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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광부 Oct 10. 2024

#27. 판도라의 상자

*소설입니다.





환한이가 짓고 내가 참여한 대부도  준공식 날이었다. 클리닝 티슈로 안경알을 깨끗하게 닦았다. 그냥 버리기 아까워 더러워진 욕실 유리창의 물 자국을 스윽 닦아 내었다. 준공식에 참석해 달라는 환한이의 말에 갖춰 입고 나서려는 참이었다.  


“엄마, 시간 돼?”

어. 잠깐.”


아들은 휴대폰 하나를 식탁에 올려두었다. 남편이 죽기 전 쓰던 것이었다. 내가 그리도 찾던 그 휴대폰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었어. 그동안 거짓말 했어. 미안.


바쁘다는 핑계로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한 사이 아들의 사춘기도 한풀 꺾인 모습이었다.


아빠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와 돌려주는 이유에 해 묻지 않았다. 오늘이 남편의 생일이었다는 그 사실만 불현듯 떠올랐다.


아빠는 잘 계시겠지?


아들이 휴대폰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나갔다. 나는 어딘가 숨을 곳을 찾고 싶었다. 

최근 밝아진 나의 모습은 아들에게는 섭섭함이었을까? 아빠를 잊고 사는 엄마에 대한 서운함인지, 본인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는 엄마에 대한 미움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남편의 휴대폰이었다. 거기 남아있을 그의 행적과 비밀이 몹시 궁금했었다. 하지만, 이젠 별로 그렇지 않다. 않아졌다.


 판도라의 상자와 마주할 자신이 없어졌다.


나의 원망은 바람 빠진 풍선과도 같았다.


상자 속 비밀과 마주하면 나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 것이 뻔했다.


다시, 버림받여자가  자신이 없었다. 


차마 죽은 남편의 휴대폰 전원을 켜지 못했다. 휴대폰을 가방에 집어넣곤 대부도로 향했다.





완성된 건물은 3층 건물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준공식 준비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뒤쪽 통유리창으로 내부를 살펴보았다.


1층은 복합문화공간, 2층은 주거 공간, 3층은 옥상정원이었다. 1층 공간은 탁 트인 바다를 보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내가 반할 정도였다. 뒤뜰의 동백꽃 정원은 누군가와 차를 마시며 하루를 편안히 마무리할 수 있는 힐링 그 자체였다.  


준공식 본 행사가 시작된다는 사회자의 말에 서둘러 사람들 옆쪽으로 가서 지켜보았다. 고상해 보이는 서너 명의 사람들이 흰 천으로 가려진 입구 사인 앞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자연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카메라 앞에서 웃고 있었다. 나 역시 뿌듯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실크소재의 천이 걷히면서 처음으로 건축물 이름을 보게 되었다. 순간 멈칫했다.


‘MMJ’


 익숙한 이니셜이었다. MMJ는 우리 부부의 애칭, 민민커플과 서준이를 일컬어 남편이 즐겨 쓰던 영문 이니셜이었다. 김민우(M)과 백수민(M)이 만나 태어난 김서준(J)이라는 뜻으로 우리 가족을 의미했다.


‘저 MMJ는 무슨 뜻이지?’


내가 디자인을 한 구멍 뚫린 화산석에 새겨진 MMJ 사인 앞에서 사람들은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시죠. 2부 준공 축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내부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나 역시 맨 뒷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유명 건축인과 시인의 축사가 이어졌다. 이어 사회자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아름다운 바다에 이렇게나 멋진 건물을 지어주신 서민재 님의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앞줄에 앉아 있던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가녀린 여자 한 분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무대 앞으로 나갔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한 번도 의뢰인 서 과장이 여자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내 예상과는 달리 서민재, 그는 여자였다. 단아하게 하나로 묶은 긴 생머리의 그녀가 앞으로 나가서 수줍게 마이크를 잡는데 이상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건축설계사 서민재입니다. 제가 2018년에 이 집의 설계를 시작하였는데, 2023년이 되어서야 완공이 되었습니다. 제가 작업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저를 대신해 지금까지 고생해 주신 이환한 건축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녀의 말에 환한이는 쑥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다시 마이크를 올려 들었다.


“사실 이 집의 기획자는 따로 계십니다. 하늘에 계신 그분이 지금 이곳을 보고 계신다면 아주 마음에 들어 하실 겁니다. 오늘이 그분 생일이라 몹시 그립습니다.


