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입니다.
잠시 스쳤지만 분명 파란색 가방에 노란색 열쇠고리였다. 방금 그녀들이 탔던 5층에서 고학년이 된 기념으로 남편과 아들이 사 온 그 가방이었다. 가방이 흔한 디자인이라며 아들이 좋아하는 피카추 열쇠고리를 내가 달아주었다. 그 가방이 그 여자들의 카톡 사진 속에 있었다.
심장의 ‘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1층에 ‘쿵’하고 멈췄다. 이내 문이 열렸다. 떨리는 마음으로 서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연결이 되었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당신 어디야?”
“흑흑흑. 엄마.”
심장이 또다시 ‘쿵’ 내려앉았다.
“너 어디야?”
다급하게 물었다.
“흑흑흑.”
“왜 울어? 너 어디냐고!”
서준이는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했다.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여자들 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웠다.
“저기, 아까 그 구급차 어디로 갔대요?”
“예?”
“아까 그 사고요!”
미친 여자처럼 그녀들을 다그쳤다.
“아, 아마 근처 병원으로 가지 않았을까요?”
나는 두리번거렸고 5분 거리의 한마음병원으로 달렸다. 맥박이 마구 뛰는데 산소는 공급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설마. 아니지?’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몇 번이나 툭툭 치고는 급하게 병원 응급실로 뛰어 들어갔다. 급하게 달려온 나를 보고 간호사는 눈짓했다. 시선이 머무는 그곳에 서준이가 있었다.
“서준아!”
“엄마. 흠흠. 왜 이제 와? 흠흠.”
서준이는 나한테 달려와 안겼다.
옆자리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자가 때마침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갔다. 그 자리에 거추장스러운 에코백을 던져놓고 아들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아빠는?”
아들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저 따라오세요.”
그녀는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그곳에는 흰 천으로 덮인 불길한 뭔가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의사가 겨우 나를 부축했다.
“김민우 씨 보호자 되시나요?”
아닐 수도 있었다. 흔한 이름이니 김민우가 남편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내 남편은 수술실에 있을 수도 있었다. 남편 김민우라면 죽지 않고 살기 위해 가족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이리 쉽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닐 거라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천을 열어 보았다. 아까 본 영화보다 더 끔찍했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 끔찍했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영화관에서 내가 당신을 수도 없이 죽이는 동안 이미 당신은 차디찬 길바닥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갔구나. 뭐 이리 급해? 평생 죽도록 미워하려고 했는데 그 시간도 주지 않고 이리 가면 나는 어떡해.’
나 역시 차디찬 병원 바닥으로 스르르 쓰러졌다. 눈물도 나지 않는 나에게 아들이 엄마를 부르며 울면서 뛰어왔다. 그 소리가 멀어지듯 사라졌다. 그날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10월의 산들바람이 울컥해진 내 얼굴을 식혀주었다. 벤치에 앉아 눈을 감았다. 캄캄한 시간 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갔다.
남편의 장례식장이었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대답 없는 사진 옆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동생 수진이 말을 붙였다.
“좀 들어가 쉬어. 여기는 내가 있을게.”
“난 괜찮아. 서준이나 좀 챙겨줘.”
“정 서방한테 챙기라고 했어.”
“정서방이 수고가 많네.”
“뭘. 마땅히 해야지. 모르는 사람도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데.”
의아해하는 내 표정을 보고 수진이가 말을 이어갔다.
“사고 난 날 우리한테 연락한 분. 언니는 못 봤어?”
수진이는 말을 이어갔다.
“서준이 데리고 병원에 있다고 하던데. 하긴, 언니가 무슨 정신이 있었겠어?”
“···.”
“소식 듣고 너무 놀라서 고맙다는 말도 못 했네.”
“···.”
“언니, 지금 얼굴이 너무 안 좋다. 방으로 들어가.”
수진이가 나를 억지로 장례식장 안쪽 방으로 밀어 넣었다. 불을 켜지도 않고 바닥에 누웠다. 옆으로 흐르는 눈물이 귓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울다 지쳐 잠이 스르르 들려고 하는 순간 밖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문틈을 타고 들어왔다.
“근데, 서준 엄마는 안 보이는 것 같네.”
“그래? 난 얼굴도 몰라. 반 모임에도 한 번을 안 왔잖아.”
서준이네 반대표 엄마랑 친구 엄마가 온 모양이었다.
“나도 사고 현장에서 처음 봤어. 얼마나 울었다고.”
“짠해서 어째.”
나는 그 현장에 없었는데 내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애 데리고 어디 여행 가려고 했는지 서준 엄마는 맞은편 대로변에 차 대놓고 기다렸나 보더라고. 사고 나고 바로 뛰쳐나왔어.”
“하이고. 인생 참 그렇다. 여행 날이 제삿날이 됐네.”
“하필이면 어찌나 화사한 흰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지···. 거기에 피가 흥건히 적셔지는 게 소설의 복선 같기도 하고 그렇더라고.”
‘피식’하고 헛웃음도 나고 머리는 더 멍해졌다.
남편의 그녀는 흰 원피스를 입고 있었나 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그녀였나 보다. 복선도 그녀가 깔고 있었다. 쓸쓸함과 허탈함에 더욱 허기진 느낌이었다.
“근데 서준 아빠는 빨간 불에 횡단보도를 건넌 거야?”
“초록 불로 바뀌자마자 교문 쪽으로 급하게 달려간 것 같아. 운전자가 신호를 못 봤는지 그대로 치었지. 그 소리가 얼마나 크게 났는지.”
당사자에게 묻지 못해 답답했던 그날의 일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당신은 왜 횡단보도를 건넌 거야? 서준이에게 간 거야?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그렇게 아빠는 사랑하는 아들과 영영 이별했다. 그리고 평생 잊히지 않을 모습으로 아들 머릿속에서 떠나지 못할 것 같았다.
“서준이가 충격이 크겠다. 눈앞에서 그런 일을 겪었으니.”
“늦기 전에 심리치료받으면 좋을 텐데···. 서준 엄마가 그거 챙길 정신이 있으려나.”
남편의 일로 힘들어야 할 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로서 할 숙제가 주어졌다. 또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다. 아들이 고통 속에 빠지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수일 내에 병원을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들이 아빠의 주검 옆에서 오열하던 그 여자의 정체에 관심이 생기기 전에, 아들의 귀에 그 울던 여자의 정체가 소문으로 떠돌기 전에 이 동네를 떠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눈을 번쩍 떠보니 산 중턱 벤치였다. 숨을 고르고 휴대폰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