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baiser
즐비한 호텔과 쇼핑 아케이드, 화려한 야경으로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곳, 그러나 한 켠에는 다닥다닥 붙은 야트막한 건물들이 늘어서있고 야외 에스컬레이터가 운행되고 있어 왕자웨이 (왕가위) 감독과 장궈룽 (장국영)의 감성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곳. 미식가들을 위한 성지. 기회가 된다면 인생에서 한 번쯤 가봐야 하는 여행지. 이제껏 홍콩을 대표적으로 설명하던 표현들이다. 그런데 2019년 여름을 기점으로 ‘송환법 반대 시위’가 이 모든 수사들에 장막을 씌워버렸다.
관광지이자 경제특구로 널리 알려진 홍콩은 한순간 투쟁과 불복종의 공간이자 민주주 의를 위한 배수진이 되었다. 그간 베이징 정부와는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았던 홍콩 정부가 대만, 마카오, 중국 본토와 범죄인을 송환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자 이를 반대하고 나선 시민들이 거리로 모여든 것이다. 범죄인 인도 조약이 사실상 반중인사들을 정치적으로 탄압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처음 송환법 반대로 시작했던 시위대의 요구는 점차 확대되었고, 1) 송환법 폐지를 포함하여 2) 시위대원에 대한 ‘반동분자’ 낙인 철회 3) 체포된 시위대원들의 무조건 석방과 불기소, 4)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 5) 완전한 행정장관 직선제로 요약해 볼 수 있다. 결국 홍콩의 행정 수 반 캐리 람 장관은 시위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송환법을 철회하겠다고 선언했으나, 다른 네 가지 요구는 수락하지 않으면서 갈등을 지속시키고 있다.[1]
한국에서는 이번 송환법 반대 시위를 통해 홍콩과 중국 사이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했지만 사실상 영국이 홍콩을 포기한 이후 중국 내지인과 홍콩인들 사이의 크고 작은 갈등은 끊이지 않았으며, 2003년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 2014년 우산혁명, 2016년 어묵혁명을 통해 이러한 양상이 직접적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어묵혁명은 정부의 노점상 단속에 반발하여 일어났다는 특수성을 지니긴 하나 위 일련의 시위들은 대체로 홍콩의 자유와 자주성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골자로 한다. 때문에 중국과 홍콩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의 제 1 원인을 중국의 정체(政體)로 보는 태도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분석만으로는 ‘중화 민주 공화국’ 홍콩 특별 행정 자치구의 시민들은 어째서 중국 전체의 민주화가 아니라 홍콩만을 따로 떼어 이야기 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지금 홍콩 사회의 움직임은 그들이 스스로를 중국이라는 국민 국가의 일원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민족주의 국민국가 안에서 독재 정권에 맞서 ‘국민주권’을 주장한 다른 시민 사회와 홍콩이 구분되는 지점이다. 그렇기에 이 문제를 엄밀하게 사유하고 홍콩-중국 역학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홍콩을 중국이 아니라 ‘홍콩답게’ 만드는지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홍콩 반환이 결정되었을 당시 중국 정부는 홍콩을 ‘사회주의’에 곧장 편입시켰을 때 초래될 혼란을 고려하여 홍콩을 특별행정자치구로 지정하고 홍콩 법치주의의 기본이 되는 기본법을 도입했다. 제 1장 총칙의 5조에 따르면 홍콩은 “사회주의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지 아니하며 원래의 자본주의 제도와 생활방식을 50년 동안 유지하고 변동하지 아니한다”[2]
먼저 이 문장은 홍콩의 자치는 시한부 처지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함의한다. 홍콩 기본법이 효력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97년이므로, 약 사 반세기 후에 이 법은 실효되어 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베이징 정부가 홍콩에 계속 가하는 압력을 고려한다면 그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지금껏 홍콩에게 허락되었던 것은 민주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경제 체제였다는 사실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97년 당시 홍콩의 1인당 GDP는 27,330 달러로 781달러를 겨우 웃돌던 중국은 넘보지도 못할 수준이었다. 당시 중국이 파격적일 정도로 많은 것을 양보하며 영국과 반환협정을 맺은 데에는 개혁 개방을 진행하며 내지로 흡수될 자본이 필요했던 상황이 작용했다.[3] 홍콩에게 제한적으로 부여했던 자유는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감행된 것이다.[4] 그러나 이제 그 토대는 아슬아슬하다. 더 이상 홍콩의 경제 상황은 중국에게 예전만큼 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 개방 이후로 전례 없는 양적 성장을 일궈낸 중국에 홍콩만큼 하는 도시들이 생겼다. 홍콩 근처에 있는 대표적인 경제 특구인 선전의 2017년 GDP는 홍콩의 97% 수준까지 올라왔다.[5] 심지어는 이미 2009년 상하이 GDP가 홍콩을 역전했다.[6] 낙후된 내지와 달리 꽤나 풍족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자랑스레 여겼던 홍콩의 자존심과 우월의식이 이내 꺾이고 말았다.
