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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범진 작가 Feb 10. 2024

오십에 만만해 보여야 하는 이유

관계 6

오십에는 만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십에는 비어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문득 다가온 오십과 문득 멀어지는 사람들이 느껴진다. 세상 문을 열고 나온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인생의 반(半)이 지나가고 있다. 나는 거칠고 냉정한 세상에서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목은 뻣뻣이 치켜들며 싸울 준비만 하였다. 

누군가에게 나약하고 불안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언제나 밝고 강한 모습의 가면만 쓰고 살아왔다. 누군가가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가슴에는 잔뜩 바람을 넣어 부풀렸고 머리에는 화려한 깃털로 장식하였다. 누군가가 오라 가라 해도 똥고집 같은 자존심으로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은 그런 내 모습에 언제나 내가 필요하다며 불러주었고 내 얘기에 관심을 기울였다. 사람들은 나약하고 불안한 ‘진짜’의 나보다 밝고 당당한 ‘가짜’의 나를 더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있어 보이는 내 모습이 나를 찾는 이유라고 생각했다. 

오십이 넘어서니 세상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것을 느낀다. 알게 모르게 멀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거짓된 가면과 화려한 깃털로는 더 이상 쓸데없는 자존심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외롭지 않으려면 만만하고 비어 보여야 한다.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오게 하려면 세월의 무게에 짓눌린 단단해진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자존심으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던 내 젊은 날의 옹이를 이제는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비워놔야 한다. 사람들이 오라면 오라는 대로 가라면 가라는 대로 해야 다시 또 그들이 나를 찾을 것이다.

이제는 점점 세상이 나에게 바라는 기대가 줄어들고 있다그래서 점점 나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그들이 나에게 세상에 비어있는 자리를 내어주면 나는 얼른 감사해야 할 것이다그렇게 해야 나도 여전히 세상 속에 존재할 수 있다오십에는 마음에 힘을 빼야 외롭지 않을 것이다받기보다 주어야 외롭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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