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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외로운 추정우

by 백수광부

[소설 : 핸섬 가이즈]


12. 외로운 추정우


초겨울이 왔다. 컴공의 1, 2위를 다투던 라이벌 구도는 시시해졌다. 진한의 독주가 이어졌다.


생업과 육아를 함께 해야 했던 정우는 학업까지 잘하기 쉽지 않았다. 아기가 어찌나 예민한지 밤에도 자주 깼고 낮에도 자주 칭얼거려 정우는 더욱 시래기처럼 말라갔다. 그런 정우에게 진한은 뜨끈한 감자탕 국물 같은 존재였다. 거기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시래기가 스르르 기지개를 켜며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났다.


둘은 동아리와 호프집을 함께 운영하면서 급격히 친해졌다. 자연스레 진한이 정우에게 말을 놓기 시작했다.


“형! 오늘 저녁은 감자탕에 소주 어때?”

“장사 안 하냐?”


“에이. 진오 있잖아. 오늘만.”


진한이 얘기하면 정우도 못 이기는 척 그의 뜻을 따랐다.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속내를 끄집어냈다.


“형, 나는 맏이라 그런지 형이 참 좋다.”

“그래? 나는 네가 형 같아. 진한이 형!”


“아, 왜 이러실까?”

“그래서 나 좋다고?”


“응. 우리 형, 참 좋아.”

“취했냐?”


진한은 고개를 숙이며 쑥스러움을 가다듬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형, 근데 나 궁금한 점이 있는데.”

“궁금하지 마.”


“어쩌다 벌써 유부남이 되었어?”

“유부남이라니?”


“애 있다며?”

“애만 있어.”


“뭐!”

“그 입 좀 다물었으면 좋겠는데.”


“형도 참. 사연이. 흠.”


진한은 더는 정우에게 묻지 않았다. 그저 정우의 술잔에 술을 채웠다. 정우는 속 깊고 적당한 선을 지킬 줄 아는 진한이 좋았다.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보이면서도 천진난만함을 잊지 않고 지내는 모습을 볼 때면 진한과의 우정이 계속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음 터놓고 얘기하고 마음속으로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사이 말이다.


진한과 정우는 전공 수업은 같이 들었지만 교양 수업은 따로 들었다. 진한은 ‘생활법률’을, 정우는 ‘경제학 이해’를 들었다. 수업을 마친 후 정우는 휴대폰을 쳐다보았다. 진한에게 점심 같이 먹자는 전화가 올 시간이었다. 하지만 문자 메시지만 도착했다.


“형, 나 약속 있어. 점심 맛있게 먹어.”


‘흥. 칫.’


정우는 옆구리가 시렸다. 찬 바람이 부는 날이라 더욱 그랬다. 추운 몸을 녹이기 위해서 학생회관으로 들어갔다. 잔치국수 한 그릇을 받아 들고 앉을 자리를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그때 진한을 발견했다. 그는 어떤 여학생 두 명과 마주 앉아 식사 중이었다. 한 명은 얼마 전 호프집에 왔던 진한의 고교 동창 지영이었다. 지영과 푸들같이 생긴 그녀가 진한과 환하게 웃으며 식사 중이었다.


‘뭐야? 저놈이 저리 밝았나?’


정우는 이유 모를 배신감이 들어서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진중한 진한이 그 여학생들 앞에서는 아주 가벼워 보였다. 솜털처럼, 깃털처럼, 솜사탕처럼 말이다.


‘믿을 놈 하나 없구나.’


정우는 국수 먹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한 젓가락 후루룩 빨아 당긴 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구석에 목표물이 보였다. 정우는 반쯤 먹다 만 국수 그릇을 챙겨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헤이~ 맨.”

“···.”


세종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대답이 없어 정우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세종 앞에서는 자존심을 더 내려놔도 된다고 생각했다.


“안 물어봐? 그 누나랑 SNS 연락이 닿았는지?”

“관심 없어요.”


“벌써 관심이 사라진 거야? 그땐 엄청 간절하더니.”

“근데 왜 자꾸 반말이에요?”


“내가 재수했거든.”

“그래서요?”


“나이가 너보단 많다는 얘기지.”

“혼자 먹고 싶은데, 다른 데로 가 줄래요?”


“아…. 그러지.”

“···.”


“시간 되면 호프집에 놀러 와.”

“···.”


정우는 진한에게 버림받고 세종에게 차였다.

오늘은 촉촉한 감자탕 속 시래기도, 오동통한 시래기 무침도 될 수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냉동실에 처박아두는 시래기 한 덩이가 되었다.

세종은 정우에게 그녀에 대해 관심이 없어졌다 했지만, 그날 이후 온종일 그녀 생각뿐이었다. 혹시나 그녀에게서 연락이 올까 봐 종일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벌써 열흘째였다. 기다림에 익숙한 세종이었지만 며칠째 초조함의 연속이었다. 그녀가 일하는 Bar로 찾아갈까도 생각했지만, 그녀도 자신이 궁금한지 그것이 궁금했다. 그래서 참기 힘들었지만, 그는 기다리고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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