이러한 흐름은 비단 홍콩의 위축만을 불러온 것은 아니었다. 중국을 향한 홍콩인의 적대심도 커졌다. 화교를 주축으로 세계 자본의 유입에 지대한 역할을 했던 홍콩의 성장세는 지속적으로 둔화되는 반면에 중국은 비약적인 성장을 일궈내는 중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이러한 성과를 위해 중국 정부는 홍콩의 재계 기득권들과 결탁했는데, 그 결과로 홍콩의 지니계수는 2016년 0.539에 도달했다.[7] 드디어 응축된 증오의 뇌관이 터진 것은 2012년이었다. “음력설을 맞아 홍콩에 쇼핑하러 온 중국 관광객들을 향해 ‘메뚜기’[8]를 반대한다는 시위가 벌어”[9]졌다. 이 외침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다. 중국이 강력한 테제가 되어갈수록 홍콩의 내셔널리티에서 안티테제가 차지하는 구석은 커졌다. 장정아는 2014년 우산운동을 평하면서 “2015년 만들어져 주로 20대 청년으로 구성된 정치조직 청년신정 (靑年新政)도,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기보다 반(反)중국과 홍콩이익을 우선적으로 강조할 뿐이다.”[10]라는 말을 남긴 적 있고 이러한 관점을 2016년 어묵혁명을 보며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도 그대로 견지했다. 후에 그는 반환 이후 홍콩 시민들을 대상으로 계속해온 정체성 조사에서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여기는 비율은 역대 최저를, 홍콩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전했다.[11]
송환법 시위를 비롯하여 홍콩의 운동에는 큰 특징이 있다. 바로 비폭력 시위라는 점이다. 홍콩이 ‘민주’와 ‘자유’를 추구하는 것에 진정성을 심어주고 그것의 정당성을 한층 북돋는다는 점에서 비폭력은 효과적인 언어이다. 압도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 정부에 일말의 트집도 잡히면 안된다는 강박도 분명 숨어 있을 것이다. 한 편으로, 비폭력은 무결함을 넘어서 주로 야만의 대척점에 세워지고 세련, 성숙 등으로 묘사된다는 사실에 주목하면 이러한 노선은 ‘자신들은 중국인과 다르다’는 홍콩만의 우월의식에 상당부분 기대고 있다. “우리는 중국 홍위병이 아니다.”[13], “중국 경제 발전에 영감을 줬던 홍콩이 중국 정치 발전의 영감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14] 등의 발화가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체성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구분의 정치를 내포하고 홍콩 사람들이 스스로를 ‘홍콩인’이라고 외치면서 선을 긋고 싶어하는 대상은 중국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사실상 홍콩 정체성은 중국에 대한 우월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곧 서구 열강의 시선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식민주의적 의식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송환법 시위가 격화되었던 작년 영국 거주권을 요청하는 청원이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간혹 시위대 안에서 영국령 시절 홍콩의 깃발이나 미국 성조기가 보이기도 했다. 영국 통치 시기에도 홍콩인은 ‘공식적인’ 2등 시민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듯한 행보이다. 우리는 여기서 ‘홍콩인’이 중국의 권위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언어이기만 한지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그 곳에 서구 헤게모니에 대한 선망은 없는가? 홍콩 사람들이 ‘중국과 달리’ 가졌다고 믿고 회상하는 자유와 법치는 온전했는가?
저간에 시위의 불씨는 (잠시일지도 모를)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지난 해 홍콩을 뿌옇게 가렸던 실탄과 최루가스가 걷혔고 그 위를 떠다니던 레이저 빔도 다시 마천루들에게 밤을 내주었다. 각자의 장소에 있게 된 이 때, 다시 2019년의 그 거리를 응시하고 침잠해야만 한다. 스스로를 이름 짓고 상대와 구별함으로써 그와 맺고 있는 관계를 가시화하고 억압 구조를 폭로하는 것은 약한 사람들에게 아주 효과적인 전략이다. 홍콩은 그렇게 ‘보편의 가치’를 지키고자 희생을 감수하는 풀뿌리로 스스로를 천명했다. 이 서사 안에서 중국은 자연스럽게 권위주의를 휘두르는 악 그 자체가 되었다. 중국 정부가 시민들에게 경찰 폭력을 사용했으며, 대외적으로는 법치를 표방하면서 실질적으로 인치를 휘둘렀다는 점에서 홍콩인들의 이와 같은 사고는 어느 정도 타당한 분노인 동시에 승패를 결정해야 하는 정치에서 효과적인 전략이다. 그런데 이러한 스토리 텔링으로 승기를 잡는다 하더라도 그 승리는 위험하다.
