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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이 Mar 10. 2024

새롭고 다양함이라고 좋은 것은 아니었다

다양함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혼란스럽기도 하다


유치원 다닐 무렵에 영어로 된 오디오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한국말이 아닌 다른 언어가 새롭게 다가왔었고 제대로 이해도 못해서 그저 Hi, How are you? 가 전부였는데도 마트를 가거나 어디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외국인이 있으면 씩씩하게 Hi! 를 해버렸다. 그 당시 내 나이 7살, 8살 이랬을 것이다. 예쁜 원피스 입는 것과 리본 달린 구두를 신는 것을 좋아하고 양갈래 머리를 하고 머리띠도 하고 아기자기하던 그 어리고 작았던 소녀가 신나고 호기심 나서 Hi 하는 모습에 외국인들은 한바탕 크게 웃으며 귀엽다며 인사를 잘 받아줬다.  그런 기억들이 있어서 그랬을까


그 어릴 적에 나의 인사를 받아주던 외국인들로 하여금 외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있었다고 생각이 든다. 그런 경험들로 외국에 대한 관심이 생기긴 했고 나중에 여행이나 가보고 싶었고, 친척이 미국을 갔다길래 궁금하기도 한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 친척들은 현재 모두 한국에 살고 있고, 나 또한 졸업 후 한국을 갈 생각으로 비행기 예매도 조금 저렴한 시기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이런 나에게 외국은 좋은 이미지 었다. 그리고 미국 역시 좋은 곳이라 생각했다. 미국이 외국의 전부는 아니지만, 내가 가보지 못했던 곳에 대한 호기심들과 주변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 등을 통해 다시금 한 번쯤은 여행을 가보려고 했다. 다양함을 존중해 주고 새로운 것들이 많은 현란한 곳을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다양성이 무조건 좋아서가 아니라 중고등학생 때 조금 새로운 게 무엇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더 컸어서 그런 궁금증을 충족시켜줄 만한 곳은 다양한 인종이 있고 선진국이라는 나라 미국이 적합하단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가치관에서는 규율이나 윤리를 배반한 다양성 및 새로움은 수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미국에서 지내며, 새로운 것들과 다양한 것들을 맞닥뜨리는 기간들을 통해 깨닫게 되었고 확실하게 인지하게 되었다. 여러 다양함 들은 좋은 긍정적인 결실도 맺지만, 질서와 책임 없는 다양성을 외치고 존중해 달라는 것은 사실상 ‘억지’인 것.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며 그 안에서 좋은 것들을 채택해서 기존에 좋은 점들이나 단점들을 보완해 나가는 그런 상호작용에서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것은 괜찮지만,

사실상, 이런 다양성을 요구하거나 선언하는 성숙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보기 어렵고 있다한들 너무 적어서 그들의 옳은 발언들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 정도도 안 될 때가 많았다.


사람이란 여러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해서, 알게 된 게 많다고 해서,

업적을 이룬 게 많다고 해서, 돈이 많다고 해서, 또는 빈곤하다고 해서

온전한 성숙한 성인으로서 사회에 좋은 질서를 가져다주는 그런 경우는 그렇게 많지는 않다.


사람이기에 실수도 할 수 있고 잘못도 할 수 있고, 부족한 것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실수들이 어떤 것으로부터 유래된 건지, 분석과 개선이 되도록 알아가는 시간도 필요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엔 “보편적 사회의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서로 민폐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들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사회가 서로에게 “피드백”도 줄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누군가는 소위 말하는 “꼰대”일 수도 있지만, 이런 이분법적인 경향으로 보기보다는

서로가 선언하고 말하고, 어떤 제도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라던가 또는 누군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만 같을 때라던가,

누군가가 피해를 입히고 있는 상황이라던가 그럴 때


“적절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게 사실상 쉬운 일도 아니고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이 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는


“눈치를 어느 정도 보고 살아가는 것”에 나름의 수용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치 보는 게 피곤하고 삶을 지치게 만든다거나 강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되어가지 않게, 또는 잘못된 것들을 개선하기 위한 서로를 위한 상호작용”으로 소통하는 방법으로 적절할 때 사용이 된다면


좋은 시민의식 및 높은 치안, 사회적 발전 등으로 더욱더 긍정적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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