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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나쁜가?

위대한 탈출

by RAMJI Feb 12. 2025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을 읽었습니다. 2015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학자죠. 그런데 최근 읽었던 경제학에 대한 책 중 가장 재미가 없었어요! ㅎㅎ 제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인 ‘이야기’ 보다는 숫자와 그래프에 대한 설명이 많아서일까요. 건강, 소득(부), 웰빙까지 폭넓은 주제를 다룬 저자의 머릿속을 따라가지 못해서일까요. 그래도 책이 제게 남긴 것을 짚어봅니다.


저자는 책을 시작하면서 묻습니다. 불평등이 나쁜 것인가? 그러고 보면 오랜 인류의 역사에서 (잠깐의 수렵 채취 사회를 제외하면) 인간은 서로 평등했던 적이 없습니다.


저자는 불평등에도 역할이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혁신을 자극하는 것이죠. 그 결과 인류는 더 건강해져서 더 오래 살게 되었고, 물질적인 부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저자는 이것을 탈출에 비유했습니다. 탈출에 먼저 성공한 사람들(영국, 미국, 유럽 등)이 있었고, 그에 자극을 받아 또 다른 사람들(예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중국과 인도도 놀라운 성장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는 늘 남겨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의해야 하는 것은, 저자가 불평등에 무조건적으로 찬성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나친 불평등은 경제를 갉아먹고 성장을 억누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기득권층이 새로운 혁신을 막아설 수 있어서지요.


저자는 미국에서의 소득 불평등을 꽤 상세히 짚고 넘어갔습니다. 1차 세계대전 전과 최근을 비교하면, 현재 소득 수준에서 하위 90퍼센트를 차지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부모 세대가 살았던 정도의 소득만을 벌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늘어난 부는? 상위 10프로에게 갔겠지요.


옛날에는 상위 소득자의 소득원이 주로 자본이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급여소득’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의외였어요!). 상위 10퍼센트 소득자는 번 돈의 75%, 상위 0.1퍼센트 소득자의 경우 번 돈의 43퍼센트가 급여소득이랍니다. 그렇다면 미국 부자들,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된 것이니 손뼉 쳐 주면 될까요?


저자는 그러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 사실들을 알려주었습니다.

미국은 다른 나라 대비 부모와 자식의 소득 간 상관관계가 높다고 합니다. 부의 조건이 대물림 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죠.

특히 은행가의 소득이 크게 올랐는데, 미국이 유독 그렇다는 겁니다. 그들이 스티브 잡스처럼 혁신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에 도움을 주었을까요? 오히려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오지 않았나요? 상위층의 소득 증가는 (CEO의 경우 서로 사외이사가 되어) 자기들끼리 서로 급여를 올려준 결과이거나 정치적 로비의 결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일례로 상위 소득의 세금을 감면한 나라에서 최상위층의 소득 점유율이 가장 크게 증가했다고 하네요.


마지막으로 저자는 1개 장을 할당해서 대외원조에 반대하는 논지를 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큰 나라(가령 중국, 인도)에 많은데, 원조는 작은 나라에 많이 지원되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원조지출은 (탈출에 성공하지 못한 남겨진 나라의) 경제성장에 기여하지 못했습니다.

원조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음을 지적합니다. 개도국 정부 입장에서는 원조자금이 국민세금이 아닌 공돈이니 책임감을 갖지 않고 자신을 위해서 쓰게 됩니다. 따라서 원조는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정권을 돕는 꼴이 됩니다. 원조기관 또한 원조자금을 집행하는데 그치고 결과에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저자들은 작은 단위에서의 성과, 숫자로 계량되는 성과에 의미를 부여한 반면, 앵거스 디턴은 1개의 성공적인 작은 프로젝트가 다른 지역에서는, 그리고 큰 규모에서는 효과가 없을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의료 분야 원조에 대해서는 에이즈와 다른 풍토병으로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린 것에 (그 프로젝트가 가져왔을 다른 부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듯합니다.


마지막 장을 덮으니 이달 초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미국국제개발협력처(USAID)가 하루아침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입니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고> 글을 확인해 주세요).