MMJ는 ‘민재 안의 그대‘라는 의미에서 지은 공간입니다. (흠흠)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이지만, 1층 복합문화공간은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오픈된 공간으로 운영할 생각입니다. 문화인들과 지역민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서민재 씨는 그분 얘기를 할 때 목소리가 유독 떨리고 울컥하는 느낌이었다.


'MMJ···. MMJ···. 혹시? Minwoo in MinJae? 


설마 서민재 씨가 말한 그분이 내 남편일까?

오늘이 생일인 하늘에 있는 서준 아빠가 그녀가 그리워하는 그 남자일까? 그녀가 김민우의 숨겨진 그녀였던 걸까?


설마?'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사회자의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가방을 움켜쥐고 숨이 막혀오는 그 공간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도망치듯 급하게 차를 몰고 근처 사람 없는 곳으로 갔다.


가방 속에 있던 남편의 휴대폰을 꺼냈다. 자동차에서 휴대폰을 충전하고, 휴대폰이 부팅되는 동안 볼까 말까 수백 번은 더 고민했다.


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게 되었다.


배경 화면을 보고는 또 한 번 무너져 내렸다. 사진 속 아버지와 아들은 해맑은 모습으로 모래놀이를 하고 있었다.


“후~”


심호흡을 했다. 그때까지 죽은 이의 휴대폰이란 어떤 느낌일지 예상해 본 적 없었다. 일상의 흔적이 죽은 그 시각에 멈춰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남편이 사망을 선고받은 이후부터 통신사의 수신이 차단되기 전까지 아무 일 없다는 듯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안부를 물었다. 회사 일에 대해 문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타깃을 잘못 잡은 광고 문자들도 숱하게 와 있었다.   

 

사진첩을 열어 보았다. 가족사진 원본 파일도 그대로 있었고 생일상에 올랐던 음식 사진들도 있었다. 갖고 싶어 한 캠핑용품 사진도 있고 펑크 난 자동차 바퀴를 찍은 사진도 있었다. 

'Kakao Talk' 폴더 속에는 누군가에게 받은 해외 건축물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 사진들은 MMJ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여자 사진은 없었다. 카톡 앱을 열어 보았다. 거기에도 그녀에 대한 어떤 흔적도 없었다.


'혹시 서준이가 지웠나?'


혹시나 해서 메일박스를 열어 보았다. 받는 사람이 죽었는지도 모르고 스팸메일이 제법 있었다. 

2018년도로 가 보았다. 보낸 메일함에서 서민재 씨 메일주소를 발견했다. 또다시 심장은 내려앉았다.

제목: 건축설계 의뢰 건
보내는 사람 : 김민우
받는 사람 : mj_seo

내용 :
안녕하세요.
정현수 씨 소개로 연락드립니다. 집 설계를 의뢰드리고 싶은데 시간 되실 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010  4582  51**

*기본 컨셉과 평수 등 첨부파일로 보내 드립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첫 시작은 업무 메일에서부터였다. 그 이후에는 어떤 흔적도 없었다.


늘 궁금했었다. 도대체 어떤 여자에게 마음이 뺏긴 건지, 그 여자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어서 가정에도 소홀한 건지 너무 원망스러웠다. 여자로서 자존감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던 그 시간이 다시 떠올라 마음이 힘들었다.


최소한의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뒷조사를 하거나 구질한 노력 따위는 해보지도 않고 이혼을 결심했다. 버림받기 전에 내가 먼저 버려야 살 것 같았다. 당시에 난 엄청난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었다.


 남편이 죽은 후에도 그 여자가 잠시 궁금했었다. 찾을 길이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찾았다. 그리고 그녀에 대해 알 것 같았다.


최소한 그녀에게 김민우는 씹다 뱉은 껌은 아니었다. 정말 그를 사랑했모양이었다.

 꿈꾸던 집을 짓고 아직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모습이었다.  울컥해져 눈물이 줄줄 흘렀다.


물이 빠진 갯벌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 머릿속의 잡념들도 썰물에 빠져나가길 바랐다. 한참 애착을 가졌던 공간은 결국 내가 남편한테 자주 얘기했던 내가 갖고 싶은 작업실의 모습이었다. 그걸 그녀라는 매개체가 만들어주었다.


그 공간은 내 것도, 그녀 것도 아니었다. 김민우처럼···.  


“나에게 당신이란 남자, 무엇이었을까? 김민우 당신에게 나는 무엇이었니?”


소리 내지 못하고 나는 하늘에다가 대고 울부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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