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고민중
작년 가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나오는 길에 언뜻 본 실시간 검색어 1위는 ‘탄핵’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던 그 날 이후, 광장에 나가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쳤던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촛불 대통령’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 어마어마한 포부를 밝힌 문재인 씨는 취임 이후 많은 것을 바꾸어 나갈 계획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자리 수를 늘려 취업난을 해결하고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통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온 국민이 눈으로 확인한 검찰과 재벌의 폐단도 개혁하고 여성 내각 30%를 통해 ‘페미니스트 대통령’에 대한 기대도 충족하겠다고 합니다. 다 말하기에도 숨이 찬 그의 행보를 보자면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무너질 대로 무너진 국민의 신뢰를 착실히 회복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연 국민 모두 웃을 수 있는 시대가 정녕 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삶, 나아졌을까요? 계속해서 참고 기다리면 ‘달님’이 알아서 해결해주시는 것일까요?
아쉽게도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의 우리 삶은 이전과 비교해 아직 바뀌지 않은 것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리고 변화의 과정에 있어 외쳐야 할 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번 문우 58호에는 ‘달빛이 비치지 않는 곳’의 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 이번 호의 세 가지 메인기획은 정부가 해결할 수 없지만 또는 외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들입니다. 문우 편집위원들은 58호를 준비하면서 세 팀으로 나뉘어 이 문제와 부딪히고 고민했습니다. 뭐가 그리 중요한 일들인 건지, 그 내용을 본격적인 기사로 만나보기 전에 하나씩 살펴볼까요?
‘만족도 1위’라는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지금이 2017년이라고는 믿지 못할 노동탄압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연세인의 일상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세브란스 병원의 청소노동자들은 상상도 못할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고, 이를 바꿔보고자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세브란스는 하청업체 태가비엠을 통해 노조파괴를 지시했고, 조합원들에게 불이익을 주기도 했습니다. 문우편집위원회는 이 투쟁이 정당하다고 외치며 이들에게 연대하고, 왜 문재인 정부의 정책으로 세브란스 청소노동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인지 짚어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 명의 청년노동자가 안타깝고 슬픈 죽음을 맞은 일도 있었습니다.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신입조연출이었던 故 이한빛 PD의 이야기입니다. 사건이 공론화되고 많은 이들이 방송업계의 장시간 고강도 노동실태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루에 20시간이 넘는 노동시간,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작업환경에 시달렸던 그의 죽음은 그 개인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문우 편집위원들은 故 이한빛 PD의 죽음이 그저 ‘안타깝고 슬프게’ 남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방송 산업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하고 변화의 시발점에서고자 인터뷰, 가상 일기 등 여러 기획들을 준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2017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군 퀴어 이슈를 담았습니다. 지난 4월, 육군에서 동성애자 색출 수사와 처벌을 지시한 것이 알려지고 실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반발과 함께 사회적 논란이 거세게 일었지만 결국 A대위에게는 군형법 제 92조 6에 의거해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달,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가 “동성애에 반대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사회에 퀴어들이 설 자리가 얼마나 좁은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문우는 58호에서 퀴어의 권리를 외칩니다. 편견과 차별에서 벗어나 광장에 나갈 수 있고, 혐오 받지 않을 우리들의 권리를 말입니다.
어떠신가요? 모든 국민을 위한 나라를 위해 바뀌어야 할 것도, 이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겨울, 추웠던 광장에는 수많은 노동자, 청년, 퀴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촛불의 요구를 받아 안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촛불의 요구는 절대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해서 실현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결국 우리는 노동조합할 권리, 사람답게 일할 권리, 나의 존재가 지워지지 않을 권리를 찾기 위해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들어야 합니다. 이번 58호의 제목이기도 한 배우 엠마 왓슨의 말처럼 그 누구도 아닌 내가, 그 어느 때도 아닌 지금 말입니다. 우리의 삶은 더 이상 밀려날 수 없기에 우리에게 나중은 없습니다.
2017년 8월
모기가 많지만, 그럼에도 즐거운 외솔관 지하 문우방에서
편집장 고민중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