 전부였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물론이고, 초, 중등학교 친구들과의 관계 또한 단절된 듯 했다.
아이와는 매주 늘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주를 어떻게 지내왔는지, 사소한 일상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보다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때로는 너무나 어두운 표정을 하고 와서, 이야기를 하다 보다 해소된 밝은 표정으로 나가기도 하였지만 그 다음 주에는 다시 어두운 표정을 가져오곤 했다. 몇 주간의 멘토링 시간에는 이러한 것들이 반복되었다.
어느 날은, 굉장히 밝은 표정을 지으며 멘토링 시간에 왔다. 그렇게 온 것이 상당히 오랜만이었기 때문에,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였다. 그 주는 며칠 간의 공휴일이 있었다. 가족들과 대화할 시간이 있어 보다 자신의 삶에 안정감을 느끼게 된 것일까? 아이는 그날 멘토링 시간에 그간의 고민이 어느 정도는 해소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아이의 밝은 표정은 그날 뿐 아니라, 그 이후로도 매주 볼 수 있었다. 적어도 그 이후로는 이전만큼의 깊고 어두운 표정을 보이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몇 번 진행되었던 어머님과의 상담 과정에서, 주변 가족 분들이 아이의 회복을 위해 힘쓰고 있으시다는 것이 느껴져서. 학교를 쉬고 가족과 함께 지내는 과정에서 회복이 되었을거라, 어렴풋이 짐작할 따름이었다.
어머님께서 언젠가의 상담 과정에서 멘티가 멘토링 시간을 달가워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나와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는 걸까? 아이는 언젠가 말했다. 어른들과 이야기 할 때에는 벽이 있는 것 같다고. 그렇기에,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할 사람이 그간 없었던 걸까. 주변 친구들과 거리낌 없이 말할 수는 없는 주제들이었기에 어쩌면 나와 멘티가 하였던 수많은 이야기들은 멘티가 세상을 향해 지은 마음의 벽을 허무는 과정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어머님께서도 멘티의 완전한 학습만을 바라시지는 않는다. 멘티의 어느 정도의 회복은 이러한 주변 환경의 변화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신년을 맞아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보자고 하였었는데, 아이는 그래도 이번에는, 작지만 소소한 몇 가지의 것들을 적어내었다. 비록 많은 양은 아니었다마는, 그래도 아이가 살아가면서 작게나마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겼음에 안도했다.
멘티가 완전히 회복한 것은 아니다. 이제는 올해가 되어버린 3월의 복학 문제, 앞으로의 진로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면, 아이는 여전히 회피하려 한다. 달갑지 않다는 것이 아이 표정에서부터 드러난다. 학습 의지 또한 여전히 보이지는 않는다.
아이가 같이 가 보고 싶다고 해서, 2월에는 친화활동 신청할 예정이다.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아이에게 부디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보다 조금은 누그러졌으면, 세상과 타협점을 찾아 잘 살아나갔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비록 더디게 나아가고는 있지만, 이 긴 슬럼프를 지나고서 아이가 더 나아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 시기가 언제가 될 지는 사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아이가 활짝 날아오를 날이 있으리라고. 숲과 맑은 하늘과 눈을 좋아하는 아이. 세속적 욕망과는 거리가 있는 아이. 그런 아이인 만큼 더 아름답게 피어날 날이 언젠가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