미국 민주당은 트럼프의 조치에 반대하고 있지만, 트럼프의 결정을 지지하는 사람도 상당수일 것으로 보입니다. 2023년 미국은 약 400억 달러(한화 50조 원 이상)를 외국 원조에 지출했는데요. 앵거스 디튼처럼 원조의 효과가 없고 오히려 악영향을 준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단순히 그 비용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2023년 3월 AP-NORC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약 60%가 미국 정부의 외국 원조 지출이 "너무 많다"라고 응답했습니다. 구체적인 비용을 언급했을 때는 이 비율이 70%로 증가했습니다. 정당별로는 공화당원의 90%, 민주당원의 55%가 외국 원조 지출이 과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같은 조사에서 미국 성인의 60%는 교육, 의료, 인프라, 사회 보장, 메디케어 등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너무 적게" 지출한다고 답했습니다.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미국인들의 인식과 현실 간의 큰 차이입니다. KFF 설문 조사에서 미국인들은 외국 원조가 연방 예산의 31%를 차지한다고 추정했지만, 실제로는 1% 미만이었습니다.


이러한 여론을 고려하면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가 마치 정치적 퍼포먼스처럼 극적인 결정을 내린 배경이 이해가 됩니다. USAID의 갑작스러운 폐지를 보며, 이것이 (대외원조에 대한 국민적 동의가 없는) 다른 나라의 원조 정책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생각도 드네요.


마지막으로 생각해봅니다. 불평등은 나쁜 것일까요? 좋고 나쁨을 떠나서, 불평등은 성장을 위한 하나의 조건임을 인정합니다. 전 세계가 성장에 매달리는 이유도 분명해 보입니다. 경제가 성장하는 궤도에 있어야 모두에게 추가로 돌아갈 몫이 생기고, 그래야 불평등으로 인한 갈등도 줄어들 테니까요. 하지만 불평등이 마치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해도, 점점 확대되는 빈부격차의 이면에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자본주의라는 경기장의 규칙은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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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USAID 폐쇄


약 일주일 전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국제개발협력처(USAID) 폐지 결정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USAID는 냉전이 절정에 달했을 때 케네디 대통령이 창설했습니다. 소련의 영향력을 원조를 통해 효과적으로 저지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의회는 대외원조법을 통과시켰고, 케네디는 1961년 USAID를 독립 기관으로 설립했습니다.


오늘날 USAID 지지자들은 미국의 원조가 각국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중국은 미국이 파트너십을 원하는 많은 국가에서 "일대일로"라는 자체 외국 원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반면 비판론자들은 이러한 프로그램이 예산 낭비일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의제를 강요한다고 지적합니다.


USAID는 현재 어떤 상황일까요?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1월 20일에 외국 원조를 90일간 동결했습니다. 현재 수십 명의 고위 관리가 휴직에 들어갔고, 수천 명의 계약직 직원이 해고되었으며, 직원들은 워싱턴 본사 출근 중단 통보를 받았습니다. USAID의 웹사이트와 X 플랫폼 계정도 삭제되었습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반적인 연방정부 구조조정의 일환인데, 그중에서도 USAID와 외국 원조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공화당 행정부는 전통적으로 평화 유지, 인권, 난민 지원을 위한 유엔 기구들의 예산을 삭감해 왔습니다. 첫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도 외국 원조 축소를 위해 유엔 인구기금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포함한 여러 유엔 기구 지원을 중단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USAID를 공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 효율성 부서인 DOGE는 수천 명의 공무원 감축과 수조 달러의 정부 지출 삭감을 추진하고 있는데 USAID가 주요 대상입니다. DOGE의 수장인 머스크는 USAID가 "치명적인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했다며 "범죄 조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말하는 "치명적인 프로그램"이란 COVID-19 관련 연구를 지원한 USAID의 사업을 의미합니다. 머스크는 USAID가 윈난 바이러스 연구소와 협력해 새로운 바이러스 발견 연구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연구가 COVID-19 대유행의 원인이 되었다며 USAID를 "범죄 조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 주장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출처는 아래와 같습니다. 번역은 코파일럿과 노션 AI를 사용했습니다)


https://apnews.com/article/usaid-foreign-aid-freeze-trump-peter-marocco-8253d7dda766df89e10390c1645e78aa?form=MG0AV3

https://ijr.com/elon-musks-claim-linking-usaid-to-bioweapons-isnt-as-far-fetched-as-the-deep-state-wants-you-to-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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