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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Oct 01. 2024

#21. 개꿀이었나 개똥이었나

*소설입니다.




큰 건물 지하 주차장에서 고객을 만났다. 그녀는 통화를 하면서 나에게 수신호를 했다. 나는 그녀의 차를 운전해 그녀 집 주차장에 주차를 해주었다. 차에서도 그녀의 통화는 계속되었다. 아마 오늘 아이 친구네와 집에서 송년 파티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때 나에게도 메시지가 왔다.


나 친구들과 놀다 갈 거야.

 

아들이 보낸 것이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이젠 가족과의 파티보다는 친구들과의 파티가 더 좋을 나이였다.


'파티도 없으니 대리나 뛰자.'


다른 장소로 이동할 것도 없이 그 아파트에서 콜이 바로 잡혔다. 사춘기 애랑 생활하다 보니 애들말이 입에 붙었다.


'오~ 개꿀!'


1시간 30분 거리, 4만 원짜리 콜이었다. 냅다 잡았다. 고객은 50대 초반 여성이었다. 수다스러운 그녀는 나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았다.    


"어쩌다 이 일을 하고 있어요?"


'어쩌다라니?'


당황은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다 먹고살려고 하는 거죠. 하다 보면 보람도 있고요."

"먹고살려고 하겠지. 미로 할 일은 아니지."


반말도 귀에 거슬렸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달리기만 했다.


"우리 동생이 새 아파트에 입주해서 왔다가 기분이 좋아 술을 마셔버렸지 뭐야."

"아, 예~"


"신랑은 뭐 ?"

"그냥 직장 다녀요."


죽었다고 하면 또 불쌍한 년이 될 것 같아 거짓말을 했다.


"신랑 벌이로 안 되나 보네. 얼마 번다고 위험하게 이 일을 해?"

"..."


대꾸를 안 하고 싶어 입을 다물었다.


"둑길 나오면 깨워요."

"네."


'그래, 잠이나 자라.'


기분 나쁜 대화를 적절하게 막아냈다.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한참을 달렸다. 어두컴컴 스산한 느낌이 들었고 바다내음이 열지도 않은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왼쪽과 오른쪽, 양쪽이 뻥 뚫려 있는 느낌이었다. 이정표를 보니 안산 대부도 근처에 와 있는 모양이었다. 오이도에서 방아머리해변으로 이어지는 둑방길을 한참 달리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  


"저기, 고객님."

"..."


"고객님! 둑방길인 것 같아요."


그녀는 부스스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혼잣말로 소심하게 뭐라고 구시렁대었다.


"고객님은 무슨. 사모님도 아니고."

"예?"


바다 한가운데 차와 그녀를 버려두고 가고 싶었다. 겨우 5분을 더 달려 전원주택들이 모여있는 곳에 그녀를 내려주었다.


"10분 정도 걸어가면 버스 정류장 나올 거요."


그녀와 인사를 나누고 내비게이션을 켜서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는 배차시간을 확인했다.


"아이. 씨. 똥 밟았네."


배차 시간은 40분 간격이었고 5분 전에 막차가 떠난 것이었다. 답답해서 마스크도 벗고 버스 정류장에 있는 벤치에 턱 하니 주저앉았다. 힘들게 번 돈을 택시비로 날릴 판이었다.


'막말녀의 수족이 되었다가 버림받은 기분.'



하필 바닷가의 습기를 안은 부슬비까지 흩날리기 시작했다. 꿀꿀해 미칠 것 같은 기분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감히 이 상황에서 날 건드린 사람이 누군지 눈썹을 치켜세우고 고개를 들었다.


"어!"


'왜 하필 또 이런 상황에서 널 만난 거지?'


환한이었다. 새치가 더러 있는 머리칼을 움켜쥔 이 고통스럽고 비루한 얼굴로 또 그를 만났다. 


"너 여기서 뭐 해?"

"아.. 그게... 막차를 놓쳐서."


"대부도 자주 오는구나."

"아. 그러네. 자주 오네. 너는?"


"난, 근처에 사무실 얻었거든."

"아~"


"막차 떠났으면 어떻게 가려고?"

"글쎄. 택시 타고 가야겠지?"


"이 시간에 여긴 택시도 잘 안 잡힐 텐데."

"흠... 그럼 어쩌지..."


"큰길까지 데려다줄까?"

"아, 그래도 돼?"


"차가 사무실에 있어. 거기로 가자."



나는 그의 사무실에 방문했다. 사무실의 모습은 어지러운 서류 더미들 자체였다. 한쪽에는 여기서 숙식을 해결하는 날이 많은지 간이침대까지 놓여있었다.


“이렇게 일하는구나.”

“좀 바빠서 그래. 지저분하지?”


“아니야. 건축일이 다 그렇지 뭐.”

일정이 좀 촉박해서.”


"그렇구나. 근데 이 건물 낯이 익네."

“여기 기억 안 나?"


"무슨 기억?"

남편 죽고 난 이후로 난 과거의 기억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잃어버린 건지 잊어버린 건지...


"우리 바닷가 놀러 왔다가 너 머리 자른다며 갔던 그 미용실 건물이잖아."

"아, 그래? 어쩐지..."


오전에 떠올렸던 그 추억의 장소에 환한이 사무실이 있다니 신기했다.

 

사발면 먹을래?”

“오. 좋지!”


“1층 가서 사 올게.”

“아냐. 넌 물 끓이고 있어. 내가 사 올게.”


그렇게 나는 1층 편의점에 가서 사발면 2개, 맥주 3캔, 먹태깡, 박카스를 사서 2층 건축사사무실로 올라갔다. 환한이가 미리 끓여놓은 뜨거운 물을 라면에 붓고 익기만을 초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각 나는 무지 배가 고팠다.


“사발면 취향은 그대로네.”

“육개장 면발이 얇고 맛있잖아.”


"스프 끝까지 안 넣는 것도 그렇고."

"그런가? 그래서 매번 식탁에 스프를 흘리나 봐."


나에 대해 세세한 것까지 다 기억하는 그 친구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다 익은 것 같아. 먹자."

"후~ 후~"


"아~ 옛날 생각나네."


우리는 동시에 그 말이 나와버렸다.




사발면을 순식간에 먹고 고개를 들었다. 먹다가 젓가락을 내려놓은 그는 캔 맥주를 따서 나에게 건넸다. 그러곤 내게 본인이 하는 작업을 설명했다.


“집이면서 복합문화공간이야. 1층은 책, 그림, 음악, 글쓰기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와서 작업할 수 있도록 오픈할 계획이래.”

“좋다. 나도 이런 로망이 있는데.”


“여자들 다 비슷한가 봐. 힐링스페이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커피 한잔 하면서 책 읽고 음악 듣고."

"그치."


"내가 맡아서가 아니라 멋진 공간이 될 것 같아.”

“온 우주의 영혼을 끌어 담아내길.”


“하하. 가능하도록 해야지. 이건 3D 투시도. 어때?

“우와~ 딱 내 스타일인데?”


“설계자는 따로 있어. 난 캐드작업만 했어."

“그래?"


“설계하신 분이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져서 대신 맡게 된 거야."

"아. 아는 사람?"


"영국에서 일할 때 한국 담당자로 함께 일한 적은 있어. 그렇다고 또 잘 아는 사이는 아니고."

“아~”    


“그분 건강이 더 나빠지기 전에 완공이 목표라 좀 바빠."

“바쁘기는 하겠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 같긴 하네."


“그렇지. 나 살짝 졸린데 나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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