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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란 Mar 28. 2024

2. 차원이 다른 차원 이야기

4차원의 세계?

우리는 몇 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을까? 하고 물으니 몇몇 아이들이 '3차원이요~'라고 대답했고, 나머지는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인지 이리저리 눈알을 좀 굴리더니 대답을 기다리듯 매우 궁금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본다.


우리는 공간에 살고 있으니, 그래,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자. 우리 교실의 (3, 1, 2) 위치에 파리 한 마리가 떠있다. 파리가 그 자리에 꼼짝 않고 멈추어 있다고 해도 5초 전 파리와 지금 이 순간의 파리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이 두 파리를 구분해서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타임머신을 타시간여행을 하는 세계를 '4차원의 세계'라고 말하곤 하는데 왜 그렇게 말하는지 생각해 본 적 있으신지. 아마도 공간을 나타내는 3차원에 시간을 나타내는 차원을 하나 더 보태 (3, 1, 2, 0초), (3, 1, 2, 1초),... 이렇게 표현되기 때문에 4차원의 세계가 아닐까?

같은 공간에 위치하지만 다른 시간에 존재하는 두 파리를 나타낼 때 이렇게 4차원 좌표로 표현해주면  됨을 생각할 수 있다.


대학 때 한 기하학 교과서에 '내가 당신을 위해 2차원 종이 위에 4차원을 그림으로 그렸다'고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나의 수학적 상상력이 턱없이 부족한건지, 그림을 아무리 노려보고 매직아이 쳐다보듯 사시를 만들어가며 몰두해도, 그 그림속에서 4차원이 보이지 않아 엄청 괴로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어차피 수학을 공부하는데 그 정도의 상상력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라는 걸 금방 다시 깨달았는데, 그도 그럴것이 3차원이니 4차원이니 하는 얘기를 좀 더 해 볼 것처럼 하더니만 한 장 넘기니 그냥 n차원으로 훅 넘어가 버리는 것 아닌가.


애초에 이들은 과학자가 아니라 수학자들이었다. 수학자들에게는 네 번째 차원이 꼭 시간일 필요도 없고,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차원에 무엇을 대입할지는 하나도 중요치 않았다. 그들이 관념적으로 연구한 n차원 세계의 특징들에 실제를 대입하는 것은 과학자들이 할 일이었던 것. 아, 그리고 SF영화 감독들도 그들의 놀라운 상상력으로 그 수학 위에 무궁무진한 의미들을 덧입히며 수없이 많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때는 바야흐로 1987년, 빽 투 더 퓨쳐(Back To The Future)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저 아인슈타인 비슷한 헤어스타일의 박사님이 자신이 개발한 자동차를 빛보다 빠른 속도로 날려보내 시간여행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 정도의 동력을 어디서 얻어낼지 고민하다 벼락의 힘을 빌리기로 하고는 날씨가 어수선한 어느 날, 벼락이 칠 시간에 벼락이 떨어질 그 위치로 차를 몰고 달려가고, 운이 좋게도 그만 벼락을 맞아 쓍 하고 어디론가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어린 나이의 내게 정말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이 있었다. 분명 어딘가로 자동차가 이동했는데 도착해보니 20년 전 바로 그 위치이다. 공간이동을 한 게 분명해 보였는데 시간만 바뀌고 위치는 동일하다고?


다시 3차원으로 돌아가볼까?

그림속의 점 A1(3, 1, 2)이 z축과 평행하게 움직이면 x, y좌표는 그대로이고 z좌표값만 변한다. (3, 1, 2), (3, 1, 1), (3, 1, 0), ... 이렇게 말이다. 이와 비슷하게 4차원 상의 점 (3, 1, 2, 2024/3/27 17:30)이 네 번째 좌표축인 시간축과 평행하게 움직인다면 x, y, z좌표는 그대로이고 네 번째 좌표만 변할 것이다. (3, 1, 2, 2000/1/1 23:59) 이렇게 말이다. 생각해보니 그 자동차는 시간축과 평행하게 움직였고, 그래서 시간만 과거로 되돌려졌을 뿐 공간적 변화는 없었던 것이다.