절대 악을 상정하고 그것이 ‘부당하다’고만 외치면 그것엔 대항하는 ‘우리’는 절대선이라고 도취되기 쉽다. 그 일이 일어나면 자성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 행정부 수장 직선제는 홍콩이 그토록 갈망하는 민주주의의 끝이 아니다. 그렇기에 홍콩 사회 안에서 ‘홍콩이 그리는 홍콩’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미래를 그리는 데 있어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면밀히 살피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다. 지금의 홍콩은 중국이라는 물 위에 떠 있는 기름과 같다. 중국이 있기에 뭉칠 수 있고, 그렇기에 어느 방향으로 내딛어도 위태로워 보인다. 홍콩이라는 공간과 공동체가 진행형으로 지속되길 바란다면 자신들을 묶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1] 비단 법안의 내용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홍콩 정부와 베이징 정부는 시위가 본격화된 작년 6월경부터 최루탄을 비롯한 경찰 폭력을 사용하여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였고, 홍콩 시민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백색테러가 일어났을 때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더 나아가서 시위대를 검열하기 위해 ‘복면 금지법’을 시행하기도 했다. 지금도 정부의 폭력 진압은 진행 중이다.
[2] 『중화 인민공화국 홍콩 특별행정구 기본법』, 1990.04.04. 제정본, 세계법제정보센터 역
[3] “철저한 시장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홍콩 및 대만의 경제인들에게 중국과 홍콩 및 대만 중간지역에 시장경제와 유사한 체제를 설정함으로써 정치적 안정감을 제공하여 투자를 유도하고 판이한 체제의 접촉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마찰과 충격을 극소화하기 위한 완충지대로서의 역할을 경제특구에 부여하였다.” - 오승렬, 「중국경제의 개혁ㆍ개방과 경제구조」, 『통일연구원 연구총서』, 2001, 14쪽
[4] 자세한 합의문은 중앙일보, 〈홍콩 반환문 요지〉, 1984.09.27.을 참고할 것. https://news.joins.com/article/1784626
[5] 연합뉴스, 〈‘중국 개혁개방 40년’…어촌서 첨단 IT 도시로 급성장한 선전〉, 김진방, 2018.08.26. https://www.yna.co.kr/view/AKR20180825021500083
[6] 연합뉴스, 〈[홍콩반환 20주년] ③친중국화 덕 경제 성장…양극화 심화〉, 정주호, 2017.06.25. https://www.yna.co.kr/view/AKR20170623156400089
[7] 비마이너, 〈홍콩의 민주주의, 우리 앞에 당도한 질문〉, 미류, 2019.11.20. https://beminor.com/detail.php?number=14061&thread=03r02r14
[8] 2011년에 처음 등장한 표현으로, 홍콩의 교육과 복지혜택을 누리기 위해 내지에서 원정출산을 하러 오는 사람들을 비꼬는 단어이다. (류영하,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 홍콩 역사박물관의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산지니, 2014, 20쪽)
[9] 류영하, 「후식민의 주체로서 국가와 본토: 중국-홍콩의 경우」, 『중국 현대문학』, 제 63호, 2012, 190쪽 (류영하, 위의 책에서 재인용)
[10] 장정아, 「이 폐허를 응시하라」, 『황해문화』, 2016, 64쪽
[11] 장정아, 「모든 것이 정치다: 2019년 홍콩 시위의 기억과 유산」, 『황해문화』, 2019, 240쪽
[12] 지그문트 바우만은 동명의 저서에서 현대사회를 ‘회귀’(retro-)의 테마로 분석하는데, 홍콩의 사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민주주의는 서구를 중심으로 설계된 담론이며, 더불어 그것을 추구하는 운동에서조차 과거 영국 식민시기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보인다는 점에서 해당 책의 제목을 차용했다.
[13] 프레시안, 〈홍콩, 2016 ‘어묵혁명’은 왜 일어났나?, 장정아〉, 2016.04.20. http://m.pressian.com/m/m_article/?no=135700
[14] 한겨레, 〈“홍콩 시위, 종착역이 있을 수 없다”〉 정인환, 2019.09.03.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9081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