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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Oct 03. 2024

#22. 슬플 땐 연락하지 마

*소설입니다.




역시 대리운전은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피곤한 몸에 맥주까지 마시니 몽롱해졌다. 마음 속으로 '정신집중'을 외치며 그와 바다를 걸었다. 내 외로움과 괴로움이 흘러넘치지 않도록 꽉 부여잡고 말이다.


바다에는 사이좋은 연인들이 몇몇 보였다. 머플러로 하나 되는 연인들 사이를 그와 나는 한 뼘 거리를 유지한 채 걷고 있었다.  


여기 앉자.”

너 취한 것 같아.”


“잠이 모자랐나 봐. 맥주 2캔에 이리 취하다니.”

“원래 피곤하면 금방 취해.”


바다 가운데 포토존으로 설치해 둔 벤치에 앉았다. 바다를 바라보며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말이야.”

“응.”


“오늘은 음. 하···.”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 있었어?”

“하늘의 별이 내려오는 날이야.”



아무 추임새도 넣을 수 없었다. 그의 환한 웃음 뒤에도 숨겨진 아픔이 있는 게 분명했다. 캄캄한 밤하늘 별로 채워진 프로필 사진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누구를 그리워하는지 궁금했지만 일단 기다렸다. 그가 촉촉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이 날이 되면 숨이 안 쉬어져.”

많이 힘들었겠네.”


“다 내 잘못 같아서 견디기가 힘들어. 하.”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나 역시 서준 아빠가 사고로 떠났을 때 그랬다.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와이프와 심하게 다투던 날, 아이에게 호흡곤란이 왔어. 원래 심장이 약한 아이였는데...”


나는 계속 듣고만 있었다.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의식이,..”

.”


“부모라는 사람들이  잔인했어. 애 그렇게 되는 줄도 모르고 싸움에 정신이 팔려서..”

“흠.”


어린 자식을 잃었을 때는 죽을 때까지 고통 속에서 본인을 괴롭힐 수 있는 게 부모였다.


“슬픔을 함께 위로하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부부의 끈도 느슨해지더라."

“그랬구나.”


"오히려 서로 생채기만 내게 되고, 결국은 헤어지게 되더라."


환한이의 결혼과 이혼까지의 과정을 듣게 되었다. 자식은 부부의 끈을 억지로라도 이어주는 힘이 있다. 자식을 잃으면 그 끈의 의미조차 무색해지는 경우를 나도 알 것 같았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너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평소에는 잘 버티다가 아이가 떠난 날이면 마음이 무너져 내려.


그를 쳐다보았다. 달빛에 반사되어 눈동자에 맺힌 눈물이 반짝였다.


‘이번에는 내가 네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토닥토닥' 그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섣불리 그의 몸에 손을 대지는 못했다. 안아주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질 못했다. 다만 그가 죄책감을 씻어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그냥 기다렸다. 기다리기만 했다.


환한이가 한참 후 감정을 추스르고 고개를 들었다.

“힘들 때 가끔 네 생각나더라.”

“연락하지 그랬어?”


"바뀐 전화번호를 모르기도 했었."

"그러네."


"그리고 우리. 아주 슬플 때는 연락 안 하기로 했잖아."

"하... 그랬지."


"출구를 찾지 못한 어두운 터널 속에 있는 같아.”

"너나 나나."


잠시 정적을 깨고 그가 나에게 말했다.

“바쁘면 좀 낫겠지?”


난 머릿속으로 그날의 일들을 적어 내려갔고 너는 다시 먼바다만 쳐다보았다.



 HH와의 이야기
 #7. 남녀 간의 진한 우정


"진짜 촌스럽기는..."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어. 한참 동아리 복학생 선배와 토론 중이었지. 주제는 여자와 남자가 순수하게 친구 사이가 될 수 있냐는 것이었어. 나는 가능하다, 선배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었지.  


"처음에는 너처럼 그렇게 말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달라질걸."

"그거야 하기 나름이죠."


"그게 쉽지 않다."

"전 쿨한 관계의 이성친구를 꼭 만들 거예요. 로망 같은 거 있거든요."


"로망? 풋! 결국은 다 사귀고 헤어지고 안 보고 그러더라."

"그거야. 어느 한쪽이 감정 컨트롤 못 하니 그런 거고요."


"감정이 마음먹은 대로 되냐?"

"전 할 수 있어요."


"훗! 어디 되나 보자."

"미리 선을 잘 지키자고 약속하면 되죠."


"남녀사이에 그런 게 통해?  마음 하나도 네 마음대로 안 될걸?"

"두고 보세요. 남녀 간의 진한 우정"


내가 진한 우정을 나누고픈 상대는 너였어. 죽을 때까지 너와의 우정이 변치 않을 자신이 있다며 각오를 다졌지. 어쩌면 너와의 우정이 다가올 누군가와의 사랑보다 더 소중할거라 생각했어.


너에게 다짐을 받아내기 위해 너를 찾아갔어.


"환한아. 우리 앞으로 각자에게 아주 슬픈 일이 생길 때는 만나지 말자."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이 약속은 꼭 지켜."

"근데 이유가 뭐야?"


"영원한 우리의 우정을 위해."

"무슨 소리인지... 슬플 때일수록 친구끼리 위로를 해줘야지."


"내 말이 맞아. 무조건 그렇게 해."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연락 안 해?"


"아니. 그런 건 하고."

"그것 외에 뭐 그다지 아주 슬픈 일이 있을까?"


"혹시라도 있으면 말이야. 함부로 연락하지 말라고."

"여하튼 엉뚱해."


그렇게 나는 너의 대답을 받아냈지.

 

내가 아주 슬픈 날에는
너에게 연락하지 않을게.
네가 내 옆에 있으면
네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울지도 몰라.
그러면 우리 우정에 금이 갈지도 몰라.

네가 아주 아픈 날에는
나에게 연락하지 말아 줘.
내가 네 옆에 있으면
너의 등을 감싸 안고 위로할지도 몰라.
그러면 나는 친구를 잃을지도 몰라.

우리 그렇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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