영화 얘기가 나온 김에 2014년 개봉한 인터스텔라(Interstellar) 얘기도 하고 싶다.

주인공 쿠퍼가 블랙홀 안으로 뛰어들어 도달한 저 포스터 속 공간의 이름은 5차원 테서렉트이다. 저 공간에서 쿠퍼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이동하며 딸 머피에게 신호를 보낸다. 우리가 시간을 포함한 4차원에 사는 존재라면, 그런 우리를 한번에 모두 보기 위해서는 5차원의 세계(5차원 테서렉트)로 가야한다.


차원을 낮추어 설명해 보겠다.

3차원 공간에 있는 우리는 3차원 물체인 주사위를 한 눈에 볼 수가 없다. 대신 이 주사위의 모든 면을 2차원에 펼쳐놓으면 이렇게 한 눈에 볼 수 있게 된다.

거꾸로 말해 2차원의 대상을 한눈에 보는 존재는 3차원에 위치해야한다는 것이다.(=n차원을 한눈에 보려면 n+1차원에 위치해야한다) 만약 쿠퍼가 저 포스터 속 공간을 돌아다니며 이 시간, 저 시간에 존재하는 딸 머피와 자유롭게 컨텍했다면 쿠퍼는 3차원 공간+시간=4차원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4차원을 한눈에 보는 존재는 몇 차원에 있는 거지? 5차원!


2024년 현재 인간은 그렇게 한 차원 높은 세계를 상상할 수도, 그런 세계에 도달할 수도 없지만 미래에는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공간이 저 5차원 테서렉트이다.



이런 SF영화나 소설의 시초를 찾자면 소설 플랫랜드(Flatland: A Romance of Many Dimensions, Edwin A. Abbott, 1884) 꼽을 수 있다.


플랫랜드는, 평평한(flat) 2차원의 세계 플랫랜드에 사는 주인공 정사각형이 길이나 폭, 넓이가 없이 점들만이 존재하는 0차원의 나라 포인트랜드(pointland), 직선으로 이루어진 1차원의 나라 라인랜드(lineland), 플랫랜드에서 위쪽과 아래쪽의 방향이 더해진 3차원의 세계 스페이스랜드(spaceland)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1965년, 1982년, 2007년 등 여러차례 영상으로 제작되기도 했고(유튜브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다) 이후 여러 소설들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칼 세이건의 TV 방영 다큐 시리즈 코스모스(집집마다 꽂혀 있는 책 코스모스는 다큐멘터리가 먼저이고 이후 책을 펴 낸 것이다)에서 다른 차원을 설명하며 플랫랜드가 인용되었고, CBS 시트콤 빅뱅이론에서  셸던 쿠퍼가 상상으로 플랫랜드를 여행하는 장면이 있다.(개인적으로 열 두 시즌이나 제작된 시트콤 빅뱅이론은 한 두 에피소드를 보다 재미없어 그만 두었지만, 주인공 셸던 쿠퍼의 어린 시절을 그린 드라마 영 셸던은 지난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여섯 개의 전 시즌을 아주 재미있게 모두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이 플랫랜드를 읽어보지 못했는데, 수학비타민의 저자인 박경미 교수님의 책 소개를 너무 재미있게 보아 오늘 아침 당장 책을 주문할 수 밖에 없었다.https://youtu.be/ba2jiBxvbPs?si=RL43NEnNScsAbYwR






사실 유명해지고 돈도 벌려면 저렇게 영상을 찍어야하는데(저 분은 국회의원 출마도 하셨다) 나는 지금 거꾸로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아이들이 책을 안 읽고 영상만 봐 점점 글을 못 읽는다고, 글이 아닌 영상만으로 지식을 나눈다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데 일조하는 꼴이지 않나. 그리고 사실 글을 안 읽는 애들은 영상이라고 해도 수학 이야기는 안 볼 것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계속 쓴다.

Keep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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